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 파의 칼잡이

나의 마지막 느와르

by 마이즈

몇 개월 간 폭력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룹은 조직 폭력배 급은 아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탈선한 아이들의 그룹에 가깝다. 계기는 오락실에서 만난 폭력배들이었다. (가드 불능 반격기) 집 근처 오락실이었던 탓에 나를 때린 형들 중 하나와 두어 번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음료를 사주거나 과자를 건넸다. 때로는 야하게 입은 누나와 함께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아주 멋진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병 주고 약주기냐.

어느 날, 놀이터 옆 계단길에서 그 형을 포함한 세 명과 마주쳤다.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라고 했다. 건너편 골목 공사 현장이었다. 아직 철골이 세워지기 전 바닥이 울퉁 불퉁한 상태였다. 야, 신발 벗어. 네? 신발은 왜요? 내가 벗은 신발을 한 사람이 집어 들고는 멀리 던졌다. 여기에서 도망가면 너 발 아작 난다. 알지? 돈을 뺏으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집 앞에 나오는 길이었기에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너 칼 가지고 있지? 칼 꺼내. 왜요? 무서우니까 그렇지! 대놓고 말하는 것이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반항해도 세 사람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기에 칼을 꺼내 바닥에 내려 두었다. 너 사람 찔러봤어? 많이는 아니고요. 그 형의 말에 약해 보이면 지난번처럼 맞을까 싶어 적당히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너, 우리 조직에 들어와라.”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경우지? 신발을 던져버리고 칼을 내려놓게 하더니 뜬금없이 섭외를? 거절하면 3:1로 얻어맞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겁먹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억지로 쥐어짜듯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이쯤이면 나의 찌질함을 느끼고 그냥 웃어넘기겠지.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야, 이것 봐! 이 놈 눈 빛! 우리 죽일 것 같지 않냐? 그래서 내가 이 동생에게 반했다니까! 어? 이게 뭐지? 이제 너 우리 퓨마 파의 일원이다. 내가 보스야.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그렇게 오락실에서 만난 건달들의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사납게 보이는 못생긴 외모 탓이었다. (못생겨도 괜찮아)

조직의 아지트는 조금 전 그 형을 마주친 놀이터 근처였다. 일전에 처음 마주친 오락실에서도 멀지 않았다. 반 지하에 있는 원룸 느낌이었는데, 그 안에 형들이 모여 담배와 술을 즐겼다. 가끔 누나들이 다녀가긴 했지만 대부분 남자들끼리만 있었다. 아지트의 위치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집에 갈 때 조금 더 멀리 돌아갔다. 피할 수 있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기에 마주치지 않으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만약 휴대폰 시대였더라면 더 엮였을지도?

문제는 나의 직장이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으뜸) 누군가 우연히 발견했으리라.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데, 형이 몇 번 찾아왔다. 가게를 둘러보고 저녁에 들르라는 말만 하고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형들도 겁먹은 듯했다. 몇 번은 사장님이 계실 때 방문했다. 이후 식사를 하며 그 형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셨다.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언젠가 한 번은 사장님이 그 형을 데리고 나갔다. 가게 유리창 밖으로 둘이 대화하는 모습이 계속 신경 쓰였다. 사장님은 화를 내시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퇴근길에 아지트에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퓨마의 형들은 제어할 수 없었으니까. 우리 사장님과 가게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어느 날은 형들이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퓨마 파 규칙이 있어. 니들 여자 사귀려면 나한테 허락받아야 한다. 몰래 사귀면 죽을 줄 알아. 어떻게 허락받냐고? 여자랑 나랑 단 둘이 하루만 자게 해 줘. 무슨 중세 유럽의 초야권인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형 하나가 나를 가리켰다. 야, 너도 여자 생기면 알지? 넌 나한테부터 순서대로 허락받아야 한다! 순간 뜨끔 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나름 가깝게 지냈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썸썸 코스프레 : 사무라이와 신선조) 그 말을 듣자 보스 형이 피식거렸다. 야, 저 새끼는 평생 여자 못 만나. 얼굴 보면 모르냐? 하긴 그렇지. 저런 놈한테 여자가 붙을 리 없지. 넌 못생기게 태어나서 억울하겠다. 형들은 내 외모를 안주 삼아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나의 외모 콤플렉스가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은 아지트에 도착하니 보스가 따로 불렀다. 우리 퓨마 파에 탈퇴자가 생겼다. 처음 있는 일인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 저기 대각선 길 건너 지하로 내려가는 주차장 알지? 오락실 건너편. 오늘 밤 12시에 거기로 오라고 했으니까 네가 적당히 처리해라. 네가 한 방식이 우리 조직의 기준이 되는 거야. 대충 하면 다들 쉽게 탈퇴할 테니까 겁 좀 줘야 한다? 손가락이든 귀든 잘라낸 건 더러우니까 나한테 가져오지 말고 그냥 버려. 알았지?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우리 가게와 사장님이 인질로 잡혀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일단 집에 들어갔다가 밤 12시에 맞춰 다시 나왔다. 혹시 피가 튈까 봐 가방은 들지 않았다. 버릴 생각으로 주워온 부직포 가방에 칼 하나만 덜렁 담았다. 혹시 기습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심스럽게 지하로 내려갔다.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미 엉망으로 얻어맞은 남자 하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주변에는 피가 튀어 있었다.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반항할 만큼의 힘은 남아있지 않는 듯했다. 칼을 꺼냈다. 하지만 도저히 무언가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가를 치른 것 아닐까?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면 형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찌질하게 칼을 바닥에 문질러 피를 조금 묻혔다. 그리고 돌아왔다.

