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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r 22. 2024

이토록 지독한 모유수유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가장 중요한 일이고 가장 초라한 일이었다.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모유수유는 다 함께 천국으로 향하다가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인용한 오마주입니다. 원문은 글 하단에 기재했습니다.)



육아 초반, 우리 부부와 부모님 모두를 혼돈 속으로 몰아놓은 것은 바로 수유였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수유자세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후 온 가족이 허둥대다가 유선염으로 고생을 하며 눈물콧물 범벅인 채로 수유생활을 시작했다.


엄마가 초보이고 수유에 서툰 것을 배려할 리가 없는 아가는 하필 분유 먹는 걸 거부했고, 또 하필 내가 모유량이 많지 않았던 탓에 젖을 자주 물려야 했으며, 정말이지 하필이면 아이가 80일도 되기 전에 난 풀타임 직장인으로 복직해야 했다. 분유를 먹지 않는 아기에게 내 몸뚱이는 유일한 생명줄이었고, 나의 가슴은 여성으로서의 상징이 아닌 오로지 새끼를 먹이는 암컷의 도구로만 존재했다.

 

나는 아파서도 안 됐고 쓰러져서도 안 됐으며 잠들어서도 안 됐다. 오직 나만이 아이의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히 발육할 수 있는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귀하고 거룩한 일이자 끔찍하고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아기의 유일한 밥그릇인 내가 일주일 중 5일간 하루종일 집을 떠나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아기와 나, 아기를 함께 돌보는 모든 가족에게 험난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낮이고 밤이고 하루종일 아기와 한 몸이 된 채 젖을 자주 물려가며 아기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건만, 직장 복귀 후에는 어찌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젖병도 바꿔보고 이런저런 분유를 시도해 보았지만, 아이는 희한하게도 모유가 담긴 젖병은 잘 빨다가도 분유를 넣은 병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모유수유를 유지하기로 하고 복직하기 전 모유 재고(?)를 최대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나서 남은 모유를 유축하는 걸 반복했지만 안타깝게도 모유 공장을 최대치로 돌려봐도 생산능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결국 재고를 얼마 쌓아놓지 못한 채 복직한 후, 나의 하루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수유와 유축으로 가득 채워졌다.


회사로 돌아왔어도 난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유축을 해야 했으니까. 최대한 유축을 하고, 유축한 모유를 팩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고, 유축기를 씻고 말리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면 점심시간은 단 1분도 남지 않았다.


퇴근하면 최대한 빨리 집으로 달려왔다. 전날 유축해 둔 모유는 다음날 출근해 있는 시간 동안 아기가 먹는 양에 간당간당하게 맞출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이가 굶는다. 매일 새벽같이 우리 집으로 오신 부모님이 젖병에 담은 모유를 아이에게 먹여주시고, 그 모유가 바닥날 때쯤 내가 퇴근하는 시스템이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외투를 미리 벚어젖히며 아이에게 젖을 줄 준비를 하는, 당시의 하루하루는 매 순간이 모성의 시간이었고 짐승의 시간이었다.


모유에만 의존하는 어린 아기를 두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수유를 직접 하는 나도 힘들었지만 가족 모두가 늘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참석이 불가피한 회식이라도 있는 날에는 남편이 회식장소까지 찾아와 점심시간에 유축해 뒀던 모유 팩을 받으러 왔다.


그렇게 매일 혹시라도 아이가 굶는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무려 18개월 간 모유수유를 했다. 이유식을 하면서부터 모유가 점점 주식이 아닌 간식 수준으로 비중이 낮아지자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집에서는 수유 쿠션, 회사에서는 유축기와 한 몸이 되어 지낸 그 징글징글한 시간들이 그래도 아름답게 남아있는 건 세월이 지나며 힘들었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아이에게서 풍기는 젖 냄새처럼 달큰한 추억만 남아서다.

수유쿠션 위에서 새근새근

찢어질 듯한 소리로 울다가도 젖을 물리면 순식간에 고요해지던 순간, 젖을 먹고 배가 불러서인지 힘들어서인지 나른히 눈을 감고 솔솔 잠에 빠져들던 귀여운 얼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느라 촉촉히 땀에 젖은 가느다란 머리카락. 지독하게 힘들었고 지독하게 그리운 시간이다.



혹시나 모유에 영향이 있을까 봐 디카페인 커피도, 무알콜 맥주조차 입에 대는 걸 망설이며 조심조심 보냈던 그날들. 뱃속에 품고 다닐 때보다 더 자주 한 몸으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던 모유수유하던 시절. 이제는 달달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그 세월들을 위하여, 0.5%의 진짜 알코올이 함유된 맥주로 건배!



[참고. 서두에 인용한 문장]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지만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의 신기원이 도래함과 동시에 불신의 신기원이 열렸다. 빛의 계절이면서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다. 다 함께 천국으로 향하다가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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