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작은 차

나의 전우 프라이드 해치백

by 마이즈

화성에 있는 공장에 다니는 동안 차가 필요해졌다. (멈춰버린 게임 라이프) 도로를 따라 걸으면 기숙사에서 공장까지 50분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가로등도 없는 고갯길이고 CCTV도 없어 매우 위험했다. 논을 가로지를 경우에는 걸어서 30분 거리였지만,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랑으로 빠질 위험이 있을 정도로 어두웠다. 한동안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걸어 다녔는데, 멧돼지가 나올 수 있다고 회사 분들이 말리셔서 불안했다. 안 그래도 타의에 의한 죽음을 바라던 시기였으므로 기꺼이 나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차를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차가 있다면 기숙사에서 공장까지 5분이면 도착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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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를 산다고 하니 웬일로 아버지가 수원 매장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내가 차를 볼 줄 모르니 본인이 봐준다는 이야기셨다. 중고차 매장에는 이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여성 분과 여동생들이 와 있었다. (재혼하시기 전이었다.)(여 사친과 동생들) 내 차를 사는데, 저분들이 더 많은 의견을 내신다.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 공장의 대표답게 꼼꼼하게 살피셨다. 결국 선택한 것은 500만 원짜리 프라이드 해치백이었다. 더 저렴한 차를 사고 싶었지만, 그 이하는 사고 차량이라 위험하다며 아버지가 결제를 해버리셨다. 어라? 설마 사주시는 건가요? 우리 아버지가 그럴 리 없지. 지금 당장 500 만원이 있을 리 없으니 빌려주는 거라고 갚으라고 하셨다. 역시 나를 강하게 다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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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떻게 차 한 대 안 사주냐며 화를 내셨다. 딸들에게는 사주셨기 때문이다. 그 말이 전달되자 아버지는 머쓱했는지 대신 운전 학원에서 연수를 붙여 주셨다. 면허를 따고 거의 10년 만에 하는 운전이라 안 그래도 불안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한 운전 연수는 기가 막혔다. 강사는 옆 자리에 앉아서 잠만 잤다. 연수가 시작되면 어디까지 가보자며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고, 도착해서 깨우면 이번에는 어디까지 가보자는 식이었다. 한 번은 본인이 바다를 보고 싶다고 바다 쪽으로 경로를 지정하기도 했다. 어이없었지만 옆자리 강사가 아무런 의지가 되지 않다 보니 오히려 운전은 빠르게 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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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며 여러 고비가 많았다. 처음 느낀 막막함은 연습 삼아 처음으로 간 궁평항에서였다. 골목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차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전진해도 사람을 칠 것 같았다. 회사 근처는 고갯길이었는데 기어를 잘못 넣어 뒤로 미끄러지기도 했다. 추운 한 겨울에는 조금 긴 신호에서 시동을 끄고 있다가 바퀴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도 생겼다. 첫 사고는 이마트 주차장에서였다. 후진 주차 중에 기둥에 차 옆면이 긁힌 것이다. 그날 이후, 가급적이면 후진 주차를 하게 되었다. 약점이 있으면 보완해야 하니까. 그러다 보니 운전 잘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도 주차 잘한다는 소리는 종종 듣는 수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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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의 운전은 답답하고 복잡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만큼은 좋다. 공장 출퇴근을 위해 산 차였는데, 주말에는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 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진주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되기도 했다. 나와 가장 오랜 기간 함께 했던 MM이었다. 차 안은 나만의 노래방이 되기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쾌감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아마 많은 운전자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다만 아쉽게도 코로나 이후 노래를 못하게 되면서 더 이상 차 안의 노래방은 개장하지 않는다. (폐기한 선율의 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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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잘 안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찾는 시기가 있었다. (생존형 개발자) 차가 있으니 가급적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지역들을 돌았다. 어느 군청이든 문화 관광 예산은 있었으니까. 장거리 운전과 야간 운행으로 졸음운전을 할 때도 있었다. 순간 놀라서 갓길에 세우고 나면 위험 천만한 상황을 함께 겪었다는 생각에 차와 나 사이에 동지애가 생기기도 했다. 때때로 숙소를 구할 비용이 없어서 차 안에서 자는 일도 많았다. 키가 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을 주행할 때에는 뒷 좌석에 귀신이 앉아있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사무실을 퇴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집기들을 차에 실었다. 원룸 이사를 할 때에도 큰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접 날랐다. 자잘하게 많은 추억을 쌓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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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고속도로 야간 주행 중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와 어둠이 섞이니 잔뜩 긴장해야 했다. 