조직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내가 탈퇴자의 손가락을 자르고 웃으며 몸에 칼을 찔러 넣었단다. 직접 봤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보스 형이 나를 더욱 잘 대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학폭의 피해자였던 내가 건달들의 조직에서 나름 입지를 갖게 되었다는 짜릿함도 있었다. (학폭 탈출) 그 탓에 겸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며칠 뒤 아지트에 들러 집에 돌아가는 길. 등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려쳤다. 그 자리에 엎어졌고 여럿이서 나를 발로 밟고 몽둥이 같은 것으로 내리쳤다. 죽은 척해야 이 폭력이 사라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으며 반응하지 않았다. 잠시 후 조용해진 뒤에 눈을 떴다. 범인들은 사라진 뒤였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가 크게 다친 것인지 통증이 심했다. 걸을 수 없으니 반쯤 기어서 집으로 향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가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외면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느 하나 신고해주지 않았다. 그래. 이 것이 인간이지.

이 날의 충격은 끝나지 않았다. 뒤통수를 가격 당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빚만 남기고 도망쳤다던 아버지가 집 앞에 있던 것이다. 어째서 이 늦은 시각에?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도움이 절실했다. 아버지는 주춤거리며 나에게 걸어왔고 집 앞 약수터 계단에 함께 걸터앉았다. 몸을 세우니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집에 의약품 상자가 있냐는 질문에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조용히 들어가 의약품 상자만 가지고 나왔다. 아버지는 소독약을 뿌리고 반찬고를 붙이며 머리에 붕대를 감아 주셨다. 왜 여기 계신 거죠? 너는 뭐 하고 다니길래... 아버지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설교를 늘어놓으려고 하셨다. 붕대 다 감았으면 그냥 꺼지세요. 온몸이 부서지듯 아팠지만 아버지 앞에서 센 척을 했다. 10년도 훨씬 지난 훗날, 아버지는 이 날의 추억을 이야기하셨다. 나에게는 수치스러웠던 그 순간이 아버지에게는 특별함으로 자리 잡혀 있었다. 내가 너 머리 깨진 거 치료해 줬잖아? 기억하지?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면 반드시 겪게 되는 일이 있다. 구역 싸움이다. 소속되어 있는 동안 몇 번 진행된 것으로 들었지만, 대부분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 가끔 나가게 되면 칼을 손에 쥐고 보스형 옆에서 상대를 쏘아보고 있다가 돌아오면 됐다. 보스 형 선에서 대화로 끝났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은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군포였나 산본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안양 인근 지역 조직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고, 다들 그날은 큰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평소에 나를 열외로 두던 보스 형이 그날은 꼭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학교도 빠진 채 따라갔다.

