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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Feb 06. 2023

기억 궤도

S# 1. (과거 회상) 방과 후 강은의 방﹣월요일 낮

방에 있는 강은. 복도로 난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방문은 잠겨있다. 집중해서 일기를 쓰고 있는 강은

그때 덜컥덜컥, 누군가 방문을 열려고 한다. 강은, 화들짝 놀란다.


강욱

“야 씨발 방문은 왜 잠구는데? 쳐돌았나.”


강은, 빠르게 일기장을 덮은 뒤 의자에서 튀어올라 의자 방석 아래 일기장을 숨기고 얼른 방문을 연다. 일그러진 표정의 강욱을 본다. 강은은 아차 하는 마음이 든다.


강욱

“씨발. 누가 니 뭐 훔쳐가냐? 방문은 왜 잠구고 지랄이고? 조또 볼 것도 없는게”


강욱은 혀를 쯧쯧 차고 문을 활짝 열며 강은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아무렇게나 앉는다.


강욱

“야 여기 와서 앉아봐라. 니도 이제 12살이고 알아야 할 게 있다.”


강은은 어색하게 의자에 와 도로 앉고, 밑에 있는 일기장이 계속 신경쓰인다.


강욱

“야 엄마 아빠가 이혼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오빠는 엄마 따라갈테니까 니는 니 알아서 아빠한테 가라. 알았나?”


강은은 온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미래가 갑자기 와장창 깨지고 무너져 내리는 느낌.

아빠랑 단둘이 사는 모습을 잠깐 상상하자 팔에 소름이 돋는다. 아빠가 들어오자 집 안의 공기가 싸하게 얼어붙는 오후. 아빠는 자꾸 뽀뽀를 요구하고 강은은 두 눈을 꼭 감고 억지로 아빠의 볼에 뽀뽀를 한다. 아빠는 귀엽다는 듯이 강은의 엉덩이를 탁탁 친다. 강은은 토할 것 같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동자는 방황하듯 흔들린다.


그 후로도 한참을 강은의 방 침대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이야기를 쏟아내는 강욱. 강은은 의자에 얼어붙은 채로 움직이지 않고 강욱의 이야기를 듣는다. 혼란스러운 얼굴.



S# 2. 강은의 방 ﹣ 화요일 낮

자신의 방 안에 앉아있는 강은. 예민하게 귀를 세우고 있다.

탁탁

발소리가 들리자 의자에서 후다닥 일어나 잠긴 방문의 문고리를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가락에 온 힘을 주고 조용히 푼다. 그리고 다시 후다닥 의자에 앉는 강은. 마침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강욱.


강욱

“씨발년 니가 돈 가져갔지?”


강욱은 강은의 방을 헤집으며 뒤지기 시작한다. 책장의 책을 모조리 바닥에 던지고 침대 위 이불과 베개를 들추고 옷장을 열어서 옷 주머니를 하나하나 뒤진 후 하나씩 바닥에 던져 버린다.

갑작스러운 강욱의 행동에 강은은 얼어붙고 바닥에 떨어진 책과 옷가지를 바라보다가 눈물이 핑 돈다. 강은 악을 쓰며 소리지른다.


강은

“내가 안 했다고! 갑자기 와서 왜 지랄인데!!”


강욱

“미치년이 돌았나. 니 아니면 누가 가져가는데. 씨발 눈에 뵈는게 없나? 좇같은 게. 빨리 돈 내놔라”


강욱은 서랍장을 들쑤시다가 손수건 아래 가려져 있던 강은의 지갑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있던 돈을 꺼낸다. 그리고 유유히 방 밖으로 나간다. 나가면서 다시 돌아보는 강욱


강욱

“야 니 오늘 방 밖으로 나오면 뒤진다.”

방문이 쾅하고 거세게 닫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은은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이내 엉엉 울기 시작한다.


강은

“아아아아아아아!!!내가 안 했다고!! 내가 안 그랬다고!!!!!”


그때 방 문을 거세게 차는 발소리. 이어지는 고함 소리.


강욱

“씨발 닥쳐라!!! 존나 시끄럽네. 방에서 나오기만 해라, 알았나?”


고함을 지른 후 강욱이 집을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띠리릭. 도어락이 열렸다가 잠기는 소리.



