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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Feb 29. 2024

It's alright, 우리집으로 가자

아기를 낳고 친정에 머물며 부모님과 화끈한 첫 육아의 과정을 함께 나눈 지 어느덧 두어 달이 지났다. 보통 2주면 조리원에서 나와 각자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나는 무려 4배나 더 산후조리를 한 셈이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수술 부위 통증이 오래가서, 유선염으로 고생을 해서, 아직 집에 아기방을 꾸미지 못해서 등등의 온갖 핑계로 친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게 겁이 났다. 부모가 아이를 낳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의 힘으로 키우는 게 당연하거늘, 육아의 첫 단추부터 친정의 도움을 받아 끼웠더니 자꾸만 육아가 더 어렵게 느껴졌고 나 혼자 하면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마저 생겼다.


여전히 초보엄마라 겁은 났지만 언제까지고 친정에 머물며 부모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법, 우리 세 가족의 진짜 집으로 가는 날이 마침내 왔다. 조심스레 아이와 차에 올라 친정에서 20분 정도 거리의 집으로 가는 길, 이제야 진짜로 부모가 되는 기분에 설레기도 하고 아이가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낯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들고, 여러 감정이 빠른 속도로 오고 갔다.



(최준 집 가지 말고, 준호 집은 가고 싶지만 갈 수 없고, 진짜 우리집으로 가자.)


"똥똥아, 여기가 진짜 우리집이야~"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우리집. 출산 임박해서부터 아예 친정에 머물렀다가 아이 낳고 두 달이 지나서야 돌아왔으니 나조차도 집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물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지 몇십 일 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에게는 천지가 뒤바뀌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어나서 쭉 머물던 외가를 벗어나 처음으로 이사를 한 셈이니, 아이에게는 얼마나 생경한 느낌이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말 못 하는 아기가 환경이 바뀌었을 때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는가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없었지만, 우리 부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기가 이곳을 '우리집'으로 전혀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걸. 아이가 그 작은 몸을 온통 비틀며 쉬지 않고 울어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래, 갑자기 모르는 장소에 왔으니 울 수도 있지.'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아이가 너무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난감했다.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번갈아 가며 안아 들고 우쭈쭈~ 했다가, 아이를 안은 채 토닥토닥하며 집안을 몇 바퀴를 돌다가, 아이에게 소곤소곤 몇 십 번을 '괜찮아, 괜찮아'를 속삭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이를 달래려 했지만, 아이는 이러다 탈진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오후에 도착한 '우리집'에서 우리 가정을 완성하는 앙증맞은 퍼즐 조각 아가가 밤이 되도록 울고만 있었다. 몇 시간을 찢어질 듯 우는 소리에 귀가 멍해지고 넋이 나갈 지경이 되었을 때, 평소 감정이 요동치는 일이 없는 남편조차도 평정심을 잃고 폭발했다.


"똥똥아! 그만 울어!!!!!"


언성이 높아진 남편은 '아빠도 못 알아본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고 당연히 아이는 더욱 목놓아 울었다.


친정에 머물며 나름 수유나 수면에 어느 정도 패턴이 잡히기 시작하는 시기였는데, 우리집에 오자마자 모든 것이 출산 직후의 혼란스러웠던 때로 되돌아가버린 것 같았다. 아이는 계속해서 울고,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하는 완전 생초보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간 느낌. 아무것도 몰랐던 때보다 더 황당하고 막막했다.


진짜 우리집에서 불안해하는 아기,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이 더 편안한 것 같은 우리의 아기. 정작 엄마아빠인 우리가 안고 달래려고 할수록 품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며 기절할까 봐 무서울 정도로 울어대는 아기.


너무 친정에 오래 있었던 탓인가 싶어 내 몸 편하자고 두 달을 눌러앉아 있었던 나 자신을 원망하고, 몇 시간째 쉬지 않고 우는 아기가 걱정되어 지금이라도 다시 친정으로 달려가야 하나 갈등하던 그 유난히 길었던 밤. 울던 아이가 지쳐서 잠들고 우리 부부도 정신을 잃다시피 쪽잠을 자다가 아이가 우는 소리에 깨다가를 반복했던 밤. 그런 밤과 낮들을 수차례 보내며 우리는 진짜 엄마아빠로 다시 태어나는 산고를 겪었다.


친정에 머물며 부모로서의 책임을 아이의 조부모와 함께 나눠 가지며 주양육자의 역할을 은근슬쩍 조부모에게 넘겼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진정한 부모로 자리 잡는 길은 험난하고 멀었다.


"이러다 영영 할아버지 할머니 품만 그리워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안아도 뭔가 자세가 어설프고, 우리 엄마처럼 아이를 능숙하게 포옥 안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칭얼대면 포대기를 척척 둘러 업어주던 우리 엄마, 그러면 아이는 할머니 등에 나른하게 기댄 채 스르르 잠이 들었었는데. 나는 아기를 업으려고 시도하다 아이가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오고 등이 안정적으로 아이를 받쳐주지 못해 결국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우리집에서 편안하지 않은 아기와 출산 직후와 비교해 조금도 나아진 게 없는 서툴기만 한 엄마, 역시나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는 그렇게 다시금 산고의 시간을 보내며 진짜 가족의 삶을 시작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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