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황혼의 마스터

가장 행복하게 다닌 회사에서의 두 게임

by 마이즈

20여 년 전, 블로그라는 것이 세상에 나와 막 시작했던 시기. ‘아키조라’라는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 블로거가 있었다. (이하 조라 님으로 표기) 기획자인 나와 살짝 다른 직군인 프로그래머의 블로그였다. 초창기 파워 블로거로 조라 님의 인터뷰 기사도 뜨게 되었고 나 역시 파워 블로그에 가까웠기에 언젠가부터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는 사이가 되었다. (이웃이라는 버팀목 댓글이라는 온기) 이후 십여 년이 지나 나에게 가장 힘든 시기가 도래했다. 어느 날 조라 님이 따로 만나자고 하셨다. 영광이었다. 함께 초밥을 먹었는데,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셔서 위안이 되었다. 나를 믿어주는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시기였다. 급기야 내가 재판을 받는 법원에까지 함께 가주시기까지 했다. (바퀴벌레 재판)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걸까? 그 와중에 조라 님의 과거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직접 창업하신 게임 회사의 대표라는 것도, 나의 게임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펌프잇업의 개발자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며 더욱 호감이 갔다. (펌피: 망가질 용기) 이것 또한 운명인가 싶었다. 그놈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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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돌핀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일 자리를 찾던 중, 조라 님이 제안을 했다. 몇 년째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이 있어요. 이걸 완성할 수 있게 기획서를 써줄래요? 게임을 확인하고 시연해 보니 시스템은 대부분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콘텐츠가 없었다. 프로그래머가 디렉팅을 할 때 종종 보이는 상황이었다.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주말마다 기획서를 써드렸다. 하지만 개발 진행은 여전히 더뎠다. 실제 작성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의도한 바와 다른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조라 님이 또 다른 제안을 하셨다. 차라리 우리 회사에 다니는 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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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라 님의 회사 관련 기사를 확인했다. 야근 없는 회사. 주말 출근도 없는 회사. 솔직히 말하자면 이 꿈같은 워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임을 만들려면 밤을 새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시간을 아끼면서 만들면 효율이 나오지 않을 텐데. 하지만 거기에는 조라 님이 경험했던 아픈 경험이 있었다. 만약 이 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다른 어떤 복지보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워라밸을 지켜주는 것 아닌가. 고민은 오래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개인 회생 중이라서 큰 금액을 받을 수도 없으니 이곳에서 평소에 동경하던, 존경할만한 대표님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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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급은 마스터였다. 디렉터나 PD를 주실 줄 알았는데, 독특한 네이밍이었다. 처음에는 캡틴을 주려고 했다고 하셨는데, 마블 때문에 캡틴 아메리카가 자꾸 생각나서 바꾸셨다고. 나 역시 차라리 마스터가 낫다고 생각했다. TRPG를 하며 익숙한 호칭이기도 했으니까. 조라 님은 말씀하셨다. 하고 싶은 것 다 만들 수 있게 해 줄게요. 일단 우리 만들던 로그라이크부터 끝내고요. 감사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개발 인원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점이었다. 신입 급 프로그래머 한 분, 신입 급 그래픽 한 분. (원래 두 분이었지만 한 분은 중간에 이직하셨다.). 프로그래머는 조라 님이 직접 가르친 제자라고 했다.) 실력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보다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애초에 20년 차가 넘는 슈퍼 프로그래머의 제자라니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여기에 기획과 개발 총괄인 내가 들어간 것이다. 이 인원으로 우리는 개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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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게임인 로그라이크는 미리 선언한 대로 3개월 즈음 빠르게 마무리가 되었다. 너무 급하다고 생각하나? 조라 대표님은 그냥 완성만 해달라고 했지만, 손익 분기를 넘기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개발 기간을 단축해야만 했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야근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 고려해서 가급적 많은 것을 데이터 테이블로 빼서 직접 작업했다. 나의 작업 속도라면 일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논의할 필요 없이 그냥 달리면 되니까. 문제는 FGT였다. 이렇게 완성된 버전으로 유명 게이머 블로거나 게임 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대다수에게 좋지 않은 평가가 나왔다. 세상의 트렌드는 ‘로그라이크’가 아닌 ‘로그라이트’로 변해 있었다. (이름은 한 끗 차이지만 차이가 많다.) 우리는 처음부터 정통 로그라이크를 목표로 했고 이 부분이 게이머들에게 와닿지 않은 것이었다. 고집을 부리고 싶었지만, 이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조라 대표님의 것이었다. 대표님의 판단에 따라 로그라이크로 전환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작업량이 늘었고 결국 예정된 기간을 넘겨서 게임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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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출시하려는 와중에 일본 퍼블리셔가 필요했다. 오래된 블로그 이웃이 마침 일본 C사에서 퇴사해서 모바일 게임 퍼블리싱 회사를 차리고 있었다. 이 분에게 연락해서 계약을 진행했고 여러 국가에 순차적으로 게임을 출시했다. 일본에서 기사가 떴고, 한국 언론도 그 덕분인지 다른 기사가 떴다. 이를 기반으로 오랜만에 NDC에 나가 ‘콘솔 로그라이트 만들기’라는 강연을 진행했다. 매출은 예상에 비해 부족했지만, 회사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이제 콘솔 게임 개발의 경험을 쌓게 된 것이다. 다음 작품은 좀 더 잘 될 것이다. 우리 회사는 이제 시작한 셈이니까!

hq720.jpg?type=w580 유튜브에 검색하시면 풀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라 대표님은 출시 기념 파티를 열었다. 이 회사에 독특한 문화는 조라 님 덕분이었는데, 회사에서 노동을 착취당했던 경험 탓에 진심으로 직원을 위하셨다. 때로는 과하다고 생각할 수준이었다. 당시는 코로나였는데 단체로 백신을 맞으러 갔고, 항체 보유 기념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수원에 가서 왕갈비를 먹고 열기구를 타고 돌아온 것이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맛집을 찾아 단체로 멀리 나가기도 했다. 가장 재미있게 일한 게임 회사는 매직 돌핀이었지만, 가장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게임 회사는 단연코 여기였다. 내가 보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한 달에 한 번 보드게임 데이를 지정해주시기도 했다. 조라 대표님은 자주 말씀하셨다.