전조등을 모두 켠 채로 최대한 느리게 운행했다. 걷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가다 보니 바로 앞에 희미한 불 빛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뒤에도 희미한 불 빛이 하나 따라붙었다. 우리는 마치 도깨비 불의 행렬처럼 폭우 속을 조용히 행진했다. 차선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불 빛들은 서로의 길잡이가 되었다. 한동안 운행하다가 휴게소가 나왔다. 건물 가까이에 차를 세우고 지붕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야간 운전자 들 십 수명이 모여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었다. 영업이 종료된 휴게소의 지붕 아래.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 쏟아지는 폭우와 희미한 불 빛.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10년 이상 운전을 하며 단 한번 느꼈던 특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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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화성 집에 차를 방치해야 했다. 나는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고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드리지 못하면서 집에 찾아갈 면목이 없었다. 한 번씩 주차장 청소를 한다고 차를 빼달라는 연락이 왔지만, 무시해야 했다. 어차피 나의 모든 재산은 압류될 것이고 차도 빼앗길 테니까. 하지만 차량만큼은 제외되었다.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인 데다가 워낙 많이 탔기 때문이었다. 가치가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나와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1년 가까이 방치해 두고 찾아가 보니 문의 잠금장치는 해제되어 있었고 내부에 있던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은 누군가가 떼어간 상황이었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만신창이가 되어 나를 오래도록 기다린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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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내 차를 타면 답답해한다. 그 이유는 양보 운전과 방어 운전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영향이다. 방송국을 다니던 시절부터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 그렇게 보고 들은 것이 은연중에 몸에 밴 것이다. 도로에서는 가급적 다른 차량에게 길을 양보하신다. 특히 택시와 버스, 배달 기사들은 생계가 걸린 것이니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누군가가 끼어들면 욕을 하기보다는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한다. 화장실이 급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추월하기 위해 속도를 내거나 억지로 끼어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면 그냥 한 바퀴 더 돌면서 새로운 길을 밟아보려 한다. 따라서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시간보다 여유를 두고 움직인다. 어머니의 40년 무사고 경력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매직 돌핀 회사를 다니던 시기에 봄 AD와 함께 지인의 장례식을 갈 일이 있었다. 비 운전자인 그를 옆 자리에 태우고 1시간가량 달렸는데,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운전 진짜 잘하시네요. 다른 분들 차를 타면 멀미하는데 아주 편안했어요. 욕도 한번 안 하시고요. 하지만 봄 AD도 지금은 운전자가 되었다. 다시 내 차를 타게 된다면 이번에는 답답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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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일감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면, 요즘은 국내 여행을 함께 한다. 연인과 함께 가는 경우도 있고, 혼자만의 여행을 훌쩍 떠나기도 한다. 새로운 장소에서 함께 하는 감각이 전과는 많이 다르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데려다주고 머무르는 동안 굳건히 기다려준다. 너무 고마운 친구다. 일본에서 결혼한 동생 가족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항에 마중 나갈 때도 함께였다. 이 작은 차에 동생 가족과 여행 짐을 가득 싣고 호텔까지 이동했다. 동생이 수달을 조사하러 한국에 왔을 때에는 차를 빌려주기도 했다. 우리 가족과도 이제는 익숙한 사이다. 연인이 해외로 떠나는 날, 공항까지 배웅할 때도 함께였다. 집에 돌아올 때는 혼자였지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덜 적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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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바꾸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사업을 할 때에도 회사 대표가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면 우습게 보이거나 계약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는 차가 작으면 연애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떤 자리에서는 대놓고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 말은 매번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낸다. 차의 가격과 크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차의 가치를 성능이라고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트렌드나 감성, 혹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차의 가치는 함께한 시간과 쌓아온 추억이다. 마치 동료애 같은 것. 비록 소형 차라고 해도 나는 이 녀석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 벌써 15만 Km를 함께 했고, 나이가 들어 골골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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