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N잡과 퍼스널 브랜딩

미래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by 마이즈

‘현업 기획자 마이즈가 알려주는 게임 기획 스쿨’은 게임 카테고리에서 나름 괜찮은 성과를 냈다. 이를 통해 많은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그중 모 출판사의 대표가 있었다. (이름을 밝혀도 될지 모르겠으니 일유 출판사로 표기.) 오래전, 나에게 에세이 원고를 요청했던 작가님에게 소개받은 사이였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원고를 다 썼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분이기도 했다. 출판사 대표 님에게 부탁할 수 있다면 쉽게 책을 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담당자들이 봐서 원고가 별로라면 책으로 나오지 않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맥을 무시한 채 투고했다. 일유 출판사 담당자는 내 원고를 탈락시켰지만, 초록비 책공방은 선택해 주었고 그렇게 나의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이 나온 이후, 연락이 온 대표님은 왜 본인에게 말하지 않았냐며 서운해하셨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오랜만에 한번 보기로 했다. 그러자 대표님이 제안하셨다. 혹시 신소라 작가님도 불러도 될까요? 누구요? 한주 작가님 지인이라서 아마 아실 텐데요. 그분 인맥이거든요. 뭐 만나보면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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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어느 술집에서 셋이 만났다. 신소라 작가님은 처음 뵙는 분이었다. 일유 출판사 대표님이 혼동하셨던 것이다. 글 쓰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SNS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계셨다. 심지어 본업은 누구나 알 법한 기업의 서비스 기획자였다. 추후 작가님의 북 토크 행사를 통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가정환경 등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내적인 동질감이 느껴졌다. 집과 직장이 모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후 한 두 번 따로 만날 일이 있었고 매번 감탄하게 되었다. 인플루언서라는 화려함 뒤에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담겨있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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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라 님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다. 일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일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먼저 알려져 있어야 했다. 인플루언서는 아니라도 최소한 특정 키워드를 찾는 사람에게 노출되어야겠지. 지금까지 처럼 인맥과 과거만을 활용해서 살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얼굴 노출이었다. 실체가 있는 사람으로 인지되기 위해서도, SNS에서 알고리즘의 선택과 신뢰를 위해서라도 내 모습이 공개될 필요가 있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내 입장에서 이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못생겨도 괜찮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 이상 셀카 찍기를 실천했다. 결국 내 얼굴에 익숙해질 수 있었고, 블로그 외에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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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일유 출판사 대표님과 나는 동갑이었다. 서로 말을 놓고 친구가 되기로 했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대형 언론사 이후 평생 출판사를 운영해 왔기에 이쪽 분야에 대한 노하우가 많았다. 동시에 최신 기술에 관심이 많아한 때는 블록체인이나 NFT를 파고들었고 나와 친해진 시기부터는 AI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같은 기술이라도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는 다르게 인식되는 부분이 있다. 서로 이 부분을 알고 있기에 종종 만나서 같은 현상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가 별로 없는 나에게는 소중한 관계가 하나 생긴 셈이다. 심지어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시야가 확장되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관계가 늘어나야 나의 세계도, 내가 속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넓어질 기회가 생긴다. 서로를 존중하며 배울 수 있는 친구이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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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통 고민은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50대, 60대가 되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40대 직장인이라면 대개 비슷할 것 같다. 우리 중 신소라 님은 아직까지 괜찮은 나이였지만 같은 고민을 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두 성별의 미래는 다른 시기에 비슷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으니까. 회사를 떠난 창작자로서의 미래,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 입장으로써의 미래, 작가로서, 인플루언서로써 더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각자 떠올린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의 분야가 다르다 보니 혼자서는 떠올릴 수 없는 것들을 듣게 되었고, 아마 다른 두 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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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소라 님 회사 근처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데 책을 쓰고 있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내용을 일유 출판사 대표와 공유하던 중 한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N잡. 당시에는 가장 트렌디한 용어였다. 신소라 님도 여러 직업을 갖고 계셨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N잡 시리즈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1권은 신소라 님의 인플루언서, 2권은 마이즈의 게임 개발자. 이후에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직업들을 시리즈로 내도 좋지 않겠어?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일유 출판사 대표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일을 진행했다. 3권 저자를 섭외해야 한다는 말에 지인을 추천했다. 그는 에어 비앤비 슈퍼 호스트 겸 작곡가였다. 3권까지의 내용은 확정됐다. 이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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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는 ‘4주 만에 ~되기’였다. 처음 하는 게임 개발을 28개로 일정을 쪼개어 작성했다. 노비스 게임 개발자 클럽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최대한 쉽게 단계를 구성했다. (노비스 익스비션) 소라 님은 기존에 작성해 둔 원고를 형식에 맞게 수정하셨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책이 출간되었다. 1권 주제가 인플루언서이기도 했기에 살짝 기대를 가졌다. 다른 출판사 지인들도 괜찮은 기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것에 비해 그리 좋지 못했다. 대체 왜 그런가 싶어 N잡 키워드를 이것저것 찾아보니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부업을 통해 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노력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것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성공할 수 있어요! 하는 형식의 과장한 콘텐츠들이 인기였다. 노력해서 사이드 잡을 갖는 우리 이야기는 공감 트렌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내 책은 서두에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게임을 만든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지만 꾸준히 두드려보자. 우리 책의 내용은 과장하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솔깃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을 쓸 수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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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함께 진행한 첫 프로젝트는 큰 성과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통해 서로에게 배움과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신소라 님의 성실한 태도와 출판사 대표님의 추진력 덕분에, 혼자서 도달할 수 없는 지점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한 치열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함께한 경험은 언젠가 또 다른 기회의 발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관계는 자산이 되고, 경험을 또 다른 도전의 기반이 된다. 어렴풋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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