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마교수의 존재론적 피로

내가 바라는 정체성을 위해 안정적인 기회를 포기하기

by 마이즈

한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면 지인 중 몇 사람은 자연스레 교수가 된다. 나의 첫 대학 강의 역시 교수가 된 지인을 통해서였다. 게임 학과인데 그동안 기획 과목이 없었다며 강의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직장인이 평일 낮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단 거절했는데, 대표님과 식사 중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기회를 왜 그냥 보낼 생각을 해요? 역시 조라 대표님 다운 반응이었다. (황혼의 마스터) 그렇게 회사의 배려로 주 1회씩 대학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JB 대학교 고양 캠퍼스 게임학과에서 3개 과목을 담당했다.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이 매우 반겨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은 게임을 안 하시거나 오래된 게임만 아시는 경우가 많다. 혹은 게임을 하더라도 학술적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본인들과는 전혀 다른 시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조금 더 게이머에 가까운 교수가 하나쯤 있는 것도 학생들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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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 스쿨이 출간되고 몇 개월이 지났다. 방학이 되자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하면서 발견하셨나 보다. 게임 기획 책을 썼고 20년이 넘는 현장 경력이 있으며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외래 교수로 딱 맞는 스펙이 아닌가. 전국의 여러 게임 학과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당연히 거절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회사가 우선이었고, 대학 강의가 보람은 있어도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 대학에서 특강이라도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한번 거절했는데 이렇게까지 말씀하신다는 것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서울에서 먼 지역은 현장의 목소리가 절실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다양한 특강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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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 세미나에 젊은 교수님 한 분이 세션을 신청하셨다. 과거 프로 게이머였던 전적이 있는 특이한 분이셨다. 그냥 학교나 학계 홍보를 하시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교수님의 강연이 마음을 울렸다. 그 해는 게임 개발자가 예술인으로 등록된 시기였다. 몇 년 전만 해도 게임을 질병이라고 하며 중독 프레임을 씌웠고, 정신과에서 게임 중독 센터라는 것을 운영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당시 일부 교수님들이 이에 반박하는 단체를 만들어 연구를 지속했고 결과적으로 게임 중독이 없음을 밝혀낸 일이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독이 있다는 내용은 언론에 넓게 퍼졌지만, 그것이 잘못된 연구였다는 내용은 거의 홍보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믿기 힘들다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 논문을 포함해서 찾아보길 바란다.) 아무튼 그 강연을 통해 게임 중독이라는 황당한 이야기의 솔직한 뒷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무 하네. 이렇게까지 했단 말이야? 교수님이 당사자였기 때문이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반박하는 연구에 참여하셨던 것이다. 그 행보는 결국 게임 개발자를 예술인으로 등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솔직히 그동안 학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산업계와는 너무 다른 방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분들도 게임을 사랑하며 이렇게 멋진 일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다시 보였다. 교수님은 내 마음속 중2병을 불러일으키는 워딩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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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게임을 수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이 맞다. 게임 개발자의 말은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지만 교수나 학자들의 말은 조금 더 파급력이 있다. 세미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단어가 마음에 박혀 있었다. 게임을 수호한다. 만약 나라면 게임을 수호하는 것을 넘어 게임 개발까지 수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교수님을 만나 뵙기로 마음을 정했다. DY 대학교 동두천 캠퍼스. 미군 부대가 있는 지역이라는 것과 부대찌개가 유명하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교수님을 만났다.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나는 교수 루트를 밟아 보기로 결심했다. DY 대학교 게임전공 석사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이 교수님에게 배운다면 나도 게임을 수호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수업은 별로였다. 학계에서 바라보는 게임과 산업계에서 바라보는 게임, 그리고 게이머들이 바라보는 게임이 달라도 너무 다름을 느꼈다. 실무에서 미래를 개척한다면 학계에서는 결과를 이론으로 정립한다. 창작과 새로움에 항상 목마른 나에게 학계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그동안 가져온 교수 직종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던 점이다. 항상 타인보다 위에 있으려는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실제로 그런 분들도 계시긴 하다. 하지만 우리 교수님들은 산업계의 경험을 존중해 주셨다. 같이 수업을 받는 대학원생 분들 중에는 나보다도 훨씬 경력이 많은 업계 선배님도 계셨기에 그분들을 통해 얻는 인사이트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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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 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동시에 학부 강의를 시작했다. 같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동시에 진행한다면 효율이 좋다.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에 가야 하고 강의를 하면 등록금도 일부 줄어들었다. 학생들은 열정이 넘쳤다. 나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올라왔다. DY 대학교에서도 외래 교수로 수업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갈수록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벌써 몇 년째 외래 교수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강사라는 이야기인데, 주변에서 교수라고 불리는 것이 불편했다. 가장 큰 충격은 PD모임이었다. 벌써 10년 이상 함께 교류하던 PD 님들마저 나를 마교수라고 불렀다. 내가 교수가 되는 길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었다. 