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회사일만 그럴까?
일을 하다보면 가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다. 가령, 1주일 걸릴 일을 3일 정도면 될 것이라고 말을 하거나, 도저히 여력이 없는 일임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며 받는 경우다. 왠지 ‘못한다’ 고 하면 부탁한 사람에게 미안한 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그러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면 일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내게 이런 핀잔을 준다.
일 쳐내지 못하면 본인이 힘들어져요. 뭐하러 그런 고생을 해요?
거절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는 종종 납기일을 지키지 못한다. 그로인해 나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질 것이다. 그 부분은 감수한다. 하지만, 위의 말처럼 일을 받지 않아야 고생하지 않는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일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는 그 ‘양’ 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의 말을 내게 한 그 사람이 과연 스트레스를 안 받을까? 꼭 그렇진 않다.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일의 ‘양’ 과 더불어 ‘주도성’ 이다. 얼마나 일을 주도하고 있는가? 시켜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때로는 하기 싫기도 하지만 그것을 자기가 주도하느냐? 지시가 주어진 후에 움직이느냐? 의 차이가 바로 스트레스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니엘 핑크가 쓴 ‘드라이브’ 란 책을 보면 동기부여의 세가지 요인이 나온다. 첫째는 자율성(자기주도성)이고, 둘째가 ‘숙련’, 세째가 바로 ‘목적’이다. 일을 주도할 수 있는지, 숙련도가 높아짐으로써 느껴지는 재미가 있는 일인지, 일 자체가 스스로에게, 고객에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의미가 있는지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일에 대한 동기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첫째 요인인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일을 주는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만 얻을 수 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챙길 것이라는 믿음, 일을 주는 사람이 잊고 있을지라도 알아서 챙길 것이라는 믿음을 줄 때 신뢰는 생겨난다. 그러려면 일을 주도해야 한다. 물어보기 전에 먼저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뢰를 얻게되면 그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커진다. 일정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말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제발 지시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추가적인 일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노심초사 하는 패턴이 반복될 것이다. 아무리 일이 적을 지라도 그런 패턴이 굳어지면 어차피 스트레스는 받게 되어 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더라도, 부모님의 “공부 안하니?” 라는 말 한마디에 공부하기 싫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지 않았던가?
일의 양도 적고, 일을 주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 와중에 일이 주는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어떻게든 일을 안 받아보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본다. 열쇠는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자율성’ 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임계점’ 까지 고생을 해야 한다. 일 주는 사람의 신뢰를 얻기까지 이르는 임계점 말이다. 그 임계점은 물론 일 주는 사람의 성향과 요구치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임계점까지 가볼 것인가, 말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약 이와 더불어, 일을 해내는 능력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거나, 조력자를 확보해서 그들의 능력을 빌어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물론, 이것도 주도성을 발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한 가지 !
과연 회사일만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