# 밑지는 게 남는 것이다 _ 어른들 말씀은 틀리지 않다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회사의 의미란 더 컸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해서 승진을 하고, 열심히 월급을 받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생계 유지 수단이 되어주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 회사의 팀장들은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기가 지금에 비해 쉬웠을 것입니다. 생계유지의 중요한 원천인 일자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말이죠. ‘나만 믿고 따라오면 살려는 드릴게’ 라는 코드가 먹혔던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
하지만, 지금은 그런때는 아닙니다. ‘회사가 나를 언제까지나 책임질 순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직원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을 ‘극혐’ 합니다. 이들에겐 ‘회사가 잘 되어야 니들도 잘 된다’ 라든가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라’란 개념이 통하질 않습니다. 팀장이 스스로의 운명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이들을 이끌어 가려면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신뢰와 배신의 심리학은 리더가 팀원들과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가에 관한 책입니다. 책에 따르면 상호관계에서 신뢰가 이뤄지려면 서로 신뢰하기로 합의(약속)하는 절차나 행동, 의견교환이나 투명한 정보공유 등 소통과정에서 신뢰를 쌓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더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리더에게 능력이 없다면 어떨까요? 사람은 좋은데 일 처리는 잘 못하는 리더? 밥 사주고, 생일 챙겨주지만 일이 자꾸 밀리는 리더? 조직은 문제해결을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이뤄져 있는 것입다. 능력없는 리더는 절대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어떤 능력이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결과 ‘책임감’이 1위였습니다. 판단력, 소통능력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리더는 파워를 가진 사람입니다. 팀원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고, 연봉도 남들에 비해 많이 받습니다. 직책에 따른 수당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큽니다. 어차피 일은 팀원들이 하게 되어있습니다. 팀원들도 그 사실은 인정할 것입니다. 팀장들이 해줘야 할것은 그와는 다른, 뭔가 중차대한 일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인사팀에서 일하면서 주변의 직원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많이 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팀장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안 좋다보니 인력도 줄어들고, 그래서 요즘은 팀장이 실무도 같이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실무는 실무대로 하면서, 팀의 성과를 책임져야만 하는 부담이 팀장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는 그냥 시킨 일만 하고, 책임은 다른 사람이 져주길 바라는 심리가 직원들에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연공서열, 호봉제 회사라면 가만히 있어도 월급이 오르게 되어있습니다. 굳이 팀장 타이틀 달아서 부담스런 역할을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리더십에 대한 한 연구결과가 소개되었습니다. 바로 리더십의 본질이 다름 아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피하지 않고 감당하는 성향’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뇌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 리더십이 강한 사람일수록 단체의 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적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리더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권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합리적인 것,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끌 수 있는 좋은 권위는 무엇일까? 저는 그 핵심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더가 그런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굳이 회사는 팀이라는 조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일을 하고, 각자 책임을 진다면 팀장을 둘 필요가 없죠. 경영자가 일을 수행하는 직원 개인들과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에요.
하지만, 조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직은 의사결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입니다. 한정된 시간과 돈을 어디에다 먼저 쓸 것인가에 대해 누군가는 현명한 의사결정으르 내려줘야 하는 것이 조직입니다. 그래서 회사를 잘 알고, 일을 잘 아는 사람을 팀장으로 앉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임을 더 많이 지려할수록 팀원들의 존경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엔 팀원들도 결정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팀원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팀장이 시간될 때마다 자신의 일을 같이 들여다 봐주고, 어려운 결정을 대신 내려주고, ‘내가 책임지겠다’란 말을 하면 어떨까요? 팀원들도 다 압니다.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요. 그 힘든 짐을 누군가 나서서 덜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비싼 밥 사주고, 비싼 술 얻어먹는 것에 비하지 못할 만큼 큰 감동일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지금 하고 있는 것도 힘든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 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물론, 이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잃는 만큼 얻고, 얻는 만큼 잃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국의 무소속 상원의원이자 철학자인 오노라 오닐은 상대방보다 자신을 약한 상태에 둬야 신뢰를 얻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밑지는 게 남는 것이다’ 쯤 될 것입니다. 짐을 더 지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많은 존경을 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도 하기 싫고, 남들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그 사람이 하니까요. 어떤 수준까지 짐을 더 질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결국, 리더는 의사결정과 같은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사소하거나 일상적인 일은 ‘최대한’ 위임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좋은 권위란 바로 책임감에서 비롯됩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책임을 진다는 것, 그 자체보다는 ‘책임을 더 지려는 태도’가 더 맞을 것입니다. 손해 보기 싫어하고, 자신의 이익은 극대화 하려는 것이 (저를 포함한) 한국사람들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인맥을 내세우고, 편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좀 더 밑지고, 희생하고, 무거운 책임을 지려고 나서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회사라는 조직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도 말이죠. 이런 리더십이 인정받고, 또 존경받는 분위기가 되면 직딩들이 그렇게 고민하는 조직문화도 한층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