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게임만 했을 뿐인데

게임과 오타쿠의 시작

by 마이즈

당신은 언제부터 오타쿠 콘텐츠를 접했는가? 나에게 애니메이션을 묻는다면 불법 클럽에서 일하던 시기를 말할 것 같다. (오타쿠는 불법입니까?) 게임을 묻는다면 처음으로 오락실에 간 시점이라고 말하겠지? (창문, 놀이터 그리고 손가락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드래곤볼, 게게게의 키타로, 시티헌터, 라면맨, 심지어 세인트 세이야까지. 이 콘텐츠들을 한국에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수입되기 이전에 접할 수 있었다. 게임도 마찬 가지였다. 마이티 봄잭이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SD건담 등을 처음 접한 것은 디지털 게임이 아니었다. 졸리 게임 시리즈라고 불리는 보드 게임이었다. 한 박스당 1,000원이라는 균일가로 다양한 테마가 있었고, 어린 나는 푹 빠져들게 되었다. 덕분에 다양한 콘텐츠에 노출되었고 나중에 만화나 게임 등을 접할 때 눈에 익숙한 캐릭터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는 방향이 된 것이다.

화면 캡처 2025-08-06 193358.png 드래곤볼, 게게게의 키타로, 젤다의 전설

출시되는 모든 졸리 게임을 수집했다. 가격은 프라 모델보다 훨씬 저렴한데 더 오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사 오면 동생과 둘이 게임을 플레이했지만, 그다음에는 1인 플레이 규칙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혼자 했냐고? 아니다. 동생에게 게임을 시키고 진행을 맡았다. 내가 수정한 규칙에 동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재미있어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매일 문방구를 방문하며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지 않는지 기다렸다. 당시에는 신문과 TV가 유일한 정보였는데, 그 어디에서도 졸리 게임을 다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화면 캡처 2025-08-06 193408.png SD건담, 슈퍼 마리오, 울트라맨

성인이 된 이후 다시 졸리 게임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천 원짜리였는데 지금 구하려니 수십만 원이 넘기도 했다. 추억의 가치는 대단하다. 힘들게 구한 게임을 플레이하며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재미없었던가? 그랬다. 게임은 규칙아래 플레이하는 것에서 사람끼리 상호작용 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보드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규칙에 의존한 형태로 각자 진행하는 게임이 재미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인이 되고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졸리 게임이 모두 일본의 파티 조이라는 보드 게임을 카피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당시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콘텐츠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대다수였으니까. 아무튼 나는 졸리 게임을 통해 다양한 시스템을 학습했다. 이는 평생 동안 내가 가진 시스템 기획의 근간이 되었다.

화면 캡처 2025-08-06 193419.png 파티 조이 원본

중고등학교 시절.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항상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냈다. 바깥일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럴 때면 방에 들어가서 책상에 앉았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렸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열 때 빠르게 숨기는 것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종이를 작게 잘라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 이거 보드 게임에 사용하는 카드 같은데? 그때부터 보드 게임을 제작했다. 어머니 시점에서 내가 공부한다고 생각한 시간의 90% 정도는 보드 게임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보드 게임은 어릴 때처럼 동생에게 시켰다. ‘MACO’라는 가상의 회사를 만들고 보드 게임을 만들 때마다 박스를 만들어 로고를 그려 넣었다. 박스라기보다는 서류 봉투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만든 보드 게임이 100개를 넘어갔다. 이 비밀스러운 놀이 역시 게임 기획자로써 나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IMG_9211.jpg?type=w580 직접 만든 보드 게임들 중 하나

중학교 때 ‘RPG환상 사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당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에 웬만한 책은 공짜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만큼은 꼭 사고 싶었다. 이유는 본 내용이 아니라 부록이었다. TRPG라는 이름의 게임이 십여 페이지 수록되어 있던 것이다. 그동안 만들어온 어떤 보드 게임과도 달랐다. 아르바이트비 중 일부를 사용해서 책을 구매했고 관심 있는 친구들을 모아 부록에 있던 게임, ‘알비온’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경험에 빠져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을 소지하고 있었고, 먼저 하자고 했으니 나는 처음부터 자연스레 DM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TRPG에서 DM은 던전 마스터의 약자로 게임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화면 캡처 2025-08-06 193434.png RPG 환상 사전으로 TRPG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알비온을 한참 플레이하던 중 TRPG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던전 앤 드래곤즈 한글판이 출간되었다. 알비온 멤버들은 그대로 던전 앤 드래곤즈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3년간의 긴 장기 시나리오를 진행했다. 여전히 나는 DM이었고, 따라서 직접 시나리오와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친구들은 엘프와 전사가 되어 모험을 진행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모든 경험은 게임 기획자로써의 나를 단련시켰다. 내가 쓴 시나리오, 내가 설정한 세계에서 사용자들의 반응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완벽한 게임 기획자 훈련 방법 아닌가? 그래서 나는 게임 기획 지망생들에게 TRPG의 DM 경험을 항상 강력 추천한다.

화면 캡처 2025-08-06 193444.png 한국 TRPG의 근본이자 원조인 던전 앤 드래곤즈 한글판!

