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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May 27. 2020

나는 감사하게도 밥 차려주는 엄마가 되었다.

어제 직장 다닐 때 가까웠던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나와 같이 입사한 1살 많은 언니다. 입사 동기이기도 했고 나이도 비슷해서 가깝게 지낸 분이다. 너무 오랜만에 통화라 여러 가지 신상 정보를 묻는다.(현재 난 육아 휴직 중이다)     


늘 작은 아이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며 큰 아이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주라고 했던 분이다.

작은 아이는 아직 8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엄마손을 많이 탈 때이다. 언제나 엄마가 1순위다. 전화할 때도 내 전화 목소리에 주변에선 웃겨 죽겠단다. 일하고 있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아이 목소리에선 그리움과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사춘기 아이와 통화했던 내 목소리 톤 자체가 달라진다. 애정 어린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라는 말로 엄마를 느끼고 싶어 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를 알기에 애정이 뚝뚝 떨어지게끔 통화한다. 둘째는 나와 같이 있을 때도 애정 어리게 말하는 편이다. 꼭 엄마와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빠뜨리거나 흘리거나 암튼 부족한 부분들을 잘 채워주는 아이다. 무뚝뚝한 엄마, 아빠에게 어찌 이런 아이가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기도 한다.      



반면 첫째와는 할 말만 딱딱한다. 집에서는 말이 많은 편인 아이지만 사춘기 아이라 이랫다 저랬다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낙엽이 굴러다는 것만 봐도 깔깔거리고 잘 웃는다. 별로 웃기지 않은데도 큰 아이는 배꼽을 잡고 많이 아주 많이 웃는다. 난 큰 아이가 웃는 게 더 웃기고 작은 아이는 큰 아이를 따라 웃는다. 상황이 웃겨서 웃는 것보다 아이들 때문에 웃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작은 아이처럼 큰 아이에게 통화하면 큰아이의 반응은?

전화를 끊을 것이다. 약간 약 먹었냐는 말투고 보통은 할 말만하고 끊는 아이이기 때문에 문자를 주로 이용한다.     


어제 전화한 지인은 초등학교 5학년 아들 하나만 키우는 분이라 내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이 터울 지는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우는 상황 말이다. 그분의 자녀는 딸도 아니고 아들이다. 남자아이는 여자 아이들보다 정신적으로 어린 편이다. 조카아이를 보니 그런 것 같다.   


사실 작은 아이에게는 말로 이런 애정표현은 정말 많이 하지만 온 신경은 큰 아이 이게 게 많이 가 있는 편이다. 어느 집이든 작은 아이에게는 너그럽고 관대하다. 큰아이보다 작은 아이에게는 관심이나 물질적으로 덜 해준 것 같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옷이나 신발도 다 언니가 입던 옷이고 친한 지인에게 물려받아 입힌다. 8살까지 크는 동안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은 큰아이에게 많은 신경이 쓰여서 온전히 자신만을 봐준 적도 없다. 얼마 전까지 언니가 크게 사춘기를 겪었고 나도 작은 아이가 6살 무렵부터 일을 시작했다. 큰 아이 때보다는 많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논 시간도 많이 없었고 책을 읽어준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다. 가끔 언니 친구가 오면 제 친구가 오는 것처럼 좋아한다. 큰 아이가 어릴 때는 그래도 그냥저냥 작은 아이와 맞춰서 놀아주거나 친구들이 와도 어울리게 되었는데 초등 고학년이 지나니 놀아주는 것도 귀찮아하고 본인 친구들이 왔는데 옆에 붙어있는 작은 아이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 나이 터울이 있어서 가장 좋지 않은 점이기도 했다. 같이 한데 어울려 놀거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 아직 자신의 정신연령에 한참 못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노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땐 몸으로 놀라 달라고 하지만 커갈수록 앉아서 놀거나 혼자 노는 것, 또는 친구와 수다를 떨며 노는 것을 즐겨한다. 엄마를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며 엄마 바라기처럼 행동하는 것도 길어봐야 초등 중학년 때까지 만이다. 작은 아이는 아직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지만 이것도 길어봤자 3~4년 안일 것 같다. 큰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다.      