S# 3. 빈 집 ﹣ 저녁

아무도 없는 빈 집. 강은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닫힌 강은의 방에서는 계속 울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S# 4.  강은의 방 ﹣ 밤

바닥에는 정리하다가만 책과 옷가지가 아직 어지러져 있다. 강은은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울고 있다. 그때 갑자기 똑똑똑 복도로 난 창문을 통해 들리는 노크 소리. 강은, 깜짝 놀라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창문을 바라본다. 창문 넘어로 보이는 한 여자의 실루엣. 창문에는 창살이 촘촘히 박혀있다. 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조금씩 조금씩 창문을 여는 강은.


옆 집 아주머니

“아가야, 괜찮니? 옆 집에 사는 아줌마야.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려서…”


강은

“네…괜찮아요.”


강은은 눈물을 빠르게 슥슥 닦고 머뭇머뭇 말한다. 한 편으로는 아주머니에게 여기서 꺼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옆 집 아주머니

“그래…그만 울고.”


아주머니는 어두운 복도로 빠르게 사라진다. 강은, 다시 조금씩 창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아까보다 조금 더 조용히 운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난다.



S# 5. 할머니 집 ﹣ 수요일 저녁

할머니 집 식탁에 둘러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는 가족들. 강은, 강욱,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식탁에 앉아 있다. 강욱은 여전히 강은에게 화가 풀리지 않았고 강은이 방밖으로 나온 것이 짜증이 나는 얼굴이다. 강은, 강욱의 눈치를 보면서 젓가락으로 시금치를 집는다. 그때 강욱은 강은의 의자를 발로 찬다.


강욱

“젓가락질 똑바로 해라.”


화들짝 놀라는 강은.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신경쓰지 않고 밥을 먹는다. 식탁은 위는 고요하다.




S# 6. (현재) 강은의 자취방 ﹣ 낮

강은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책상 위에 쌓아 올려놓는다. 그리고 제일 위에 있는 책을 집어서 침대로 가 앉아 읽기 시작한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책들.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천장의 무늬>

<병명은 가족>

<보이는 어둠>

<나는 숨지 않는다>

<한낮의 우울>

<자살일기>

<젊은 ADHD의 슬픔>

<마음의 여섯 얼굴>

<아무도 없어요>

<고백>

그 뒤로 보이는 강은의 흐릿한 실루엣.



S# 7.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대기실 ﹣ 아침

소파 곳곳에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강은도 그 사이에 익숙하게 앉아있다. 책을 읽고 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표지.


S# 8.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안 ﹣ 점심

의사

“안타깝게도 강은씨 같은 경우에는 오빠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내 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내 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인데, 타인과 갈등을 겪지 않으려고 나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거나,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에게 모든 걸 맞춰주려고 하거나. 혹은 둘 다 일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내 편을 만드려고 애쓰지 말아야 해요. 둘 중 어느 쪽으로 가도 힘들어져요. 힘들면 무기력해지고요. 그러니까 내 편이 언젠가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연습을 해야해요.”


강은은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나와 의사가 했던 말을 빠르게 메모장에 적어둔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얼굴. 1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적어두었던 메모 리스트를 스크롤 하며 다시 쭉 읽는 강은.



S# 9. 강은의 자취방 ﹣ 밤

화상회의로 글방에 참석한 강은. 강은의 글을 읽고 사람들이 피드백을 나눈다.


글방 동료1

“사건없이 상태만을 묘사한 글이라 잘 안 읽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화자의 상황에 함께 답답함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글방 동료2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느낌이에요. 너무 자신의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읽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자기에게 필요한 글을 쓴 느낌이에요.”


강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피드백을 아이패드에 꼼꼼히 적는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얼굴. 어려운 숙제를 받은 듯한 표정.



S# 11. 강은의 자취방 ﹣ 새벽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강은. 쭉 쓰다가 한 문단을 통째로 지운다. 그리고 다시 쓴다. 중간중간 문장들이 또 삭제된다. 반복. 타닥타닥 노트북 타자소리.



S# 12. 서울의 한 스튜디오 ﹣ 낮

다영

“강은님 슬레이트 한 번 쳐주시겠어요? 이제 촬영 시작할게요.”


강은

“네. 하나, 둘, 셋”


강은은 두 손바닥을 아래 위로 마주치며 웃는다.


다영

“상담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고 말해주세요. 강은님의 트라우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담 선생님이요.”


이야기를 시작하는 강은의 입. 멋쩍은 표정. 긴장한 듯 꼼지락 거리는 손.


암전


강은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입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남매폭력 피해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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