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사실은 감사할 일.
독서 모임에서 만나게 된 친구 릭킴. 그는 경기 콘텐츠 진흥원과 지난 몇 년간 프로젝트를 했던 창작자였다. 어느 날 제안을 해왔다. 판교에서 경기 콘텐츠 코리아 랩의 공간을 활용한 창작 클럽을 만들려고 합니다. 혹시 모임 하나 맡아서 해볼래요? 다만 비용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거의 차비 정도. 왠지 마이즈 님은 좋아할 것 같아서. 그 말에 혹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판교 크리에이터스 클럽, 일명 PCC. 이 클럽의 핵심은 연말에 있는 전시였다. 클럽을 운영하면 그 끝에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콘텐츠 랩을 창작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사업이었다. 문제는 주최가 기관이다 보니 주말에 문을 열지 않고 오후에도 닫는다는 점. 판교에 있는 수많은 게임 회사 직장인들은 근무 탓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일단 인원 모집은 해볼까?
순수 미술부터 미디어 아트, 만화를 그리는 분들, 영상을 만드는 분들, 그 외 여러 예술가들이 모였다. 수리짱은 누드 크로키 모임을 하려고 했으나 여건상 반대에 부딪치게 되면서 인스타 툰 클럽을 만들었다. 에세이 쓰기 모임도 있었고, 평소 알고 지내던 단편 영화감독도 클럽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나는 어떤 클럽을 만들면 좋을까? 일단 사람을 모은 뒤에 설문을 돌렸다. 저와 함께 한다면 어떤 클럽을 원하시나요? 설문 조사의 압도적 1위는 게임 개발이었다. 오케이. 그렇다면 게임 개발 클럽을 만들자.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이 게임을 만들게 해 본 경험이 많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노비스 게임 개발 클럽’을 만들었다. 최초 인원은 30명이었다. 30개의 게임이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 우리가 만든 30개의 게임이 전시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했다.
첫 모임에서 게임 개발 엔진과 기획과 소재를 정하는 방법.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브리핑했다. 각자 제출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팀을 나누었고 각각의 단톡 방을 만들어서 들어갔다. 항상 그렇듯 시작은 좋았다. 이대로 쭉 진행되기를. 우리보다는 경기도 콘텐츠 랩에 문제가 있었다. 멤버들이 대부분 직장인이나 학생들이라서 주말에 모임을 해야 했는데, 이곳의 직원들은 주말에 출근을 하지 않는다. 한참 더운데 에어컨이 없이 진행해야 하기도 했고 유일하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릭킴이 늦으면 문 앞에서 모두 기다리기도 했다.
클럽장인 나 역시 게임을 최소 하나는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 시기에 대학원 졸업 시험과 영상 촬영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가급적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RPG 쯔꾸르를 떠올렸다. 어차피 판매할 것도 아니고 5분 정도 플레이를 위한 전시용 게임이다. 3-4일 전시만 하고 세상에 보이지 않을 게임이라면 나를 위해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맨션 오브 서교를 개발했다. 어린 시절의 미련을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맨션 오브 서교) 클럽장이 고작 RPG 쯔꾸르로 게임을 만드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스스로는 만족스러웠다.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현실의 일정과 충돌하면서 사람들의 개발 속도가 조금씩 늦어졌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개발 목표를 낮추자며 하나하나 조율하고 독려했다. 4개월 간의 일정. 우리는 그 안에 각자 게임을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 전시회 일정은 처음부터 잡혀 있었다. 명확한 데드 라인이 있는 것이다. 2주마다 각 그룹 채팅 방을 점검했다. 알아서 진행이 잘 되는 곳은 따로 말을 하지 않았고 너무 조용한 방은 한 번씩 개인 톡을 보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전체적인 일정과 방향성, 목표 조정, 기획에 대한 자문 정도를 나의 역할로 생각했다. 하지만 멤버들 중 일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배움을 원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기초적인 것들부터 자잘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분들을 모두 챙겨야 했다. 여기에서 큰 실수를 했다. 질문받은 순서대로 답변을 주지 않고, 빠르게 해결이 가능한 질문부터 처리한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졸업 시험, 논문, 촬영 일정에 더해 나의 게임도 만들어야 하므로 일이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어려운 질문을 하신 분은 자꾸 밀리게 되었다. 질문 중 일부는 나 역시 잘 모르는 부분이라서 찾아보고 공부해서 알려 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참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이걸 왜 하고 있지? 언젠가부터 내가 시간을 쓰고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이 클럽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크지 않다. 심지어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좋은 마음으로, 조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공격적인 말투로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분도 계셨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 달았다. 실이 끊어지면서 놓아버리는 부분이 생겼고, 많은 분들이 중도 하차를 하게 되셨다. 그 와중에 직접 학습하며 게임을 만드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모습이었는데,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스스로 찾아보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최종 전시까지 도달한 인원은 12명이었다. 