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의 무게

천식과 함께 살아가기

by 마이즈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지병이 있다. 천식이다. 아기일 때에는 나의 호흡에 가족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한다. 엎드려 있으면 숨이 막힐 수 있기에 항상 주시해야 했다. 여유 있는 집에 태어난 덕분에 위험한 시기를 잘 넘겼던 것일 지도. 의사 말로는 기도가 다른 사람의 9배 정도 좁다고 했다. 선천성 천식은 현재까지 나의 루틴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매일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거른다면 다음날 숨을 쉬기 힘든 상태가 된다. 최소한 홈 트레이닝이라도 하거나 계단을 오른다. 가볍게 조깅을 하기도 한다. VR 기기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든 강제로 운동을 해야 하는 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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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어느 날. 잠을 자다가 호흡 곤란이 왔다. 새벽에 응급실로 향했다. 아버지가 직접 운전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기사 아저씨를 깨울 시간조차 없을 만큼 급했겠지. 어머니는 뒷 좌석에서 나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데 귀가 아프고 시끄러웠다. 어린 마음에 내가 무거워서 우시는 건가 싶었다. 엄마. 무거우니 나를 내려 놓으세요. 그 한 마디에 어머니는 크게 감동하셨다. 평생 그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그 어린 것이 자기 숨 넘어가면서도 엄마 걱정을 하더라니까 글쎄. 그 날 응급실에서 처음으로 밤을 세는 경험을 했다. 두 분 모두 내 곁에 붙어 있었다. 셋이서만 보낸 밤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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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부터 어머니는 전략적으로 움직이셨다. 집에는 동화책 전집이 들어왔고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남들이 다 하는 태권도 대신 피아노와 주산을 배웠다. 호흡에 좋다는 이유로 웅변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오죽하면 TV 유치원 하나 둘 셋에서도 시작 체조에서 빠졌고 춤추거나 활동하는 수업 대신 앉아서 이야기하는 파트 위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 우리 집 바로 앞이 놀이터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창문에서 바로 놀이터가 보였으니까. (창문, 놀이터, 그리고 손가락들) 가정부 누나는 항상 내 곁에 붙어 다녔다. (유일한 언니) 창문을 보며 게임으로의 인생을 결심하게 됨에 있어 이 상황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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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녔지만 천식 약은 몸에 맞지 않았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약만 먹으면 기력이 없었다. 결국 약을 끊기로 했다. 대신 흡입기를 가지고 다녔다. 위급한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며 집이 어려워지자 병원을 갈 수 없었다. (가난한 오타쿠는 울버린을 꿈꾼다) 그 돈이면 우리 가족 식사가 몇 끼인지를 생각했다. 흡입기는 바닥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호흡이 달리는 모습을 보이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니까. 숨을 참고 일하는 날도 많았다. 학교에서 축구나 농구를 할 때에도 풀 타임은 무리였다. 농구는 반코트를 좋아했고, 탁구 같이 이동 거리가 길지 않은 운동이 좋았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중 후반 쯤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런 약한 모습에 더욱 학폭의 타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학폭 탈출) 그래서 칼을 사용했다. (중딩 느와르) 장시간 싸울 수도 없었고 도망가기는 더욱 힘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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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가지 않고 버티는 동안 천식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버티는 요령이 생겼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계가 왔다. 집중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었다. 호흡이 약한 탓에 항상 입을 벌리고 크게 숨을 쉬어야 했다. 20대 초반. 가장 건강해야 할 시기였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니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막막한 상황이었을 수 있지만 운이 좋게도 춤을 만났다. DDR과 펌프 잇업으로 댄스 게임 열풍이 불었는데, 여기에 중2병이 결합되며 무리하기 시작했다. (펌피 : 망가질 용기) 게임을 통해 1분 30초짜리 세 곡을 진행하는 수준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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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게임 발판을 벗어난 실제 춤으로의 전환이었다. 천식에 있어서는 최악이었지만, 내가 유일하게 자유로움을 느끼는 곳이었기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걷기만 해도 숨이 차는 주제에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음악이 시작되면 곡이 끝날 때까지는 억지로라도 움직였다. 댄서의 가면을 쓰자 숨을 헐떡이는 것도 숨 쉬기가 괴로운 것도 고통이 아닌 멋스러움으로 느껴졌다. 호흡이 어려울수록 몸을 더 크게 움직였다. 말 그대로 생명을 불태우는 느낌이었다. (음악과 무대)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부터 숨 막힘이 사라진 것이다. 춤을 춘 다음날은 괜찮았고, 혹시라도 비가 오거나 일이 있어 춤을 쉰 다음 날은 숨 쉬기가 힘들었다. 이때부터 평생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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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춤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군 입대였다. 몇 년 전까지 천식은 군 면제 사유 중 하나였는데, 내가 신체검사를 받던 시기에는 현역 배치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군대를 가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춤은 추지 못하지만 계속 몸을 쓸 테니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천식 발작이 발생한 것이다. 다른 훈련을 하는 동안은 문제가 없었는데, 유격을 하던 중 호흡 곤란이 왔다. 의무대에서 처치할 방법이 없어서 국군 통합 병원으로 실려갔다. 현역에서 교육청 발령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에 간 군인 아저씨) 그날이 마지막 천식 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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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된 이후 병원에 가서 천식 검사를 받았는데, 매일 운동을 하면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낀다. 하루만 걸러도 다음날 바로 호흡이 얕아지고 연쇄 반응으로 현기증과 두통이 생긴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작은 운동이라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강제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냐고? 그럴 리가. 오히려 좋다. 언젠가부터 매년 건강 검진 때마다 그 시기에 다니는 회사의 직원들 중 상위권의 등급이 나온다. 선천성 천식 때문에 하게 된 운동이 오히려 나에게 건강을 가져온 셈이다. 덤으로 퍼져 있지 못하게 됨으로 부지런하다는 이미지도 얻게 되었으니 일석 이조다. 선천성 천식은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질병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억지로라도 운동과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 훌륭한 치료제가 아닐까 싶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 활용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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