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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pr 04. 2024

나 때문에 아빠가 병에 걸리신 거야

따스했던 봄기운이 슬슬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여름의 입구에 다다랐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근교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손주 돌보느라 매일같이 딸 집으로 출근하며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경치 좋은 곳에서 쉬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올 생각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아빠가 두통이 좀 있다 하셔서 병원 진료를 받기로 했다. 여행 가서 몸져눕기라도 하면 낭패니 병원에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다들 가볍게 생각했고, 평소 아빠가 워낙 건강해서 병원에 잘 안 가셨기 때문에 노화로 인해 불편한 증상들도 이것저것 문의할 겸 종합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지나가듯 이야기를 나눈 후 아빠가 병원에 진료 가기로 하셨다는 사실 자체를 이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님이 검진을 좀 더 받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

"왜?"

"오신 김에 전체적으로 한 번 보자고 해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에 뭐가 보여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

"아~~ 그거 원래 아빠가 폐렴이었나 뭐 앓고 지나간 흔적이라서, 원래 건강검진 받으실 때마다 결절 있다고 나온다고 했어."

"그래? 알겠어."


엄마에게 어렴풋이 들었던 뭔가 앓고 난 흔적, 아빠의 폐에 보인다는 '무언가'가 그 대수롭지 않은 흔적이라고 철석같이 믿었기에 걱정 많은 내 성격에도 나는 털끝만큼의 염려도 기울이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온 아빠를 포함해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았던 검사 결과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우리 가족 모두를 동시에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아빠의 폐에 보이던 '무언가'는 그저 무시해도 좋을 흔적 따위가 아니었다. 아빠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는,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높은 무서운 놈이었다.


루틴의 제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일 년 365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이, 술 담배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늘 건강하고 담백한 집밥을 드시는 아빠가,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을 자랑하며 게으른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아빠가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니.


암의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조직검사 결과 폐암으로 최종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이미 꽤 진행이 된 데다 폐암 중에서도 특히 예후가 안 좋고 수술적 치료도 불가하다는 소세포 폐암이었다.


"여명은 3개월... 정도... 얘기하시네......."


아빠를 모시고 진료실에 다녀온 남편은 마치 본인이 아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온 집안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물들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 일만 하다가, 이제 겨우 손주 보는 재미에 사는 사람인데...... 어쩜 그거 하나도 못 누리게 하냐......"


엄마는 얼굴을 감싼 채 울고 또 우셨고, 매 순간 하늘을 원망했다. 나는 나 자신을 원망했다.


다 나 때문이라고.


그렇게 건강했던 아빠가 큰 병에 걸린 건  탓이라고. 내가 아빠를 잡아먹었다고.


잠을 잘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며 암세포에 속절없이 무너진다는데, 산후조리할 때부터 친정에 머물며 연로하신 아빠를 고생시킨 내 탓이었다. 깊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아기가 울 때마다 비척비척 방에서 거실로 걸어 나오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푸석푸석 피곤이 묻어있는 얼굴로 아기가 왜 우나며 뭐 도와줄까 묻곤 하시던 아빠. 이 모든 불행은 다 나 때문이었다.


엄청난 죄책감과 충격으로 매 분 매 초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나는 당시 휴가를 계속해서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허무하게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당시에는 중차대했던 일 때문에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을 엄마에게 아기를 맡긴 채 회사에 나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사에 나와 있어도 자꾸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화장실에 가서 목놓아 울 틈도 없어서, 파티션 아래 최대한 몸을 숙여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손가락은 키보드에 얹고 시선은 모니터를 향한 채로, 속으로는 미친 듯이 아우성을 외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무실의 그 누구도 숨죽여 우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폐가 아닌 다른 부위에 진 암을 떼어내고, 항암치료를 하며 입원을 반복하는 동안 아빠의 부재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가 공동으로 아기를 돌봐왔는데 갑자기 모든 시스템이 어그러져 버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이 아빠가 치료받는 병원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남편이 아빠의 보호자 역할을 주로 하고, 아직 두 살인 아기는 나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보기로 했다.


하지만 띄엄띄엄 휴가를 내는 나와 환자 케어만으로도 이미 기력이 소진한 엄마가 아빠의 빈자리를 오롯이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아빠의 손자사랑이 워낙 대단했던 탓에, 아기는 할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고 자주 칭얼거렸다.


아빠가 계실 때는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으신 적이 없었다. 집에서도 아기는 늘 할아버지에게 안겨 있었고, 손자를 품에 안고 온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아이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게 아빠의 낙이었다. 오죽하면 주말에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서면 마주치는 모든 이웃들이 "어머, 맨날 할아버지가 안고 다니는 아기구나"하고 알아볼 정도였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자기를 안고 걸어 다니라며 울고 조르는 아기 때문에 엄마도 나도 아기와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적당히 안으랬더니, 애를 이렇게 사람 손 타게 만들어놓고 아파 버리면 나는 어쩌라고~"


엄마가 눈물짓는 모습을 볼 때마다 죄인인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엄마 앞에서는 최대한 담담한 척하며 우리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다독이고, 밤이면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워하며 흐느꼈다.


그렇게 낮이면 혼이 쏙 나가고 밤이면 눈물짓느라 잠 못 들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퇴근을 해 전철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문득 몇 개월 전의 장면이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건강했던 아빠가 늘 그러했듯이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집 근처를 걷고 계셨고, 때마침 퇴근하던 나와 마주친 적이 있다. 당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빠와 아이를 발견했는데, 손자를 꼭 안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속삭이며 느긋하게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오던 아빠와 인형처럼 안겨있던 아이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그때는 그저 퇴근길에 마침 마주쳐 반갑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사무치게 그립고 행복한 장면이었다.


늘 아기를 안고 다니셨던 아빠

똑같은 퇴근길, 그때 그 길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내 앞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손자를 안고 빙그레 웃던 아빠도, 할아버지 품에 세트처럼 쏙 들어가 있던 아가도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손에 닿을 수 없는 행복, 이제 그 어떤 좋은 일도 생기지 않고 다시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나는 길거리에 선 채로 흐느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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