나머지 18명은 회사일이나 개인적인 다른 바쁜 이유들로, 혹은 나의 능력 부족으로 중도하차하셨다. 남은 분들의 수가 10명을 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전시는 무조건 진행해야 하는데, 최악의 경우 혼자 10개를 만들어서 진행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으니까. 여러 상황에도 끝까지 노력해 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했다. 또 다른 감사한 일이 있었다. 전시 포스터와 사이니지 디자인 등을 클럽 내에서 처리해야 함을 뒤늦게 통보받았다. 외주 비용이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던 중, 멤버 중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인 쾌주님이 나서 주셨고 밤샘 작업으로 디자인을 해 주셨다. 참가자 분들에게는 전시장에 틀어놓을 영상과 리플릿 제작을 위한 이미지를 받았다. 다른 클럽에서는 양식에 맞지 않게 보낸 멤버들 때문에 일 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클럽에서는 대부분 양식에 맞게 전달해 주셨다. 평소라면 당연히 기본이라고 생각했을 이런 부분 하나하나가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누군가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경기 콘텐츠 코리아 랩에서 가장 큰 문제는 PC였다. 전시 직전이 되어서야 보유하고 있는 PC가 Mac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니, 그럼 개발 전에 말씀을 하셨어야죠. 급하게 Mac 빌드로 교체하고 하나하나 테스트를 해야 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개인 사비로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키보드와 마우스를 10세트 구매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전시 세팅은 이전 전시가 마감되는 금요일 저녁에 작업을 해야 했다.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철거하시는 분 옆에서 세팅을 하고 있으니 정신이 없었다. 멤버들 중 두 분이나 와서 도움을 주셨지만, 결국 금요일 퇴근 시각 전까지 마무리되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했다. 영상 송출을 위한 디지털 모니터에서 우리 영상이 구동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사양에 맞춰 하나하나 새로 인코딩을 했고 일부는 접촉 불량이었다. 결국 전시 세팅은 마무리되지 못했고, 양해를 구하고 주말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토요일은 주말 출근 직원이 없다고 해서 일요일에 전시장에 나갔다. 들어가는 순간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전시 공간을 다 뜯어내서 공사를 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가 설치해 둔 PC와 탁자 등이 모두 한쪽 구석으로 옮겨져 있었다. 심지어 섞여 있어서 결국 다시 배치해야 했다. 그 와중에 인쇄소에 주문한 포스터가 도착했는데, 커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무리를 했다. 전시는 잘 진행되었다. 근처 회사에 있는 지인들이 점심시간에 찾아오기도 했다. SNS로 홍보를 열심히 한 덕분이다. 내가 주최한 단 한 번의 전시 이력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마지막까지 함께한 12명의 전시자들은 물론이고, 최초에 시작했지만 중도 하차했던 18명의 초기 멤버들에게도 모두 감사한다.
모임 종료 후 회고 모임. PCC 내에 있던 다양한 클럽의 리더들이 모였다. 판교 크리에이터스 클럽이라는 이름답게 한 분 한 분 창작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멋진 분들이셨다. 그 안에서 나만 그렇지 않았다. 친구인 림킴은 나를 교수라고 소개했다. 게임 개발자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교수. 창작자와는 너무 거리가 먼 소개이지 않나?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나만 이레귤러가 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창작자이고 싶다. 나는 교육자여서는 안 된다. 이렇게 다른 정체성에 묻힐 수는 없다. 실은 내가 교수 루트를 포기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이 날의 식사 자리였다. (마교수의 존재론적 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PCC의 노비스 게임 개발자 클럽을 통해 전시 개최 경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위한 가벼운 RPG 쯔꾸르 게임을 하나 개발했다. 이를 통해 치유된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얻기 위해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수없이 많은 욕을 먹어야 했다. 경기 콘텐츠 코리아 랩 측과 커뮤니케이션 비용 면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도 했다. 다른 클럽 장들은 이렇지 않았다. 각자 힘들기보다는 즐겁게 클럽을 운영했다. 그분들과 나와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을 혼자 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를 조금 더 나누었더라면, 내가 나서기보다 개개인의 동기 부여를 우선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렇게 고군 분투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누구에게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당연한 일들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 또한 깨달은 시간이었다. 함께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이 모임의 경험을 통해 나는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는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우리 클럽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시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