어느 날 우리 TRPG 멤버 중 하나가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며 가보자고 했다. 이른바 매직 클럽이라는 장소였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매직 더 게더링의 한글판이 출시된 것이다. 동시에 한국에 첫 번째 매직 클럽이 문을 연 해였다. 매직 더 게더링, 이하 MTG는 TCG (트레이딩 카드 게임)의 기본 중 기본이다. 이후 포켓몬스터나 유희왕, 하스스톤 등으로 이어진 카드 게임 장르라고 보면 된다. 처음으로 TCG를 경험한 나는 또다시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마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게임 매장 ‘으뜸’에서 사장님이 MTG 대리점을 겸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으뜸) 당연히 강력 추천해 드렸고, 나는 가게에서 사람들에게 MTG를 교육하고 때로는 덱 테스트용 대전을 해주는 가이드로 활동하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간 역시 미래의 게임 기획자로써 유용했다. 밸런스와 전략, 심지어 뽑기 확률까지. 수많은 오프라인 게임은 이처럼 디지털 게임 디자인의 좋은 학습이 된다.

Three-reasons-I-quit-Magic-The-Gathering-1-Cover.jpg?type=w580 TCG는 매직 더 게더링으로 시작했다.

대학에서 만든 게임 동아리에는 TRPG와 MTG를 전파했다. (안녕 레벨 1) 여전히 나는 DM이었다. 플레이어로도 참여하긴 했지만, 기회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번씩 DM에 도전했던 친구들이 결국 다시 플레이어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보드게임 붐이 일었다. 카탄, 뱅 같은 게임들이 유행했고 전국에 보드 게임 카페가 생겼다. 겜돌이인 내가 이 빅 웨이브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보드 게임 방에 자주 놀러 다니면서 새로 나오는 게임들을 하나 하나 해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또 말하면 입이... 아니, 손가락이 아프겠지만, 다양한 보드 게임 시스템의 경험은 게임 기획자로써 큰 도움이 되었다.

725a7253-c254-404b-84b7-51a8ac579911.jpg?type=w580 수없이 많은 보드 게임을 해봤다.

어느 날, 만나던 연인이 물었다. 보드 게임 만들어 보지 않을래? 당시 그녀는 만화 행사인 코믹 월드에서 나름 알려진 부스의 그림쟁이였다. 내가 일정과 기획, 시스템을 담당하고 그림은 친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다만, 만화 행사에서 파는 동인 보드 게임은 그때 유행하는 트렌디한 캐릭터와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오타쿠이기에 가능한 게임이었고 당시의 나는 서브 컬처 계에서 작게나마 알려져 있었다. (내가 오타쿠다!) 역시 오타쿠는 세상을 구한다. 나의 세상을. 그렇게 첫 번째 보드 게임을 제작했다. TCG였다. 문제는 만화 행사 측에서 문제시했다는 점이었다. 그림을 사고파는 행사인데, 어떤 그림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패키지를 파는 것은 문제라는 점이다. 충분히 수긍이 갔다. 그래서 두 번째 보드 게임은 말판이 있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우리 부스에서 보드 게임을 사간 사람들이 무대 행사를 기다리며 바닥에 앉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KakaoTalk_20220918_212340373_06.jpg?type=w580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 판매한 페이퍼문과 성배 전쟁.

이후 오랫동안 보드 게임은 취미의 영역에만 남아 있었다. TRPG는 코로나 이후로 못하게 되었고, TCG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접었다. 기타 보드 게임들은 꾸준히 했지만 여전히 사람을 모으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제 와서는 오프라인 모임을 찾아가려고 해도 나이 제한에 걸려 버린다. 그래서 보드게임 지도사라는 직종에 관심을 가졌다. 보드 게임을 활용해서 교육을 진행하다니. 치매를 예방하다니. 너무 멋지지 않나? 자격증 과정을 진행하고 이후 활동하는 지도사 분들을 보며 보드 게임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즈음, 친구 토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생존형 개발자) 특별한 제안과 함께.

SE-d124192a-a99d-43d7-9f79-cbafbb0ff291.jpg?type=w580 보드게임 지도사 자격증을 딴 뒤 몇 번의 수업을 진행했다.

문화재 전문가인 토이는 사업 비용 중 일부를 보드 게임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 문화재 교육을 보드 게임으로 하는 거야. 어때? 솔깃했다. 동인 게임이지만 보드 게임 제작 이력도 있었고 지도사 자격도 받은 참이었다. 그렇게 토이와 함께 2 종류의 보드 게임 제작에 참여했다. 직접 만들어보니 기존에 바라보던 방향과는 또 다른 부분이 생겼다. 이후 정부 기관의 보드 게임 사업에 심사 위원으로도 참가할 수 있었다. 친구 덕분에 오랜 취미인 보드 게임 제작자까지 되어보고. 참 감사하다.

화면 캡처 2025-08-06 193500.png 프로 게임 디자이너로 제작에 참가한 두 종류의 보드 게임.

요즘 나의 소개는 이렇다. “게임을 만들고, 쓰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 여기에서 말하는 게임은 디지털 게임만이 아니다. 보드 게임 또한 훌륭한 게임이지 않나? 이후 나는 대학교 수업에서 보드 게임을 활용하고 있으며, 자기 계발 모임인 ‘꿈이사’에서도 보드 게임을 활용하고 있다. 결국 만들고 활용하는 쪽만 바라보게 되는 것 같지만 그 이상으로 항상 플레이도 원하고 있다. 언제든 함께 보드 게임을 하고 싶다면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 시간과 장소, 인원만 맞다면 얼마든지 달려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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