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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나를 키워준 또 하나의 가족

by 마이즈 Feb 17. 2025

집에서 게임을 하던 중 이상한 소리가 난다 싶었는데, 잠시 후 아답터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새로 사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근처 게임 가게를 찾다가 지하상가 구석에 있는 매장을 찾았다. ‘으뜸’이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였다. 아답터 사러 왔는데요, 얼마예요? 가진 돈은 삼천 원 정도였는데, 아답터는 오천 원이었다.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게 앞에서 기다렸다. 아답터를 사가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가서 삼천 원에 팔라고 해야지! 뺏는 것보다는 낫잖아? 하지만 그날은 아답터를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밤 9시가 되어 가게 문을 닫는 시각. 사장님이 가게 문을 잠그며 말을 걸었다.


“왜 기다렸냐?”

“게임을 해야 하는데 아답터가 터져서요.”

사장님은 문을 잠그다 말고 다시 들어가셨고 아답터 하나를 건네주셨다.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게임을 하는 내내 가게가 떠올랐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누가 뭘 사가는지 지켜보니 나만큼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일했던 마리오 하우스도 떠올랐다. (추억의 마리오 하우스) 그 이후, 근처를 지날 때면 일부러 조금 더 돌아가는 루트를 선택해서 가게를 지켜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이 섰다.


“저 기억하세요? 아답터를 주셨어요.”

“내가? 잘 모르겠는데. 팩 바꾸러 왔냐?”


옆에 있는 사모님 때문에 시치미 뗀다는 생각이 들어 더 깊이 말하지는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

사장님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몇 살이냐고 물었다. 고등학생입니다. 그럼 학교는? 안 가도 괜찮습니다. 일하게 해 주실 때까지 매일 오겠습니다. 그날은 대답을 듣지 않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매일 가게에 갔다. 카운터와 손님 사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사장님의 손이 닿지 않는 위치의 게임을 전달해 주거나 손님이 몰려 바쁠 때면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손님을 받기도 했다. 매점 알바로 닳고 닳은 실력이지. 훗. (좋아하는 음식은) 결국 사장님은 항복하셨다.


“채용은 할 건데, 조건이 있다. 학교는 갈 것. 학교 끝나고 와라. 대신 주말은 하루 종일.”

너무 기뻤다. 그날은 돌아가는 길에 헌책방에 들러 주인 할아버지에게 그 멋진 장소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했다. 이제 자주 오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가끔 올게요. (요구르트와 콩자반)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알바를 하던 친구들에게도 자랑했다. (착한놈 강한놈 사악한놈) 그렇게 나는 게임 가게 ‘으뜸’의 직원이 되었다. 월급은 20만 원. 당시 시급이 1000원대 초반이었음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짜장면이 1,500원 ~ 2,000원이던 시절이었으니까. 첫 월급은 동생과 어머니에게 속옷을 사주고 함께 조개구이를 먹었다. 어머니는 일터를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으셨지만 가족 외식은 반기는 눈치였다. 동생은 조개 구이를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점심시간에는 지하상가 식당가를 이용했다. 손님이 있을 때는 배달을 시켰고 한가할 때는 직접 가서 먹고 왔다. 대체로 백반을 먹었는데, 그중 나를 알아보는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너 구두 배달하던 애 아니냐? (오타쿠는 불법입니까) 여기 취직했구나? 기억해 주시는 것이 감사해서 그 가게를 주로 이용했다. 으뜸 사모님은 그 가게는 맛이 없다며 싫어하셨기에 배달 주문을 할 때는 죄송하지만 예외였다. 

으뜸에서 일을 하면서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에는 매장에 PC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모든 기록은 수기였다. 주요 수익은 게임 교환이었는데, 중고 소프트를 가져오면 3,000원을 받고 다른 것으로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다만 게임마다 가격이 다르기도 하고 오래되면 값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지사. 가져온 것보다 더 비싼 게임으로 교환하려면 차액을 지불해야 했다. 따라서 직원이라면 모든 게임의 가격을 외우고 있어야 했다. 변동되는 값까지. 여기에 추가로 고객 기록을 통해 어떤 장르의 게임을 좋아하고 어떤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했다. 덕분에 90년대에 유통되던 거의 모든 게임의 이름과 기종, 가격대와 인기, 게임의 내용 등을 암기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엑셀을 사용하거나 검색을 하겠지만, 그 시대에는 모두 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경험은 게임 기획자로서 평생 동안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90년대 후반까지 나온 거의 모든 게임이 들어있다. PC-FX나 마티 같은 기종까지도.