“내가 회사 차리고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마스터와 우리 직원들 덕분이에요. 모두 고마워요!”


나도 그리고 우리 직원들도 모두 대표님에게 감사했다.

ss_401f9ee1f2e26ba75d9d22a39cb1f368440c4c85.1920x1080.jpg?type=w580 로그라이트로 변하며 추가된 마을 시스템

좀비라는 단어는 본래 아이티의 원주민에게서 나왔다. 부두교의 저주를 기원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그것은 아이티를 침략한 영국인들이 퍼뜨린 소문이었다. 역사 속의 좀비는 사형보다 더욱 심한 형벌이었다. 좀비가 된 사람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이 주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좀비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매일매일 반복하는 농장 일을 좀비에게 맡기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전 게임 ‘약속의 땅’과 비슷한 메카닉의 일꾼 관리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지치지 않는 좀비로 말이다. 조라 대표님에게 이야기했다. 함께 제시한 10여 건의 프로젝트 제안이 있었는데, 고민 끝에 좀비 농장을 만들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쓸만한 그래픽 에셋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디자이너의 당시 실력으로 새로운 리소스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디자이너를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라 대표님은 어떻게든 직원을 지키고 싶어 하셨다. 결국 그래픽 에셋을 수정해서 개발하는 형태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B%8B%A4%EC%9A%B4%EB%A1%9C%EB%93%9C.jpg?type=w580 약속의 땅

이 프로젝트는 진행하는 내내 문제가 많았다. 여기에는 나의 실수가 많았는데,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설명하거나 전달한 내용 때문이었다. 당시 디자이너는 게임 플레이 경험이 한정적이었다. 게임 메카닉의 핵심 벤치마킹 대상인 약속의 땅은 물론 RTS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심지어 농장 게임도 거의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해야 할 게임 리스트를 전달했지만 그 또한 업무 외 시간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해서 포기해야 했다. 결국 내가 옆에 붙어서 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라 대표님에게 몇 번 건의를 했다. 야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특히 단호하셨다. 야근은 절대 안 됩니다! 수없이 재작업이 반복되면서 방향을 바꿨다. 이전처럼 내가 직접 작업하는 데이터 방식은 무리였다. 내가 디자이너 옆에 붙어서 계속 지시를 해야 했으니까. 시스템에 의존하는 방식이 되며 콘텐츠를 최대한 줄여 나갔다. 그 과정에서 밸런스도 서서히 무너져 갔다. 게임이 출시되는 날, 대표님은 이 게임의 재미를 부정하는 글을 올리셨다.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엉망이 된 게임이라도 나에게는 자식과 같은 존재이다. 매출은 좋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해외의 누군가는 좋은 평가를 했다. 게임기 컬렉터 형님도 5시간에 걸쳐 엔딩을 보고 리뷰를 남겨 주셨다. 나에게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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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라 대표님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디자이너는 해고했다. 그분에게 실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저 개발 총괄인 나와 핏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나는 다양한 게임을 많이 경험해 본 사람과 궁합이 좋다. 더 잘 맞는 곳으로 가셨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조라 대표님은 그분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셨다. 억울하거나 분하다면 나만 욕하면 될 것이다. 새로 디자이너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절친이 된 봄 AD에게 SOS를 보냈다. (마법의 돌고래는 꿈을 꾼다) 그는 자신의 사촌 동생이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마침 구직 중이라고 했다. 면접을 봤는데 나와, 그리고 우리 회사와, 조라 대표님과도 핏이 잘 맞는 것 같았다. 우리가 다음에 만들 게임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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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저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따라서 퇴근 후 스터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분량이 많아졌고, 이를 묶어서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다. 그중 초록비 책공방이라는 출판사에서 계약을 하자고 하셨다. 초록비 대표님은 게임을 잘 모르는 분이셨는데, 오히려 좋았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현업 기획자 마이즈가 알려주는 게임 기획 스쿨’이 출간되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출간했는데, 예상외로 책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SE-15c1ace4-65ef-4ece-b746-9d4ace6be23d.jpg?type=w580 현업 기획자 마이즈가 알려주는 게임 기획 스쿨

이후 이 책을 통한 특강 요청이 왔다. 여기에 더해 대학 강의 의뢰까지 들어왔다. 당연히 조라 대표님에게 의논했는데, 뭐든 다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셨다. 회사의 이름을 알리는 마케팅의 효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 1회는 외래 교수로 중부대학교 게임 학과에 출강을 나갔다. 조라 대표님은 뭐든 다 지원해 주셨다. 덕분에 보드 게임 지도사와 탐정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매일 웹소설을 썼다. 그렇게 쓴 웹소설도 연재 끝에 출판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하도록 하자.) 아무튼, 워라밸이 주어진 덕분에 회사 일 이외에 많은 것에 손을 댈 수 있었다. 이렇게 시도한 하나하나의 일들은 이후의 삶을 위한 씨앗이 되었다. 모두 조라 대표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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