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대한민국이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든 나라라고 입을 모으지만, 의외로 한국의 육아 관련 법령과 제도를 부러워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해외에 지사들이 있고 가끔 외국 직원들을 접할 기회가 있는데,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출산 후 쉴 수 있는 기간이 짧거나 휴직 제도가 있더라도 법적으로 강제성을 띠지 않는 곳도 있었다. 복지 강국으로 알려진 유럽의 몇몇 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경험상 1년의 육아휴직을 법제화한 우리나라의 제도 자체는 괜찮은 축에 속했다.
나라에서 법으로 보장해 주는 권리이건만, 10년 전의 나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채 80일도 되지 않았을 때 다시 회사에 나갔다. 당시 회사가 휴직을 쓰기 어려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여러 사정이 겹쳐 휴직을 쓰지 않고 출산휴가만 사용한 후 바로 복직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아이는 태어난 지 78일째였다. 숫자에 약하고 유난히 날짜도 잘 까먹는 나지만, 그 78이라는 숫자는 인생을 사는 내내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복직하던 날 아침, 아기는 엄마가 나가는 것도 모른 채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현관에서 바라본 아기가 어찌나 작디작은지 눈물이 핑 돌았다. 아기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자고 있어서 내가 서 있는 방향에서는 뒷모습만 보였다. 유난히 동그란 모양에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이 소용돌이치듯 모여있던 그 작은 뒤통수가 왜 그리 애처롭게 보였는지,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가서 옆에 바짝 붙어 누워 아기의 솜털 같은 머리카락을 한없이 쓰다듬고만 싶다.
당시 우리 회사는 8시가 업무 시작 시간이어서 부모님은 새벽같이 우리 집으로 오셔야 했다. 졸음과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현관에 들어서는 부모님과 바통 터치를 하고 집을 나서는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한없이 모두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출근길에 나선 이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일 똑같이 아침이면 회사로 향한다.
나중에 정 출근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써야지,
아이가 입학할 때 휴직하는 게 좋다던데,
승진할때까지만 버텨보자,
이런저런 이유로 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채 아껴둔 건지 미뤄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느새 "자녀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이하"라는 법적 제한의 마지노선에 다다른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일이 빨랐기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순간 나는 육아휴직을 사용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휴직을 쓰려면 한 달 전에 결재를 완료해야 해서 아이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로부터 1개월 전 시점, 최소한 2월 초에는 내부적으로 휴직 사용에 대한 협의가 끝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하필이면 그 시기에 회사는 새로운 인사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나는 승진 대상자에 올라 있었는데, 예전에는 12월 말에 승진발표가 났지만 제도가 바뀌며 2월 초로 승진자 결정이 미뤄지게 되었다.2월 전에 휴직 의사를 밝히면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루에도 몇 번씩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승진 발표가 날 때까지 휴직의 휴 자도 꺼내지 않은 채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휴직 기회는 날아가버렸고, 매우 다행히도 나는 최종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휴직도 못 한 채 기다렸는데 승진이 안 될까 봐 엄청나게 마음 졸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뛸 듯이 기뻤지만, 마치 휴직과 승진을 맞바꾼 느낌이라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이 알량한 직급을 따내고자 아이의 하루를 온전히 책임지는 마지막 기회를 포기했던가, 연로하신 부모님은 이제 꼼짝없이 우리 집에 발목이 잡히신 건가, 역시 난 나만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사람이었던가 스스로를 탓하며.
이제는 퇴로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워킹맘은 매일 배수의 진을 치고 출근한다. 이제 와서 무너뜨리기엔 너무나 아쉬운 회사에서의 경력과 시간을 쌓는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응원해 준 우리 가족을 등에 업고 오늘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 또 전진이다. 내일도 변함없이 회사로 진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