손님이 없을 때에는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고객에게 게임을 틀어주기 위한 각종 게임기가 연결되어 있었고, 대형 TV로 신작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이를 보고 들어오는 손님도 있었으니까. 게임을 좋아하지만 가난한 나에게는 최고의 일터였다. 돈도 벌고 게임도 하고 신작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알 수 있는 데다가 심지어 공부까지 된다. 완벽하지 않은가? 가게는 21시에 문을 닫았는데, 사장님은 게임을 빌려갈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조건은 매장 오픈 시각 전에 다시 가져다 놓을 것. 덕분에 가게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까지 다양한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매장이 성장하며 조금 더 넓은 장소로 확장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작은 가게 두 개를 구매해서 그 사이를 뚫어 넓게 사용한다고 하셨다. 사장님은 공사하는 곳에 나를 데려가 주셨다. 그리고는 벽에 해머질을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멋지게 내려치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웠다. 덕분에 들자마자 휘청거렸다. 그때 웃으시던 얼굴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선하다.

가게가 확장되며 게임뿐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다루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음반도 판매했고 영상 CD도 판매했다. 그 외에 다양한 캐릭터 굿즈와 사진집 등도 들어왔다. 애니메이션 쪽에 대해서는 사장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이 잘 모르셨기 때문에 내가 주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타쿠로서의 교양도 계속 이어서 학습할 수 있었다. 게임뿐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잔뜩 볼 수 있게 되었고 굿즈와 피규어, 책자 등에 둘러 쌓여 생활했다. 당시 나오는 게임 잡지도 종류별로 모두 구비했다. 게임 공략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오 하우스에서처럼 직접 게임을 공략해 줄 필요도 없었다. 복사기 하나를 들여와서 고객들에게 공략집을 복사해 주었다. 이후 매직 더 게더링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TCG도 공부해야만 했다. 손님들에게 게임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했고 때로는 대전을 하며 새로운 테마 카드의 활용법도 알려주어야만 했으니까. 게임뿐 아니라 서브 컬처와 관련된 모든 교양을 일하며 익힐 수 있었다. ‘으뜸’은 나에게 일터이자 놀이터이며 최고의 학교이기도 했다. 90년대 중후반에 안양에 살았던 게이머라면 어쩌면 나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으뜸은 당시 안양에서 가장 잘 되던 게임 매장이었으니까.

매장이 점점 잘되어가며 게임 유통의 중심인 용산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게임 총판을 시작한 것이다. 사장님은 나를 총판으로 데리고 가주셨다. 넓은 가게 안에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지만, 내가 일할 공간은 다른 곳이었다. 건너편 건물의 2층. 두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사무실이 있었다. PC와 각종 게임기가 화면에 연결되어 있었다. 너는 여기서 게임을 해라. 네? 저 일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게임하는 게 일하는 거다. 그게 무슨 말씀 이세요? 나보다 네가 게임을 더 잘 알잖아. 새로 나오는 게임 데모 샘플을 하나씩 다 가져올 테니 전부 해보고 몇 개씩 들여올지 수량을 정하는 거다. 네? 제가 그렇게 막중한 책임을 져도 되나요? 그럼 내가 하리?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들인 JH는 나에게 있어 모두 가족 같았다. 사모님은 언제나 자상하게 대해 주셨고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JH는 나를 잘 따랐다. 종종 새로운 아르바이트 형들이 오면 내가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고참이었으니까. 사장님의 조카라는 대학생 누나는 털털한 성격으로 여자라는 성별에 대한 편견을 없애 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며 가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주말마다 총판에 가서 일을 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중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너 장학금 받아야 한다며? 공부는 잘 되냐? 뭐 그냥 그렇지요. 그렇구나. 이제 그만 와라. 네? 이렇게 갑자기요? 저 잘리는 건가요? 아니, 여기에서 몇 십만 원 버는 것보다 장학금으로 몇 백민원 버는 게 더 많이 버는 거다. 대신 방학 때는 지겨울 정도로 일하게 해 주마!

그렇게 몇 달간 가게를 나가지 않았다. 방학을 한 뒤에도 잠시 방황을 하느라 조금 늦게 매장을 찾아갔다. 사모님만 혼자 앉아 계셨다. 왔냐? 사장님은 오늘 안 나오셨어요? 그 말에 사모님의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내가 안 오던 사이에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셨다. 아… 그랬구나… 슬프지는 않았다. 왠지 사장님의 유산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JH는 괜찮아요? 그렇게 한동안 사장님이 없는 매장을 일부러 더 자주 찾아갔다.

세월이 지나며 으뜸 소프트도 점점 나의 삶에서 멀어져 갔다. 몇 년에 한 번씩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여전히 찾아뵈었다. 사모님은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에는 흰머리가 풍성하셨다. 내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음을 전했고, 개발 중인 게임이 신문이나 잡지에 수록되면 들고 가서 보여드렸다. 과장하듯 오버하시며 나를 멋지다 대단하다 칭찬해 주시는 모습이 기뻤다. JH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었다고 들었다. 게임 업계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만 아직까지 마주치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나를 기억하고 연락해주지 않을까?

아버지 없이 자란 나에게 사장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올바른 어른의 모습을 수없이 보여주셨다. 그리고 사장님이 일구신 으뜸 소프트는 나에게 일터이자 놀이터이고 학교이자 포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첫 만남의 순간,  5,000원짜리 아답터 하나가 나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만약 으뜸에서 일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어둠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답터를 공짜로 건네주던 날의 사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본인은 끝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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