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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Jun 14. 2024

시련과 고통은 인생의 조미료

F1 팬이 바라본 랜도 노리스와 샤를 르끌레르의 우승

세계 최고의 레이싱 대회인 포뮬러원(F1)에는 5년간 100개 이상의 그랑프리를 참가하며, 단 한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젊은 영국인 드라이버가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경쟁력 있는 중위권 팀이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맥라렌 팀에서 19살의 어린 나이에 시트를 차지한다. 데뷔 시즌부터 상당히 빠른 모습을 보여줬고, 강력한 드라이버로 성장했다. 


카메라로 비춰진 그는 항상 밝고 장난끼 가득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랑프리에서 포디움(1~3위 수상대)에도 올랐고, 2등도 했다. 하지만 5년간 단 한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우승이 아주 지척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던 적도 있다. 신이 장난치듯 팀의 전략 실수 혹은 그의 작은 실수, 자동차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는 랜도 노리스다. 

랜도 노리스는 F1 팬들 사이에서 짓궃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Lando No wins'라고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실력 좋고, 머신 성능도 경쟁력 있지만 어떻게 단 한번도 우승을 못하냐고. 우승 없이 레이싱 포인트를 가장 많이 쌓은 역대 드라이버 1위로 기록했다. 그래도 점수를 많이 땄으니 웃어야 할지, 우승을 해본 적이 없어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그가 올해 24시즌 마이애미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했다. 신이 도와주듯 전략이 딱 맞아떨어졌고, 자동차도 제힘을 내주고 그도 제실력을 발휘했다. 3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강력한 드라이버 막스 베르스타펜을 7초 이상 따돌렸다. 마지막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고 팀도 환호했다. 중계진과 해설진도 흥분하며 마지막 1랩을 도는 그를 비추며 함께 기뻐했다. 나도 실시간으로 경기를 챙겨보며 마치 내가 우승한 것 마냥 기뻐했다. 오랜 기간 쓴물 삼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갔던 그가 존경스러웠다.


다른 또 한명의 드라이버가 있다. 외모도 모델처럼 잘생겼고, 국적도 매력적이고 희귀한 모나코인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F1 최고의 명문 페라리의 퍼스트 드라이버로 발탁되었다. 심지어 코로나 판데믹 기간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도 하여 피아노 연주곡도 몇 곡 발표했다. 별명이 모나코 왕자님, 모두가 부러워할 것 같은 그는 샤를 르클레르다. 


샤를 르클레르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강력한 양강 체제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레드불 레이싱 팀에서 고군분투하며 페라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드라이버다. 이런 잘생기고 매력적인, 실력도 뛰어난 드라이버에게도 이루지 못한 작은 염원이 있었다. (물론 큰 염원은 월드 챔피언일 것이다)

고향인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는 것. 그는 데뷔 이래 단 한번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다. 팀이 약해서, 혹은 머신 성능이 딸려서, 아니면 그의 실력이 부족해서면 아쉽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모나코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폴 포지션 차지만 3번을 했다. (퀄리파잉이란 본 레이스 전에 출발 순서를 정하기 위한 기록 경쟁이며, 본 레이스 전날에 진행한다. 자동차간 추월이 어려운 모나코 그랑프리 특성상 폴 포지션, 즉 퀄리파잉에서 1등을 차지해야 우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2021년 시즌에 폴 포지션을 따냈고, 본 레이스에서 선두로 레이스를 리드했다. 하지만 경기 초반 기어박스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리타이어했다. 그는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는지 화를 내며 답답해했다. 2022년 시즌에도 폴포지션을 따냈다. 경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는 무사히 레이스를 리드했다. 자신있었다. 드디어 고향에서 모나코인 최초로 우승 트로피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페라리 전략팀의 실수는 잦았고 정말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르클레르의 레이스는 엉망이 되어 1등을 놓쳤다. 


이쯤이면 그에게 징크스가 되지 않았을까? '폴투윈' 즉, 폴 포지션을 차지한 뒤 본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는게 가장 쉬운 트랙 중 하나가 모나코 그랑프리다. 시가지에서 진행하기에 도로 폭이 좁아 자동차가 옆으로 추월하기 어렵고, 유럽의 도로가 그렇듯 구불구불하여 가속을 길게 내기도 어렵다. 그런 그랑프리에서 가장 먼저 출발하면서도 우연과 실수가 르클레르의 우승을 막고 있었다.

2024년 시즌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세번째 폴 포지션을 따냈다. 머신의 성능을 최대한 뽑아내고 그도 신들린듯한 주행을 선보였다. 이번만은 고향에서 우승해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모두들 기대했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일어난 사고로 재출발했지만 여전히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레이스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2018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고향에서 우승하였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모나코인 최초로 우승을 한 선수로 기록된다. 체커기를 받으며 승리를 하자마자 그는 감격해서 흐느끼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부, 그리고 친구를 기리며 값진 영광을 축하했다.


살면서 시련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시련을 맛보면 쓰라리고, 짜고, 쓰다. 당장 뱉어내고 싶다. 시련을 꾸역 삼키며 버티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반문을 하며 자기 회의에 빠지기 쉽다.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린다고 이런 시련을 맛보고 있을까 하며 한탄하기도 쉽다. 


또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다 보면 정체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신호등이다. 인생은 운전길과 같아서 항상 초록 불만 만나며 쌩쌩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이밍 딱 맞춰 초록불이 켜져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을 때의 쾌감은 은근한 짜릿함을 주지만 빨간불은 초조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그들의 시련과 성공을 두 눈으로 지켜보니, 아무래도 시련과 정체는 인생의 조미료가 아닐까 싶다. 랜도 노리스의 첫 우승이 남인 나도 아주 감동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스토리를 선사했고, 르끌레르가 고향에서 우승할 때 나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공감은 바로 그들의 시련과 정체 덕분이었을 것이다. 


소금과 후추는 요리에 반드시 필요한 조미료다. 이 조미료만 그냥 먹으면 짜고, 쓰고 뱉어내고 싶다. 하지만 음식에 들어가는 순간 맛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시련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은 당장 짜고 쓰고 뱉고 싶지만 우리네 인생에 첨가되면서 더욱 맛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하지 않을까? 고통이 클수록 이를 이겨낸 승리는 값진 법이다. 이들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성취를 지켜보면서 나도 내 인생을 조금 더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요즘에는 루이스 해밀턴도 응원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명문팀에서 오랫동안 챔피언을 차지해온 드라이버다. 역대 가장 많은 챔피언을 달성한 선수로 미하엘 슈마허와 동률을 이루는데 은퇴하기 전에 이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나이는 계속 먹어가는데 챔피언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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