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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27. 2024

저주를 이해하는 꿈

전 애인이 나오는 꿈을 꿨다. 우리는 꿈에서도 이미 헤어진 커플이었는데 왜인지 헤어지기 전 약속한 결혼식을 이행하기 위해 그곳에 와 있었다. 칸막이로 나뉜 커다란 욕실에서 각자의 욕조에 들어가 있는 두 사람. 얼굴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만이 흐르는 커다란 욕실. 따뜻한 물에 몸이 노곤해질 때쯤 칸막이 너머로 그 애가 현재의 새로운 애인과 전화하는 음성이 들린다. 욕실을 울리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 나긋나긋 말하는 그 애를 물속에서 잠자코 듣는다. 낯간지러운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다. 다행히도 결혼식이 진행되기 직전에 나는 욕실에서 나와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왁!’하고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도망치듯 깨어났다. 새로운 애인이 있는 전 애인이랑 결혼하는 꿈이라니…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끔찍했다.


그 애랑은 8개월 정도를 만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거의 일주일 내내 24시간을 붙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밀도 높은 만남이었다. 당시 우울증 때문에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아주 옅은 공황이 와서 숨이 잘 안 쉬어지거나 손이 발발 떨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애는 귀신같이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늦은 밤이든 이른 새벽이든 나를 보러 왔다. 손을 잡아주려고.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자기의 인생은 무척 힘들기만 했는데 지금은 마냥 다 좋다고 말했다. 종종 꽃다발을 선물해 주다가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라며 레고로 만들 수 있는 꽃 모형을 사 온 날, 나는 그 애와 함께 레고를 조립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달 뒤에 헤어졌다. 당시에는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 애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도 치를 떨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으로 가야 해.”

우리는 사귀는 동안 토론을 빙자한 개싸움을 하고 서로 감정이 상해서 말도 없이 자리를 떠버리곤 했다. 나는 내가 여성인 이상 페미니즘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내가 돌아갈 수 없게 된 곳이 어떤 세상인지, 이제 내가 나아가고 싶은 곳은 어떤 세상인지 잘 말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그 애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애도 나를 설득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처절하게 실패했다. 서로 그것을 깨달았던 어느 날 그 애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가 맞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나는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고 생각해.”

그것을 입 밖으로 내고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긋고 영영 걸어가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품고서는 어차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야기해 볼 기력이나 관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적으로는 그 애를 너무 좋아했지만, 이만하고 싶어서 결국 헤어지자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전화를 하자는 그 애의 말에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한 뒤 관계를 끝냈다.


헤어질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헤어지고 난 뒤에는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저주에 걸린 사람마냥 여전히 힐끗힐끗 뒤를 돌아본다. 많은 것들이 그 애를 생각나게 하고 최근에는 <더 커뮤니티>를 보면서 자꾸 그 애를 떠올렸다. <더 커뮤니티>에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13명의 사람이 나오는데 출연자들은 각각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에 대한 성향과 점수를 부여받는다. 나는 아주 극명하게 갈리는 사상점수를 들고 그 속에서 만나는 그 애와 나를 상상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요즘의 나는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애가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라고 말하는 걸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맥락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 애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예전에 사귀었던 여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고 말했던 그 애. 화장실에 있을 때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를 쳐다보며 웃었던 여자에 대해서 말하던 그 애. 하필 그런 일이 그 애에게만 자꾸 일어날까, 안타까운 마음이 얼핏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때 나는 그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마냥 그 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으므로 그걸 어떻게든 고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애의 모든 걸 포기해 버렸는데 그 선택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후회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동료가 되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그 애를 통해서 알게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함께 하기 위해서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내가 부끄러워져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그 애가 나오는 꿈을 꾼다. 나는 여전히 커다란 욕실에 혼자 남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오랜 생각을 한다. 나의 부끄러움에 대해. 죄책감과 아쉬움에 대해. 꿈 속에서도 우리의 결혼식은 올려지지 않았고 나는 길을 잃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길을 잃고서 이상한 층에 도착해버린 사람처럼 어리둥절해 하며 지나온 길을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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