항상처럼 보스 형 옆에 서서 칼을 거꾸로 쥐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공격적이었다. 잠시 후 갑작스레 싸움이 시작되었다. 당황했지만 마구 잡이로 칼을 휘두르면 분명 더 우습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 말로 자코의 전형 아닌가? 다가오는 상대를 향해 한 두 번 칼을 휘두르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다행히(?) 우리 퓨마 파의 기세가 높았다. 형들이 내 앞으로 치고 나가며 어느새 나는 무리의 뒤편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대로 나는 도망쳤다. 이 근처에는 몇 번 가본 지하 오락실이 있었다. 이번에도 게임이 나를 살리는구나! (맹세)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문 앞에서 칼은 옷 속으로 밀어 넣어 바지춤에 걸쳐두었다. 칼을 들고 신성한 오락실에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지.

오락실을 한 바퀴 돌다가 왠지 격투 게임을 할 마음이 아니라서 파로디우스를 한판 했다. 어이없는 상황이다. 조금 전까지 패싸움의 한 복판에서 칼을 휘두르던 녀석이 갑자기 오락실에서 코믹 슈팅 게임을 하고 앉아있다니.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1 스테이지 보스에서 죽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오락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각오를 한 채 싸움터로 향했다. 비겁하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싸움은 끝나가고 있었다. 몇 사람은 쓰러져 있었고 대부분은 도망치고 있었다. 엄청난 강자라도 나온 건가 싶었는데, 아마 동네 주민이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나도 도망치는 인파에 휩쓸려 함께 달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싸움에서 모두의 앞에서 웃으며 칼을 휘두른 미친놈처럼 되어 있었다. 저 놈 사람을 상대로 주저 없이 칼을 휘두르더라. 내가 봤어. 심지어 웃더라. 진짜 조심해야 할 놈이야. 사실 나는 겁쟁이였지만, 어쩐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그 무용담(?)을 즐겼다.

으뜸 사장님이 어느 날 뜬금없이 말하셨다. 그 놈들 아직 만나는 것 아니지? 사장님의 눈을 바라보니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정리할 거예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때마침 큰 외삼촌의 사업이 실패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우리가 얹혀살고 있던 외 할아버지의 안양 별장이 넘어갔다. 안양에서 살 수 없게 된 우리는 구미에 있는 외 할아버지의 공장 사택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 해피 트리) 좋은 핑계였다. 이제는 많이 친해진 보스 형에게 이야기했다. 약간의 양념을 보탠 것은 기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강원도로 떠나야 합니다. 언젠가 전국에 이름을 떨치시게 되면 다시 만나요. 경상도가 아닌 강원도로 바꿔 말한 것은 인연을 완전히 끊으려는 나름의 작전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 끝난 뒤, 놀이터에 걸터앉은 채 보스 형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탈퇴식에 예외는 없는 것 알지? 이해해 줘라.

며칠 뒤 새벽. 혼자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야만 했다. 약속이기도 했고, 만약 내가 도망칠 경우 가게에 해코지라도 할 까봐 걱정이 됐다. 칼은 집에 두고 갔다. 대신 손에 잡히는 패미콤 팩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무기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주머니에서 게임 팩이 나오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황당한 생각에서였다. 게임을 주머니에 담고 있으니 용기가 생겼다. 지하 주차장에 가면 느와르 영화처럼 멋지게 얻어맞는 장면이 연출될까? 모래시계에서 이정재가 둘러싸여 맞는 장면처럼 말이야. 그래도 나름 조직에서 직급이 높은 편이었으니 여러 사람이 달려들겠지? 어차피 맞아 죽을 거라면 멋지게 죽자. 고작 10분 거리를 이동하면서 온갖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이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2시간, 3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렸지만 보스 형도, 퓨마의 멤버들도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퓨마 조직 안에서는 나의 최후가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지 않을까? 매번 하지 않았던 일이 소문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중학교 때 학폭을 당하며 시작한 칼잡이 느와르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중딩 느와르) 그래서 좋았냐고? 뭐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이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폭력 조직에 몸 담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는 정도일 것 같다. 덕분에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근처 폭력단의 형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PC방 매니저의 긴긴밤) 내가 머문 퓨마는 제대로 된 폭력 단체는 아니었다. 조직이라기보다는 거기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청년들의 겉멋 든 싸움 놀이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설프게 나마 함께 한 시간을 통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의 생각과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편견을 갖고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도. 아무튼, 이렇게 안양을 떠나면서 다시는 폭력 조직과의 인연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keyword
이전 02화보드 게임만 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