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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Jul 18. 2024

입덧, 아가가 타고 있어요.

공간을 담을 마음의 그릇

세 번의 임신은 한스박씨에게 두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했다. 첫 번째는 입덧은 무뎌지지 않는다는 것과 두 번째는 겪어보지 않은 것을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


첫째의 입덧을 통해 생각나는 건 ‘바나나와 크래커’. 입덧 중 현정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였다. 티브이에서 새색시는 헛구역질을 입만 가리고 다소곳 예쁘게도 하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정말 침팬지의 후손이란 말인가. 바나나만 먹고 생존이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한스박씨에겐 신비로웠다.


현정은 본인이 느끼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을 동원한다. 비슷한 식감의 식재료,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한스박씨를 입덧의 ‘ㅇ’ 정도라도 이해시키려고 모든 비유를 활용했다. 한스박씨는 눈만 껌벅껌벅할 뿐 그 비림과 느끼함, 울렁거림 등을 이해할리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현정 마음에 ‘나만 죽을 수 없어…’라는 급박함이 엄습했다.


전략을 수정하자. 이성보다 신경질, 화, 하소연 등 감정적 수단으로 이해를 돕기로 한다. 옛 군대에서 활용하던 방식이다. 한스박씨의 표정을 보니 다소 ‘힘듦’을 공감하는 중인 듯하다. 연신 내뱉는 영혼 없는 ‘알지, 알지’의 반복, 결혼 생활 유지의 기본 덕목 1장. ‘그랬구나’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입덧은 아빠가 되는 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기간임은 확실하다. 이제 좀 속이 풀렸는지 현정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는다.

‘에고… 오빠가 뭘 알겠냐, 설명하는 내 입만 아프지.’

한스박씨는 이를 현정의 공감으로 여기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역시 남자란 동물은 말로 해서 못 알아먹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입덧은 넷째가 현정이의 몸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9개월 입덧.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난 현정은 다섯째는 현생에는 없을 것임을 재차 다짐했다. 한스박씨의 눈에 이번엔 진짜인 것으로 느껴졌다. 느낌과 현실은 언제나 괘리가 있지만 느낌을 믿어보기로 한다.


상상해 보라.

9개월간 뱃멀미를 할 때의 기분을 가지고 아이 셋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 입에 생선 오일을 가득 물고 9개월을 보내야 하는 상황. 분명 둘의 아이인데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다른 한 명은 응원 정도 해주고 있는 상황.


한스박씨는 과거 SNS를 통해서 임신 체험을 하는 남성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듣고 본 적이 있다. 그 체험의 목적은 분명 입덧, 임신등의 고통을 체험함으로써 여성이 느낄 출산 중의 고됨을 공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한스박씨의 마음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스쳐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공감능력이 없어서일까?




생각해 보면 값지다 여겨지는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값짐이 쉽게 얻어진다면 값짐은 빛을 읽고 말 것이다. 희소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과 환희, 인내와 고통의 결정체가 담긴 것이 ‘값짐’이니까.


입덧은 둘에게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첫 언덕이었다. 세 번째 겪는 경험이지만 전혀 새롭고, 무뎌짐이 없는. 


한스박씨는 현정에게 말했다.


‘우리를 부모로서의 깊은 성숙으로 이끌 무언가가 필요해. 공감으로 둘을, 셋을, 여섯을 묶을 끈도 함께 필요하고. 둘만 덩그러니 놓인 미국땅에서 네 아이를 사랑할 마음의 그릇을 만들 책임이 있어. 셋보다 넷을 담으려니 뜨거운 불에 넣고, 망치로 두들기고, 다시 찬물에 넣어 공감의 공간을 넓혀야겠지. 지금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는거야.‘


정말 그들의 마음의 그릇은 네 아이를 담을 충분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을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모습은 눈앞의 일들도 감당하기 어렵도록 위태해 보인다. 마음의 그릇은 그들에게 사치인 걸까?

임신 중에도 돌아보아야할 세세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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