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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n 27. 2024

[마지막 이야기] 우리는 서로의 선물입니다

부모님의 생신이 찾아올 때면 기본적으로 드리는 현금 외에 특별한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것들이 없을까 늘 고민한다. 주 5회 우리 부부가 회사를 나가는 일정과 똑같이 우리 집으로 출근하셔서 손주를 10년째 돌보고 있는 나의 부모님, 아이를 매일같이 맡기면서도 정작 얼굴을 마주할 일은 없는 내 엄마아빠에게, 생신날만큼이라도 평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침에 내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하고, 하교 이후에는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시고, 저녁에 나보다 남편이 먼저 집에 도착해 부모님과 바톤 터치를 하는 릴레이 시스템. 내가 안심하고 회사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이 돌봄 체계 속에서 나와 부모님은 서로 대면할 기회가 없다. 어쩌다 남편에게 사정이 있어 내가 저녁 시간 주자가 되는 날이면 부모님은 내게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하신다. 매일 딸이 사는 집으로 출근하지만 딸 얼굴 보기는 힘든 부모님께 늘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부모님의 생신은 그런 불편한 마음을 덮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부모님의 행복한 미소로 그간의 죄책감을 한 번에 지워 버리려는 내 알량한 마음은 이런 기념일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만든다. 현금을 두둑하게 챙겨드려도 봤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엄마의 손목이 휘청거릴 정도로 묵직한 꽃바구니도 준비해 봤고, 뭐 필요한 건 없는지 집요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이왕이면 갖고 싶은 거, 필요한 걸 선물로 주는 게 좋지 않냐"며 계속해서 물어보는 딸에게 부모님의 대답은 늘 정해져 있다. "됐어~~~."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면 "선물도 됐고, 식사도 그냥 엄마아빠 생일 합쳐서 한 번에 하면 된다. 뭘 번거롭게 늙은이들 생일을 따로따로 챙기냐"로 이어져 버린다.


번번이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직장 생활하는 사위와 딸을 위해 그 긴 세월 손주를 봐주면서도 왜 부모님은 그 흔한 유세조차 떨지 않고, 부모님의 편안한 노년을 방해하고 있는 건 우리 부부인 정작 부모님은 우리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시는지 속이 상할 지경이다.


얼마 전 부모님의 생신이 각각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물 필요 없음, 식사도 한 번에 해도 됨'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우리는 열심히 분위기 괜찮고 맛 좋은 식사를 제공하는 곳을 찾았고 선물을 준비했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가 깨달은 좋은 선물의 원칙은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보다도, '그 사람이 본인 돈 주고는 안 살 물건'이다.  꼭 필요한 거라면 내가 굳이 선물하지 않아도 본인이 살 테니까.



올해 생일엔 내가 정한 그 원칙에 따라 평소의 아빠라면 절대 사지 않을 회사한 옷과 모자를 선물했고, 엄마에게는 허세 가득한 포장 박스 안에 담긴 고가의 화장품을 드렸다. 부모님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아하셨고, 여기에 아들이 정성스레 만든 카드로 화룡점정을 찍으며 즐거운 파티를 완성했다.


나는 엄마아빠로부터 10년째 소중한 세월을 빼앗아 살아오고 있으면서, 아이의 엄마가 아닌 사회인 내 이름 석 자로 사는 시간들을 선물 받고 있으면서 하루 반짝

이벤트로 보답하는 건 한없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안다.


 부모님께 선물 받은 시간들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만큼 늘 부채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고, 부모님 건강도 항상 걱정되고, 아이가 나중에 조부모님과 이별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만큼 상처가 클까 봐 두렵다. 내가 맞벌이를 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어도 될 작별의 경험을 괜히 아이가 하게 되는 것 같아 미리부터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손주가 만든 카드를 손에서 한참을 놓지 못하고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한없이 베풀어 주시는 조부모로부터 사랑을 배운 아이가 배운 대로 예쁜 마음을 가득 펼쳐 놓은 카드를 보며 속으로 되뇌어 본다.


이 고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는 우리 모두가 미소 짓는 이 찬란한 순간들이, 오늘도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언젠가 이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는 날들도 오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함께 울고 웃고 반짝였던 때가 있어 가슴 벅차게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감사하다고 또 감사하다고 기도하듯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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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찬란한 황홀육아> 연재는 오늘로 끝을 맺습니다. 귀한 시간 들여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찬란히 빛나는 하루를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곧 더욱 반짝이는 작품으로 여러분의 일상을 밝혀드리러 다시 찾아올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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