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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r 28. 2024

내 아기가 할머니를 더 좋아하면 어쩌지

워킹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 중 하나는 내가 낳은 아이를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죄책감과 좌절감이다. 맞벌이 관련 기사 댓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우지도 못할 거면 왜 았냐"원색적 비난에 상처받고, "사정상 아이를 다른 이가 돌보더라도 주양육자는 반드시 부모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접하면 마음의 부담은 가중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80일도 안 되었을 때 회사에 복직하면서, 아들이 엄마의 존재를 꽉 차게 받아들이기 전에 집을 나서는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아이가 하루종일 곁에 없는 나를 엄마라고 인식이나 할까, 더 긴 시간을 함께 하는 할머니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아이가 나보다 할머니를 더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정녕 월급 몇 푼과 모자간의 사랑을 바꿔버린 거라면, 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된다면.


아이가 분유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모유수유를 끊을 수가 없었다. 유축과 수유를 반복하며 내가 사람인지 젖 짜는 기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점심시간조차 홀로 유축을 하며 아무도 만날 수 없어 회사에 나가는데도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이상한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그 정도 노력이라도 해야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고, 적어도 수유를 하는 시간만큼은 좋든 싫든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있어야 하니 그때만큼이라도 아이와 연결된 느낌을 만끽하고 싶었다.


내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에는 미리 유축해 둔 모유를 젖병에 담아 먹으며, 할머니 품에서 젖병을 물고 있는 중에도 엄마의 냄새와 엄마만이 줄 수 있는 맛을 느끼며 나를 잊지 않기를 바랐다.


할머니 품에서 엄마 젖을 먹으며 큰 아가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면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품에 와락 안기기를. 꼬맹이들이 퇴근한 엄마나 아빠를 맞이하려고 까르르 웃으며 쪼르르 달려 나오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되면 그런 행복한 퇴근장면이 내게도 찾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기는 내가 회사에서 돌아와도 데면데면했고 딱히 기다린 눈치도 아니었으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으로 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면 목놓아 울었다. 아이에게 우선순위는 아빠보다는 할아버지였고, 엄마보다는 할머니였다.


처음에는 하루종일 조부모와 보내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눈물의 퇴근시간이 반복되자 마음에 서운함이 일었다.


"저러다 영영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해? 계속 할머니만 찾으면 난 어떡해?"


아이 엄마가 되고도 철없는 딸은 엄마에게 징징거렸다. 본인 때문에 하루종일 아기 돌보느라 하루가 다르게 늙고 있는 부모님께, 마치 자기 아이를 뺏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가시 돋치게 투정을 했다.


"야, 별 걱정을 다 한다! 이렇게 고생해서 키워도 결국엔 다 자기 어미 아비만 찾는다더라. 원래 손주 키워준 공은 하나도 없대!"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내 품에 아이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이는 편안한 할머니 품에서 벗어나 안는 것조차 어설픈 내 품에서 불편한 듯 꼼지락 거렸다.


수십 년간 깔끔하게 집안 살림을 해낸  엄마의 전문적인 손길과 내 투박하고 서툰 손길은 애초에 상대가 안 됐다. 엄마의 손은 우아한 마법사 같아서 우리 집 살림도, 육아도, 엄마의 손이 스치고 지나가면 모든 것이 놀랍도록 안정되었다. 아이도 할머니가 돌볼 때 더 말끔하고 예뻐 보였고, 하다못해 가제 손수건 한 장 조차 내가 접었을 땐 아귀가 하나도 안 맞는데 엄마가 접어 놓으신 건 호텔 식당에서 나오는 냅킨처럼 각이 딱딱 맞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꼭 살림과 육아의 고수라서가 아니라,

아이는 누가 자기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지 본능적으로 알았을 거다. 함께할 물리적 시간도 부족했지만,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은 조건이 많았다. 내가 피곤하지 않을 때, 아이가 울지 않고 방긋방긋 웃을 때 내 사랑의 크기는 더욱 커졌고 반대의 경우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에게 매몰차게 대할 때도 많았다. 울어도 토를 해도 똥을 싸도 그저 손주가 이쁘고 귀하기만 한 조부모님의 찐 사랑 앞에서 초보엄마의 얄팍한 애정은 빛을 잃을 수밖에.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는 할머니의 예언대로 "엄마 사랑해"를 달고 사는 엄마 껌딱지로 자랐다. 단, 예언이 모두 맞은 건 아니다. 아이는 엄마아빠만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나 몰라라 하지 않으니까. 아직도 평일이면 조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매일같이 살을 비비며 사는데도 명절에 할머니 집에 간다고 뛸 듯이 좋아하고, 명절을 보내고 우리 집으로 돌아갈 때는 이틀 후면 다시 만날 텐데도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다며 서럽게 운다.


어버이날과 조부모님의 생신 같은 기념일이 다가오면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그림 카드를 만들고, 전화를 끊을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사랑해"라고 인사하는, 무한한 사랑받은 만큼 작은 몸 가득 사랑을 품은 다정한 어린이로 자랐다.


아들이 이렇게 사랑 많은 아이로 자랄 걸 미처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는, 엄마로 인정 못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옛 시절이 그저 부끄럽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전히 모든 게 어렵고 서툴기만 한 엄마지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애정을 쏟아내며 오늘도 사랑하며 산다. 바라는 것 없이, 걱정도 없이, 그저 오늘도 내일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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