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과 동생)들

성별이 다르다고 구분할 필요는 없어

by 마이즈

사주에 여자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말을 들으면 연애 이야기로 생각할 것 같은데, 뭐 그 말도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20살 이후로 딱 1년을 제외하면 연애를 쉰 적이 없었고 대부분 상대가 먼저 다가왔으니까. (1년 간의 솔로 생활) 연애를 제외하고 보면 어떨까? 그래도 납득이 된다. 대학은 공과 대학을 나왔음에도 남자보다 여자인 친구가 더 많았다. 남고 – 공대 – 군대 – 남초 회사의 순서로 진행했음에도 그랬다. 어디에서 그렇게 만났냐고? 일단은 일에 관련된 것이었고 그 외에는 동호회나 모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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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의 여 사친들에게 나는 ‘안전한 존재’ 였던 것 같다. 여행을 갈 때에도 종종 청일점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여자들끼리 가면 불안하거나 무섭다는 이유였다. 대부분 펜션을 빌렸고 거실 소파는 주로 내 차지였다. 같은 학교 여사친은 내 자취방에서 잠을 자고 가기도 했다. (평화로운 대학생활) 심지어 지방에서 올라온 여 사친이 모텔에서 혼자 자기 무섭다고 부른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방에서 잠을 자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다. 당시 만나던 연인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내 이미지가 어땠는지 알만하다. 하긴. “게임의 길에 여자는 필요 없다! ”라는 대사를 읊어대는 중2병 대학생이었으니 그랬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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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질투가 심한 연인이 생기면서 여사친들과 관계가 끊겼다. 세상의 분위기 또한 연애 중에 다른 이성과 연락하거나 만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시대였다. 나 역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여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도 관계가 유지되는 여사친들도 일부 있긴 했다. 게임 업계 출신이거나 여전히 게임을 만드는 친구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유명한 웹소설 작가가 되어 작품 활동과 더불어 강의를 한다. 다른 한 명은 게임 회사를 창업해서 열심히 버티며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의 출신 학교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한때 여장하고 다니려고 했던 여대 게임 학과였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 사회 활동을 하는 경우는 여사친으로 남아있다. 아무래도 가정 주부가 되면 서로 접점이 생기기 힘들고 만나거나 연락하기도 불편해지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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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1년간 솔로 기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여러 모임에서 다른 여성 분들과 대화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를 통해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의 절반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인사이트나 경험, 사고의 나눔은 성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성에게 리스펙 하고 응원하고 감동한다고 해서 꼭 연애 감정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억지로 외면할 필요가 있는가? 그때 생각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 제약을 주는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르게 생각하면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4년간의 재판을 통해, 그 끔찍한 기억을 통해, 신뢰받지 못하는 것에 진저리가 났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할 이유가 있을까? 적극적으로 이성 친구를 만들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에서 더 이상 성별로 인한 벽은 두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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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여자가 많다고 하지만 막상 가족 중에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할머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가정부 누나 정도? (유일한 언니) N사에 다니며 아버지와 오랜만에 재회한 시기,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강남의 카페 주소를 알려주며 주말 지정된 시간에 나가 보라고. 여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여동생? 아이가 있어요? 아버지 두 집 살림하세요? 아니, 내가 만나는 사람 딸들이야. 아버지 없이 커서 의지할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한번 만나봐.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이 둘이나 생긴다고? 이 무슨 만화스러운 상황인가? 약간의 불편함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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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동생은 똑 부러지는 강한 성격이었다. 명문대 졸업반이었는데,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 키웠다더니 과연 주도적이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 어머니와 동생을 챙기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 와중에 명문대를 가다니 대단하다. 나는 공부는 완전히 버렸는데. 둘째 여동생은 귀여운 성격의 대학생이었다. 목소리에 애교가 잔뜩 담겨 있는 것이 집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 두 사람의 실망감이 느껴졌다. 오빠가 생긴다는 사실에 아마 키 크고 멋진 훈남을 상상했겠지? 하지만 괜찮았다. 이 시기에는 이미 외모 콤플렉스를 받아들인 뒤였으니까. (못생겨도 괜찮아) 실망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의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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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동생은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잘 해냈다. 역시 행동파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 중 한 곳에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것이다. 경쟁률이 수백 대 1일 텐데. 하지만 회사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여러 트러블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내 친구 야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정의의 반작용) 융통성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회사에서 짝꿍을 만나서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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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도무지 취업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고민이 많았지만 언니는 상담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명문대에 잘 나가던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당연하니까. 결국 내가 몇 번인가 따로 만나 상담을 해주었고 IT 회사에 입사 주선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프로그래밍 실력이었다. 두어 군데 주선했지만 입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둘째 여동생은 아버지 회사에 입사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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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동생과 멀어진 것은 아버지의 재혼 때문이었다. (움직이는 게임 라이프)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 아이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만 안 한 것이 아니라 서로 연락을 안 했으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둘째 여동생의 청첩장이 날아왔다. 고민 끝에 결혼식을 갔다. 신부 대기실에 들어서자 두 여동생 모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첫째는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먼저 손 내밀어 줘서 고마워요. 우리 자주 연락하고 지내요. 하지만 결혼식 이후,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 아버지 팔순 즈음에 다시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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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에게는 또 다른 여동생이 있다. 아버지의 딸이 된 두 사람보다 더 특별한 아이다. 어쩌면 나의 아픈 손가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막내 외삼촌이 계셨다. (아버지 부자) 제주도까지의 도보 여행 후 함께 시간을 보내준 특별한 분이기도 하다. 삼촌은 결혼 후 딸을 가졌다. (이후 AY라고 부르겠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혼하셨고, 몇 년 뒤 다른 분과 재혼하셨다. 나이가 많이 어린 분이셨다. 덕분에 AY와 새엄마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는 자매 같았다. 막내 외삼촌은 뛰어난 사업가이셨지만, 항상 과음을 하셨고 결국 몸을 챙기지 못하셨다. 입원 중인 삼촌을 뵈러 갔을 때 단 둘이 대화하고 싶다고 하셨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미리 말할게. 너에게는 유산으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주려고 한다. 넌 책임감이 강하니까. 책임감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삼촌은 AY를 친동생처럼 돌봐 주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예감하고 계셨던 것일까? 삼촌이 돌아가시고 오래지 않아 AY의 새엄마는 떠났다. 외 조부님들은 아직 젊은 나이니 자기 길 찾아가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삼촌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단 둘이서만 이야기하자고 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책임감에 대한 나의 강박을 잘 알고 계시기에 안심하셨겠지.

