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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May 10. 2023

성취주의와 자기혐오

우울의 근원

1.

"저번주는 우울증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 하지만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우울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 낭비하는 내가 한심해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어."

"뭐라고? 왜... 그렇게 너를 모질게 다루는 거야?"


상담 내용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포인트에서 그가 흥분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난 해야 할 일이 미루어지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었는데... 마음이 아픈 사람인데,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보다는 왜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냐 라는 악덕 업주?의 태도로 나를 대한 것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에게 화가 났을까? 왜냐하면 나는 남보다 더 뒤쳐졌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두려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두려움은 내가 처음 우울증으로 진단받았던 20살 때에도 가졌던 감정이었다! 우울증 때문에 강제로 1년 휴학을 했을 때, 1년 뒤쳐진다고 불안해하던 그 때...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니. 


2.

지금이야 (바쁜) 한량으로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경주마로 길러진 사람이었다. 강남 8학군에서 자라, 대치동 학원을 다녔고, 명문 특목고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고 미국 대학에 유학갔다. 한 때는 남들과의 경쟁을 즐기고, 성취를 함으로써 받는 관심을 즐긴 나였다. 말주변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마땅히 취미도 없었던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취였다. 


우울 증상이 시작된 이후 그토록 내가 좋아하던 경쟁과 성취를 할 에너지를 잊어버렸고, 약하디 약한 나의 에고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성취가 없는 나는 빈 껍데기였다. 나를 믿어주고, 긍정해주고, 나를 나 자체로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나조차도, 성취를 못한 나를 싫어하고, 한심하게 여기고, 인생의 실패자로 여겼다. 


그래서 항상 나 자신을 의심하고, 내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했으니까. 조그만한 실수를 하더라도 세상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고, 오히려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져 일을 미루고 또 미루고... 그래서 결국 일도 공부도 안되고 그로 인해 더 깊은 우울에 빠지는 악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타인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과 깊은 감정 교류나 관계를 맺기 보다는, 머리 속에서 계산기를 돌려 그들에게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들도 나에게 무언가를 얻고 싶기에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분명한 비즈니스처럼. 


3.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연결된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타인이 나에게 주는 사랑.

나의 우울증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부재가 근본 문제임을 깨닫는다.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어.

이런 신념으로 아등바등 살아왔다. 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온 대가로 지독한 우울증 및 번아웃을 얻었다. 결국 죽지 못해서 살게 되었다.


그래도 한국을 떠나 다양한 국가에서 거주하면서, 다양한 인생 모양새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뿌리깊은 자기혐오를 떨쳐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직도 나는 나를 완전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4.

7년 상담 경력이 있다는 상담사는 내가 우울하고 일을 못해서 화가 난다고 하니 '다 그래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울하면 10분이라도 나가서 움직여봐라'라는 뻔하다못해 무심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친구가 눈물을 흘렸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7년 경력의 상담사보다, 7년 동안 나를 안 친구가 훨씬 낫구나!


그동안 나의 실패 및 못난 모습을 봐왔지만, 오랫동안 나를 좋아해왔다는 그의 고백을 들었을 때 충격이란. 나의 고통을 무심하게 흘려 듣지 않고, 진심으로 눈물 흘리면서 공감해 주는 그에게서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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