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골골대는 약한 딸을 둬서, 그 딸이 바닥인 체력으로 어찌어찌 버티며 쉬지 않고 출근을 해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아이를 뱃속에 품은 순간부터 황혼육아를 시작했다. 아이를 낳은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빠가 큰 병과 싸우고 있던 때에도, 엄마가 고관절을 다쳐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지내던 시절에도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 가며 꿋꿋이 회사에 나갔고, 부모님 역시 위태위태한 고갯길을 힘겹게 넘고 또 넘으며 손주 보는 일을 놓지 않았다.
부모님이 그렇게 굳건히 버텨주고 계셨기에 숱한 고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회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고,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 한 편으로는 부모님의 노고를 어떻게 보상해드려야 하는지 부담감이 따라다녔다. 부모님께 매월 드리는 돈을 주식에 넣어서 왕창 불려서 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 봤고(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은 나를 정말 칭찬한다...), 이 명목 저 명목 보너스 개념으로 슬쩍슬쩍 돈을 더 얹어드리기도 했는데 그런 돈은 결국 우리 집 냉장고를 채우는 온갖 식재료와 쑥쑥 자라는 아이의 새 옷과간식 등, 유가증권에서 현물로 형태만 바뀌어 오롯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유형자산은 부메랑처럼 자꾸 던졌다 하면 돌아오니 오로지 부모님만 누릴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인 추억을 많이 쌓게 해 드려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고급 레스토랑도 가보고, 제주도로 여행도 떠나봤다. 하지만 온갖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손주 입에 들어갈 거 먼저 챙기느라 음식은 번번이 식어버리기 일쑤였고,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제주도는 장소만 옮긴 또 다른 육아의 장일뿐이었다. 부모님은 식사를 할 때도, 함께 여행을 떠날 때도 신경 써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도 눈으로 아이를 따라다니고 계셨다. 더 잘해드리려고 할수록 이상하게 부모님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무엇을 어떻게 해 드려야 두 분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해하실지 난감해만 하다가 9년이라는 세월이 가 버린 어느 날, 우리에게는 일생일대의 효도 기회가 찾아왔다.
임.영.웅.
휠체어 탄 어머님들도 콘서트장을 기꺼이 찾게 만드는 마성의 히어로 임영웅. 집에 못 하나 안 박는 골수 미니멀리스트인 엄마가 스스로 금기를 깨고 친정 집 벽 구석구석 대문짝만 한 사진을 붙여놓게 만든 남자. '너도 늙어봐라, 세상에 재미있는 게 있나'하며 매사 심드렁해하는 엄마를 유일하게 활짝 웃게 하는 존재. 그 대단한 임영웅의 용안을 알현할 기회를 엄마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되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피 터지는 임영웅 콘서트 예매를 남편이 해낸 것이다! '절실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을 뽑아보라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인데, 그런 그가 1분에 370만 명이 몰리는 어마어마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니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티켓은 부모님 두 분 것만 예매를 했지만, 어마어마한 인파 속에 연세 많으신 두 분이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실 것 같아 우리는 콘서트장에 동행했다. 콘서트가 열리는 올림픽공원은 온통 임영웅을 상징하는 하늘색 물결로 넘실대고 있었다. 곳곳에 하늘색 머리띠, 하늘색 맨투맨, 하늘색 스카프로 치장한 어머님들이 임영웅의 얼굴이 찍힌 배지를 하늘색 가방에 매달고 쾌활하게 활보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아주머니들을 한 자리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젊은 나보다 300배는 더 힘차고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녀들이 저마다 온갖 빛깔의 하늘색으로 반짝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어머머, 여기 완전 임영웅 왕국이네~."
"어머어머, 저 아줌마들 좀 봐, 어머 세상에~"
평소 전형적인 아줌마의 것으로 분류되는 것들 - 이를테면 우렁찬 목소리, 화려한 등산복, 뽀글뽀글 파마머리 - 을 질색팔색하며 항상 고고하고 우아한 자세로 살아온 엄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임영웅 굿즈로 치장한 발랄한 노년의 여성 무리가 충격적이면서도 은근히 부러운 듯 힐끔거렸다. 온갖 종류의 하늘색 상품을 모아놓은 노점상들을 기웃거리며 말없이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엄마에게 '너의 등쌀에 못 이겨서 샀다'는 명분을 드리기 위해 '이것도 기념인데 뭐라도 하나 사라'고 적극 권했고, 엄마는 못 이기는 척 하늘색 스카프를 하나 골라 곱게 목에 둘렀다.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 한 번을 가려고 해도 끝없이 줄이 늘어서 있고,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 하나 살 때도 엄청난 대기 줄, 임영웅 판박이 스티커 한 번 손등에 새기려면 또 줄, 그 어떤 여행지에서도 이렇게 줄을 서야 한 적은 없었다. 지금껏 우리가 모시고 다닌 곳 중 가장 복잡하고 고생스러운 곳에서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빛났고 덩달아 아빠도 한껏 들떠 보였다.
부모님 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기다란 줄을 이루고 서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싱글벙글 밝은 기운을 뿜고 있었다. 몇몇 아주머니들은 지금 방영 중인 음악 프로그램에서 임영웅이 1위 후보이니 문자투표를 하라며 투표 방법을 쾌활하게 알려주며 다니셨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폰을 집어드는 분위기 속에 하마터면 나까지 투표할 뻔했다. 임영웅이 그 자리에서 대선에 나오면 바로 당선될 분위기였다. 카페에서 먹을 것들을 사러 줄 서 있는 동안 이름 모를 하늘색 모자의 아주머니가 우렁차게 "영웅 님이 1위를 했다고 합니다!"를 외쳤고, 카페 안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여기는 정말 엄마 말대로 임영웅 왕국이었고, 모두가 임영웅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하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에너지 넘치고 행복한 임영웅 월드에서 엄마 역시 모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입장 시간에 맞춰 콘서트장에 부모님을 들여보내고, 학원 라이딩과 대기를 반복하는 학군지 수험생 부모처럼 근처 식당과 카페를 배회하며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같은 처지의 효자효녀들이 여기저기 앉을 만한 공간이 있는 곳이면 다 자리를 차지한 채 먹고 마시며 동네상권을 살리고 있었다. 임영웅 한 명이 가진 경제효과란 대체 어디까지인가.
그날 우리의 효도는 공연이 끝나고 임영웅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깐 차로 집까지 모셔드리는 걸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두 분은 차 안에서 '늙은 사람들 잘 안 보일까 봐 대형 스크린을 잔뜩 설치하고' '엉덩이 아플까 봐 푹신하고 예쁘기까지 한 방석을 모든 좌석에 깔아 둔' 임영웅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며 '덕분에 너무너무 잘 봤다'라고 내내 흐뭇해하셨다. 지난 9년간의 황혼육아로 늘 피곤해 보이던 두 분의 가장 밝은 모습이었다. 오늘의 최고 수훈 선수인 남편도 하도 칭찬을 많이 받아 어깨가 한껏 으쓱한 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제 새해가 되면 가족의 건강과 행복 외에 꼭 빌어야 하는 소원이 하나 더 생겼다. 임영웅 씨,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좋은 노래 들려주세요. 이런 스펙터클한 효도는 영웅 님만이 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