나는 개발자나 창작자로 인식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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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CK 대학교 학과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게임 전공 중에서 CK는 네임 밸류가 상당했다. 어차피 게임을 가르친다면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임 학과 학과장 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양 있는 음식점이 아닌 햄버거 집에서 만나자고 하시길래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게 게임인이지! 편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정체성 고민으로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교수님은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셨다. 그리고 객관적인 팩트만 짚어 주셨다. 만약 교수가 되실 생각이라면 더 늦으면 안 됩니다. 가급적이면 빠르게 마음을 정하시는 편이 좋아요. 그리고 만약에 학교에 들어오신다면 처음 몇 년간은 다른 겸업은 포기하셔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한 마디가 치명적이었다. 여러 상황과 나의 정체성을 따져보면 정교수는 절대 갈 수 없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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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SI 대학교 학과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에 존경하던 게임 연구소 소장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을 통해 연락이 온 것이다. 솔직히 더 이상 대학 수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두 개의 대학도 조만간 그만 둘 생각이었다. 따라서 거절할 생각으로 학교로 향했다. SI 대학교 학과장 님과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잘 통했다. 알고 보니 게임 기획자 출신이고 창업을 해서 보드 게임 개발로 수상까지 한 이력이 있으셨다. 학계보다는 산업계 느낌이 강한 분이셨다. 교수님은 이제 막 시작한 게임 학과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안해 주셨다. 정식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싫었고 그렇다고 가끔 가서 강의만 하는 것은 학과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 말에 교수님은 겸임 교수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완전히 학교에 소속되는 것도 아니지만 소속감은 생기는 괜찮은 방향이었다. 무엇보다 겸임 교수는 겸업이 가능하니 회사를 계속 다니는 데에도 문제가 없지 않나. 책을 쓰는 것도 가능하고. 결국 JB 대학교의 강의를 그만두기로 하고 SI 대학교에서 새로운 강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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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대학교와 게임 인재원, 학원 강의, 그리고 여러 특강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한 것은 당연히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타를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어이없는 학생들이 있었고, 심지어 수업 평가를 적게 주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출석 체크만 하고 나가버리는 학생을 결석으로 처리했다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몇 사람은 시험 시간에 연애 예능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잡담을 했다. 기왕이면 군대는 빨리 다녀오는 편이 낫다고 했다가 '꼰대 새끼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런 취급을 받고 스트레스까지 받으며 강의를 해야 하는 걸까? 적극적으로 배우려 하고 노력하는 학생들도 많았는데, 이런 기분으로 수업을 하면 그 아이들에게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환경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수업을 실습 위주로 개편했지만, 피드백을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두르며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학생이 있었다. 수업 내용이 맞는지 혹은 피드백이 적절한지 AI를 사용해서 확인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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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회만 대학에 나가는 상황이었지만 게임 인재원에서도 외래 교수라는 직함이었다. 겸임 교수 하나에 외래 교수 둘. 그 탓일까? 타인이 나를 자꾸만 교수라고 소개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는 나 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교수 사회에서도 나름의 계급이 있었다.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은 교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분도 계셨다. 출신 학교를 따지는 분도 계셨고, 정 교수가 아니면 무시하는 대학원생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나를 교수라고 소개한 걸까? 이는 게임 개발자로 소개받을 때에도 같은 경험이 있다. 십여 개의 회사를 다녔음에도 사람들은 항상 ‘N사 출신’이라고 나를 소개했던 것이다. 본인들이 인지하기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회사, 혹은 직급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사회의 암묵적인 규칙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고 동시에 작가이기도 하다. 그 외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하필 교수라고 부르는 걸까? 내가 가진 직업 중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직업이 교수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인식도 부정하고 싶었다. 나의 정체성은 창작자이다. 이것 만큼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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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결국 DY 대학교 강의도 그만두기로 했다. 동시에 대학원도 석사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교수가 될 생각이 없다면 박사 과정은 의미가 없다. 게다가 짧은 경험으로 볼 때 학계에서의 시선은 나와 맞지 않았다. 애초에 배우는 내용이 산업계나 개발, 혹은 유저의 입장과도 너무 거리가 멀어 재미가 없었다. 이론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 같은 부분까지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하는 부분도 스트레스였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런 면이 더욱 흥미롭고 의미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진행한다면 아마 자연스레 교수가 될 것 같았다. 일부 학교는 석사 학위만 있어도 20년 경력을 인정해주기도 했으니까. 그래서는 곤란하다. 내가 교육자로 인식되어 버릴 것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이를 위해 겸임 교수라는 이름은 만족스러웠다. 무언가를 겸하고 있다는 표현이니까. 학력은 석사까지만. 20년이 넘는 실무 경험을 가진 게이머 교수로. 동시에 게임 개발자로. 그리고 다양한 창작자로. 그나마 나에게 맞는 옷은 그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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