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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Feb 22. 2024

아이는 웃음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

유선염에 시달리며 뻗어버린 딸, 산모 뒤치다꺼리에 아이까지 돌보느라 녹초가 된 엄마, 뒷전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아빠와 그 뒤에서 눈치 보는 사위. 한 집에 어른이 도합 넷이었지만 갓난아기 한 명을 두고 모두가 쩔쩔 매고 있었다.


숙련된 전문인력 하나 없이 가족애 하나 믿고 문을 연 친정 산후조리원은 개업하자마자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직원과 고객의 구분이 모호하고 업무 분장도 불명확한 친정엄마표 조리원에서 모두가 우왕좌왕이었다. 아기와 산모를 주도적으로 돌보고 다른 이들의 식사까지 챙기며 하루종일 종종 대던 엄마는 누적되는 피로에 매 순간 송곳처럼 날이 서 있었다.


예민해진 엄마 원장님에게 모두 돌아가며 혼이 났다. 나는 아기가 기저귀 갈아달라 우는 것도 못 듣고 깜박 잠에 빠졌다가 "애를 오줌밭에 눕혀놓고 잠이 오냐"며 불벼락을 맞았고, 아빠는 밤에도 수시로 깨서 우는 아기 때문에 본인도 잠 못 들고 거실에 나왔다가 "왜 신경 쓰이게 자꾸 발을 질질 끌며 돌아다니냐"며 타박을 받았다. 늘 사랑받던 사위는 아기 기저귀 갈 때 괜히 수건을 깔았다가 하필 거기 아기가 소변을 지리는 바람에 "괜히 빨랫감만 늘어나니 수건 깔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고 움찔했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도 아닌데 이대로는 나도 제대로 조리를 못하고 엄마도 못 버틸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조리원을 알아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도우미라도 구해 볼까 싶어 엄마에게 얘기를 꺼내보았지만, 집에 모르는 이 들이는 것도 싫고 사람 쓰는 게 더 신경 쓰인다며 거절하셨다.


"아, 이대로는 힘들다면서 사람도 구하지 말라면 나보고 뭐 어쩌라고!"


머리끝까지 스트레스가 꽉 차 있던 나는 그만 엄마에게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 게 속상하고 미안했지만, 그 죄책감이 부담으로 쌓인 데다 수술 후 회복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수면 부족에 유선염까지 겹쳐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던 터라 이성의 끈을 탁 놓아버렸다.


"엄마가 조리해 준다고 했잖아! 이렇게 힘들어할 거면 왜 친정으로 오라고 했어? 나 지금이라도 짐 싸서 그냥 우리 집에 가는 게 낫겠어! 가서 사람을 부르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엉엉 울며 악다구니를 하는 못돼 먹은 딸 앞에서 엄마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제 감정 못 이기고 계속 흐느껴 우는 딸에게 엄마도 소리를 질렀다.


"아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


엄마의 저런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라 나는 울음을 그치고 멀뚱히 엄마를 바라보았다.


"나도 애 낳은 지 하도 오래돼서 몰랐다! 다 까먹었지 뭐. 내가 애 키운 게 도대체 몇십 년 전인데......"


그렇다. 엄마의 육아 경험은 삼십 년 전  한 번, 나를 키울 때밖에 없었다. 수십 년 전 아이 딱 한 명 낳아 길러본 엄마에게도 신생아 육아는 너무 힘들고 두려운 경험이었을 텐데, 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나는 괜히 조리원에 안 가고 친정에 온 바람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징징대고나 있었던 것이다. 정작 이 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나인데.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각자 눈물 흘리는 시간을 가진 모녀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훌쩍이는 소리만 간간히 나던 가운데 먼저 침묵을 깬 건 엄마였다.


"뭐 나아지겠지...... 일단 있어봐."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우리 집으로 쫓겨나지 않아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말로는 친정에서 나와 도우미를 구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아이를 낳은 후 남편이 잠만 자러 들르고 있는 우리 집 상태가 얼마나 엉망진창일지 상상도 안 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아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서로의 울분을 쏟아내고 나니 기분이 좀 풀어지기도 했고, 엄마의 '나아지겠지'라는 말이 주는 힘이 있었던지 그럭저럭 아이 돌보는 일에 팀워크가 맞춰져 갔다.


네 명의 어른은 합심하여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며 빅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빅데이터'라는 용어도 대두되지 않았을 시기지만.) 마치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 사관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먹고, 싸고, 자고가 전부인 갓난아기의 일상을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엄숙하게 기록했다.


 2014년이라는 연도가 찍혀있는 스프링제본의 다이어리에는 우리 네 명의 필체가 골고루 들어있다. 내가 수유 중이거나, 엄마가 주방 일을 하는 중이거나, 아빠가 외출하셨거나, 남편이 출근해 있을 때, 부재중인 사람을 대신해 누군가가 펜을 잡고 아이의 일상을 기록했다. 단체로 육아초보인 우리는 이렇게 기록을 해가며 아이의 수유 패턴에 변화가 있는지, 배설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수면시간은 충분한지 등을 진지하게 분석하며 나름 과학적 육아를 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나름 주간보고서를 써보려 노력한 할아버지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를 키운 건 기록과 데이터 분석이 아니었다. 애초에 육아라는 자체가 일관성도 없고 우리의 경험치를 훨씬 넘어서는 일들의 연속이다. 특히 신생아 육아는 낮과 밤의 경계가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기가 먹고 싸고 자는 행위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면서 본인의 생물학적 욕구는 뒤로 미뤄둬야 하는 요지경 세상이다. 아무리 졸려도 아기가 울면 벌떡 일어나 아이를 살펴야 하고, 화장실에 가다가도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그쪽으로 먼저 달려가야 하는 육아의 세계, 부모와 조부모가 된 우리는 이 생경한 경험을 함께 하며 같이 울고 웃었다. 오늘 하루도 아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일분일초를 열심히 기록하며.


할아버지와 눈 맞추고, 할머니랑 트림하고


젖을 먹고 노곤하게 잠든 아가를 품 속에 꼭 보듬고 달큰한 젖냄새를 킁킁 맡는 엄마의 설레는 마음, 자신을 꼭 닮은 아기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채 하루에도 몇 백장의 사진을 남기는 아빠의 뿌듯한 미소, 아이를 보고 있으면 감동스러워 자꾸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치던 할아버지의 촉촉한 눈빛, 그리고 본인은 너무 힘들어 밥도 안 넘어간다면서 아기의 꺽 하는 트림 소리가 듣고 싶어 아가 등을 살살살 두드리고 또 두드리던 할머니의 깃털 같은 손길. 그 모든 순간의 웃음과 눈물 속에 진하게 응축된 사랑을 먹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의 찬란한 황홀육아'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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