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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Feb 15. 2024

엄마표 산후조리원에 입소하다.

응급수술까지 하며 요란하게 엄마가 된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에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걸 잊어버리고 나중에 둘째를 갖겠다고 하면,
꼭 나를 말려줘!


어릴 때부터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고, 그토록 엄마가 되기를 소원했건만 임신 기간 내내 조산기로 조마조마했던 것도 모자라 출산까지 어렵게 했더니 20년 넘게 간직해 온 다둥이 엄마로서의 소망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제왕절개도 다들 게 얘기하지만 개복수술이라 마취가 풀리자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기침이라도 하면 단어 그대로 찢어질 것처럼 아픈 배를 붙들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내 인생에 더 이상 아이는 없다'라고 깔끔하게 오래된 꿈을 파기했다.


보통 제왕절개를 하면 일주일 정도 입원한다고 들었는데, 대학병원은 입원기간이 훨씬 짧았다. 입원기간이 3박 4일이었던가, 개복했던 부위가 아파 허리도 못 펴는데, 아직 아이 수유하는 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 쫓겨나듯이 퇴원을 했다. 오죽하면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하루만 더 있으면 안 되냐고 사정까지 해봤다. 물론 소용없었지만.


산모들이 병원을 나와 일반적으로 가는 곳은 '조리원 천국'이지만, 나는 친정으로 향했다. 출산 전 조리원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좁은 방에서 답답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고, 엄마도 흔쾌히 친정에서 조리를 해도 된다고 하셔서 '아무려면 엄마 집보다 맘 편한 이 어디 있겠나' 싶어 산후조리원을 별도로 계약하지 않았다.


 나이 드신 엄마가 너무 힘드실까 봐 조리원을 알아볼까 다시 얘기했을 때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 아기 낳으면 내가 꼭 조리해 주고 싶었어.
우리 엄마는 내가 너 낳았을 때 몸이 안 좋아서 조리는커녕
아기 얼굴 보러도 못 오셨거든.


그러고 보면 엄마에게도 초보엄마인 시절이 있었지, 객지에서 아이를 낳은 30대 초반의 엄마는 당시 고향에서 몸져누운 자신의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엄마도 엄마의 손길이 참 절실했을 텐데, 홀로 쩔쩔맸을 모습이 그려져 안타까웠다.


반면 나는 엄마와 가까운 곳에 살며 임신 기간 내내 이런저런 도움을 받은 것도 모자라 산후조리까지 친정에서 할 수 있다니, 참 복 받았구나 싶으면서도 나 같은 상황의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홀로 눈물 지었을 엄마가 못내 마음에 걸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퇴원하던 날, 갓 부모가 된 우리 부부는 초소형 신생아용 카시트도 거대해 보일만큼 작디작은 아가를 싣고, 운전하는 남편도 옆에 앉은 나도 뒷좌석의 아빠도 숨 한 번 크게 못 쉰 채 조심조심 아이와 함께 친정에 도착했다.


품에 안은 갓난아기가 부서질까 봐 무서워 벌벌 떨며 친정 현관을 들어서던 순간, 잠든 아가가 깰까 봐 소리 없이 박수를 치며 "아이고 왔어~"하고 속삭이던 엄마의 얼굴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가 그토록 환하게 웃으며 사랑의 빛으로 온통 둘러싸인 듯 밝음을 뿜어내는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병원에서부터 내내 긴장하고 같이 차에 타고 오신 아빠도 거대한 모험을 마친 사람처럼 피로와 뿌듯함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캡션 : 친정에 도착한 너무나 작은 아가와 그저 행복한 할아버지)



그렇게 온 집안이 아가를 처음 맞이하는 행복과 환희로 넘쳐흐르는 가운데, 나도 긴장을 풀고 세상 편하게 침대에 드러누웠다. 역시 조리원을 안 가고 친정에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만족스러워하며,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하며.


당시 누워서 휴식을 취하던 나도, 잠든 아기를 들여다보며 마냥 귀여워를 연발하던 부모님도, 본인의 분신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짓던 남편도 모두 몰랐다. 이 평화로운 순간이 육아 전쟁의 서막이었다는 사실을.


누워 있은지 몇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가 날카로운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시간일 듯하여 얼른 젖을 물리려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병원에 서 전문가인 간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을 때조차 영 자세가 시원치 않아 집중 지도 대상이었던 나는 결국 노하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퇴원한 참이었다. 집에 와서 혼자 하려니 더 잘 안 되고, 아이가 울어대니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엄마, 지금 애가 젖을 제대로 못 먹어서 일단 분유라도 먹여야 할 것 같은데 좀 도와줘."


엄마는 진작부터 준비해 둔 분유통과 젖병을 꺼내고 물을 데웠다. 그런데 뭔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생초보인 나도, 모유수유로 나를 키운 엄마도 분유 타고 먹이는 상세한 방법을 몰랐다. 온도가 너무 뜨거운 건가? 젖병은 왜 잘 안 물지? 분유 앞에선 엄마나 나나 똑같이 그저 초보일 뿐이었다.


신생아에 가장 중요한 먹는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되니 집은 순식간에 지옥이 됐다. 아이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숨 넘어갈 듯이 울어대는데, 분유 타는 건 느리고 나는 수유자세조차 제대로 못 잡아 땀만 뻘뻘 흘리며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갓 태어난 아가들은 수유 텀이 짧은데, 한 번 수유할 때마다 장시간이 걸리며 온 가족이 부산을 떨다 보니 모두가 기운이 쏙 빠져버렸다. 낮이고 밤이고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모두가 밤을 하얗게 새우며 우리는 웃음을 잃었다.

 

아이가 제대로 젖을 못 빨자 나는 젖몸살이 와 열이 39도까지 올라가며 호되게 앓았고, 병원에 가보니 유선염이라고 했다. 아직 수술한 자리도 아물지 않아 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유선염 증상으로 인한 발열과 통증, 계속 우는 아기 때문에 수면부족까지 더해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아이가 잘 때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가위를 눌리기까지 할 정도였고, 이런 나와 아기를 돌보느라 부모님도 순식간에 얼굴이 해쓱해졌다. 장인장모님의 집으로 매일 출퇴근하며 눈치를 살피는 남편도 부쩍 지쳐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혼이 나간 채 친정 조리원은 점점 무거운 공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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