KakaoTalk_20191229_165816039.jpg?type=w580 막내 외삼촌과의 일화가 담긴 자전적 소설, 600km가 담긴 책. '혼자 다른 생각 했어요'

AY는 한동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삼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관심을 가지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AY와 외조부모님은 대구에서 생활했으니까. 그러던 중, AY의 친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두 사람은 긴 오해를 풀었다. 마치 나와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아버지: 생명의 은인) 그리고 모녀는 함께 살기로 했다. 축하할 일이었지만 어쩐지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삼촌에게서 부탁을 받은 것은 나였다. 내가 책임져야 할 동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는 명백했다. AY는 친엄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고 지금도 둘이서 함께 살고 있다. 죄송해요 삼촌. 친동생처럼 챙기는 건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더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으니 괜찮겠지요?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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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내 주변에는 여자가 많았다. 거의 항상 연인이 있었고 여사친들도 있었다. 여기에 세 명의 여동생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사람의 성별을 구분해서 생각하게 되었을까? 연애를 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이성을 만나거나 언급하면 상대가 싫어했으니까. 그것이 유일한 이유일까? 친구가 아닌 여사친, 동생이 아닌 여동생. 성별을 나눌 필요가 없는 인맥들마저 구분해야 하는 이유 말이다. 애초에 주변에 ‘사람이 많다’가 아닌 ‘여자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 글에 나온 친구와 동생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성별이 남자였다면 과연 달랐을까 생각해 본다. 특별한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함께 걸어온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붙여본다. 여(사친과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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