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기득권에 가까워져갈수록 기득권에 대한 혐오는 강해진다. 나는 그렇게 크고 싶지 않다는 발악과 더불어 타인을 모멸하는 그들의 시선을 받고 자란 내가 드디어 복수를 꿈꾸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뒤가 다른 말을 더 이상 따르고 싶지 않음에도, 나는 아직 가까워졌을 뿐, 그들이 아니기에 완전한 자유는 없다. 그들이 되고 싶지 않음에도, 그들이 되어야만 하는 건 모든 인간들이 빠지고 마는 굴레인걸까. 나는 더 이상 자라고 싶지도, 변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이대로 모든 게 멈추어졌으면 좋겠다. 세상을 멈출 수 없으니, 내가 멈추어야만 할까.
누군가의 얼굴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라는 건 내게 막연한 이야기였다. 나의 기억은 때론 잔인하리만치 선명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일상을 보내며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나는 현재의 카페이자 과거의 분식집을 추억하던 그때 깨달았다. 그 어느 날 토요일의 오후 떡볶이와 김밥을 먹던 나도 기억하고, 점심이었던 것도 기억 하고, 아주 날이 좋은, 햇살이 강한 어느 날이었던 것도 선명한데 유독 함께 먹었던 이 만큼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을. 꽤나 어색하고 미묘했던 그날의 공기, 음식을 먹으며 이 날도 추억이 될까 생각하던 그 순간마저도 뚜렷한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의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을 당신은 누구십니까?
스스로에 대한 다정은 불확실하다는 것과 모순되지만, 나는 언제나 타인에게 진실만, 진심만 말하고 싶어 한다. 가끔씩 생각한다. 있는 힘껏 노력한 나의 다정이 과연 당신에게 닿을까. 언제나 무섭다. 보잘 것 없이 느낄까봐. 내가 가득 담은 그 노력이 당신에겐 한 줌일까봐. 확인하고 싶지만, 때론 그 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공허하다. 깊은 우울이 내 곁에서 한 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마다 나는 우울에게 조차 다정하려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언젠가 홀로 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내 곁에 아무도 없고, 그늘진 한 뼘만이 자리하고 있을 때에 조금 덜 외롭기 위해.
사랑한다, 라는 말이 가끔씩 입안에 맴돌곤 해. 누군가에게 툭 뱉어버리고 싶지만, 목적 없는 대사는 서글퍼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꼭꼭 씹어 삼켜버린다. 간질간질해지는 입술을 물어 뜯는다. 내 눈앞에 말을 전할 충분한 이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어라. 나는 침묵이 버릇이 되었다. 오늘도 꼭꼭 씹어 삼킨다. 자칫 사랑을 잘못 삼켜 내 사랑에 체해버리면 너무 슬프잖아.
유독 모든 말이 어설프게 짜여 질 때가 있다. 나는 그 어떤 말을 해도 너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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