아이마다 성향은 있다 하지만 중학교 들어가니 엄마를 따라다니려고 하는 것들은 눈에 띄게 많이 줄었다. 홀가분하다기보다 아쉬운 감정이 클 때도 있다.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친구과의 약속 때문에 가족 나들이도 기꺼이 빠진다. 가끔은 거짓말을 하며 둘러대기도 한다.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칠 때도 있다. 엄마가 센스 있게 눈치채지 못하면 아아 와의 실랑이로 고생길이 열리는 거다. 아이를 잘못 키운 것 같은 자책에 빠지기도 하고 아이의 감정이 이해되지 않아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가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학업에 열중할 때인데 학원 가기 전 꽃단장하며 얼굴을 정리하고 틴트를 바르는 아이를 보고 분통이 터질 때도 있고 시간 개념 없이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를 보고 커서 뭐가 되려고 하냐며 서슴없이 손가락질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옆집 엄마 친구 아이까지 나오면 아이와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사춘기 아이들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 아이들마다 제각각 성향이라 같은 경우의 수를 적용해보긴 어렵겠지만 많은 고민의 시간이기도 했고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더불어 초등 고학년까지  4~5년 정도 남은 작은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음을 감사했다. 지금은 내 시간의 대부분을 아이들과 공유하지만 언제 가는 철저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사용하느라 허덕거리는 시간이 오겠지 하고 말이다. 큰 아이는 일반 아이들과 다르게 공부하니 그 시간들이 더 빨리 올 것 같다.      



미래의 그 시간들을 위해 현재 아이들과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련다. 놀이터에 가자는 작은 아이, 예쁜 옷 사러 가자는 큰 아이와의 시간들이 소중하다. 이 아이들에게도 나중에 할 일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소중해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 어릴 적 아이들에게 못 보낸 시간들이 생각나서 나와 놀아달라는 진상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시간들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나눔 한다. 동시에 더 성장한 엄마가 되어 아이가 힘들 때 보듬어 줄 수 있는 여유의 공간도 유지하려 한다.      



요리 잘하는 엄마가 되어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던 추억도 간직하고 싶다. 예전엔 엄마만 밥을 차려야 하느냐라는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나를 키운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든다. 밥을 차린다라는 현상 자체적으로 본다면 노동이겠지만 그 안엔 그 이상의 것이 존재했다.      


하루키가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지 않은 것처럼 나또한 결혼을 했다고해서 내가 밥을 차리려는 의무를 가진 것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이 좋았고 예전 어렸을 적의 맛들을 기억하다보니 몇가지 음식들은 잘 만들게 되었다. 칭찬을 듣다보니 칼솜씨도 제법 늘었고 잘 하는 음식 가짓수들이 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무래도 아이를 먹여야 하는 강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해내야한다는 것들에서 잃은 것보다 얻어진 것들이 훨씬 많다.


시간이 없거나 힘들 때는 식구들과 라면 한 냄비를 끊여내 먹기도 했다. 왜 밥을 안 차리고 라면을 주는 거야라는 반응이 아니라 힘든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라며 자신이 뽐낼 수 있는 저녁밥상을 차려내기도 했다. 대접받는 여자로 크려면 집안일이나 요리는 못 해야 한다라고 엄마, 이런 일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될 수도 있었지만 현재 생각은 다르다. 허드레 일도 할 줄 아는 아이가 나가서도 대접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안일은 표도 안나는 허드레 일이 대부분이다. 요리도 그렇다. 혹자는 여자가 그런 일을 당연시 여기니까 나가서도 그런 대접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일밖에 할 줄 모르는 것과 그런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다. 모든 일의 완성의 시초는 허드레 일부터 시작이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그 허드렛일을 하기 싫다면 치열하게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답이 나온다.     




그래서 난 오늘도 빨래도 청소도 하고 음식도 만든다. 밥 차려주는 엄마를 자처할 것이다. 엄마가 된 것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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