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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바이블

첫 키스는 브라운관 맛

by 마이즈 Feb 20. 2025

저녁 식사 데이트 중 수리짱이 질문을 던졌다.


“오빠, 가난할 때도 연애했었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돈 없을 때? 그냥 같이 공원 걷고 자판기 커피 뽑아서 나눠 마시고...”

“대단하다. 조건이 안 좋은데 어떻게 연애가 끊이지 않지?”

“그건 말이지...”


중학생 시절부터 가장이 되어 돈을 벌어야 했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으며 그 와중에 꿈을 향해 달려가야 했지만, 의외로 연애가 끊이지 않았다. 20살에 첫 연애를 시작하고 17회의 연애를 했다. 가장 긴 만남은 5년 반. 가장 짧은 만남은 100일. 중간에 단 한 번, 의도적으로 1년간 연애를 쉬기는 했지만 그 외 솔로 기간은 길어야 3개월이었다. 나는 가난했다. 그리고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했다. 무엇보다 170Cm도 안 되는 작은 키에 못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외모의 보유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가 끊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하나의 게임 덕분이었다.

전설의 게임. 도키메키 메모리얼

도키메키 메모리얼. 1994년에 PC엔진 CD롬으로 발매된 게임. 이후 2006년까지 다양한 기종으로 이식 및 리메이크되었으며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획기적인 작품이다. 요즘 미연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임들과는 많이 다른데, 단순히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비주얼 노벨 형태가 아니라 진짜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무슨 시뮬레이션이냐고? 바로 육성이다. 게이머는 자기 자신을 관리한다. 문학, 예술, 운동, 잡학, 인내, 과학, 용모 등의 능력치들이 있고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스케줄을 정하면 수치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방식이다.

자기 관리를 통해 연애를 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관리하며 특정 능력치가 일정 수치 이상이 되면 이벤트가 발생한다. 여성과의 접점이 생기는 것이다. 예술 수치가 높다면 미술부 여자 아이와 접점이 생기고, 운동을 잘하면 운동부 여자 아이와 만나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첫 번째 비결이 있다.



<<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 >>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의 취향을 바꿀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해진 데이터니까. 그녀가 원하는 내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만남조차 불가능하다. 현실에서도 비슷하다. 상대를 내 취향에 맞추어 바꾸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지만, 내가 상대의 취향 안에 들어가는 것은 노력이다. 물론 현실의 나는 상대를 선택한 뒤에 그에 맞춰서 바뀌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냥 하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다가오는 사람이 먼저 생긴다. 내가 가진 능력치가 그녀의 관심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가온 사람과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나의 모든 노력과 활동에 따라 만나게 되는 이성이 달라진다. 등급이 아니라 취향이 다르다.


<< 친해지려면 상대의 호흡에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운동부인데 대회가 가깝다면 다른 시간을 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만나서 같이 운동을 하거나 데이트 신청을 아예 자중하는 편이 좋다. 그렇다고 연락을 뜸하게 하면 이 부분 역시 문제가 된다. 마음을 여는 것이 오래 걸리는 상대에게 밀어붙이면 부담감을 느낄 것이고, 빠른 결정을 원하는 상대에게 미적 거리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이 부분도 현실과 동일하다. 상대를 나의 일정과 호흡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상대의 입장에 맞춰 배려해야 한다는 점. 오래전 게임이라서 그렇겠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모든 이벤트는 게이머가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 수동적인 여성들이라는 말이다. 혹은 조건부 행동파 여성들이겠지. 그녀들이 나를 배려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맞춰가자.

상대의 성격에 맞는 데이트와 대화를 해야 한다.



<< 데이트를 할 때에도 상대의 취향에 맞춘다.>>

영화 취향을 알아두고 개봉 스케줄을 확인해야 하고 내가 가고 싶다고 매일 오락실만 데려가서는 안 된다. 상대가 아무리 좋아하는 장소라고 하더라도 매번 같은 곳만 가면 호감도가 서서히 떨어질 것이다. 데이트 중 화면에 선택문이 표시되면 상대의 성격을 고려해서 대사를 고른다. 게임 상의 텍스트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에 맞추어 선택지를 만들었을 테고 현실에서도 비슷한 성격 유형의 상대라면 대체로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 결국 말 한마디까지도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표현한 만화가 있다. 연애 게임의 신 급 게이머가 실제 여성과의 연애에 이를 활용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연애 게임의 최고 플레이어가 현실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작품. '신만이 아는 세계'


<<문어발은 금지!>>

도키메키 메모리얼에서는 동시에 여러 명을 공략할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이는 현실도 동일하다. 주어진 시간을 동시에 둘 이상의 상대에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감도를 키워가는 상대가 아닌 다른 이성과 데이트하는 일은 무조건 배드 엔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 집중할 때에 비해서 절반, 혹은 그 이하로 호감도의 상승 속도가 낮을 테니까. 도키메모 메모리얼의 특징 중 ‘폭탄 시스템’이 있는데, 바람을 피우거나 이성을 서운하게 했을 때 발동 된다.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폭탄을 무마하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고 만나러 다녀야 한다. 만약 폭탄이 빵~하고 터지면? 모든 이성이 당신을 극혐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모든 여성에게는 잠재적 폭탄이 심어져 있다. 항상 주의해서 대할 것!



<<스킨십은 조심스럽게>>


요즘 시대에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또 다른 가르침은 스킨십에 대한 조심스러움이다. 이 게임에서는 손잡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수없이 번갈아 속삭이며 갈등하게 만든다. 현실에서도 이성에 대한 첫 스킨십은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감이 없다면 불쾌하게 느낄 수 있고 자칫하면 성추행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상대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안 좋게 보일 수 있기에 더욱 어렵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가볍게 하는 경우도 많기는 하더라. 이 부분은 세대 차이 이려나...

손 한번 잡기가 이렇게 힘들다. R 버튼을 언제 눌러야 할까...



<<너무 늦지 않도록 주의하라!>>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마지막 가르침은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무대로 하며 졸업식에서 고백받는 것이 목표이다. 따라서 3년 안에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끝이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현실의 연애는 3년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언제든 나보다 훨씬 멋지고 잘난 사람이 나타나 상대의 마음에 들어갈 수도 있다. 즉, 현실의 시간제한은 랜덤성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 늦지 않게 꾸준히 연락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상대에게 맞춤형으로!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

도키메키 메모리얼을 이야기하다 보면 나의 첫사랑이 떠오른다. 그녀의 이름은 다테바야시 미하루. 이 게임의 숨겨진 캐릭터이다. 주변 친구들이 그녀를 공략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할 때마다 거짓말로 알려주었다. 특정 능력치를 999까지 올려야 한다거나 3년 내내 피로도가 가득 쌓여 있어야 한다거나. 물론 진짜 공략법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경험했으니까. 게임을 하다가 한 번은 폭탄이 터진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게임 내 모든 여성은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교문 앞에서 마주치더라도 말을 건네면 도망가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졸업식 날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기에 우울하고 슬픈 엔딩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날 미하루가 나에게 고백을 해주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의 공략 조건 중 하나는 모든 이성이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고백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구제해 주는 것.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인 것이다. 엔딩에서 그녀가 눈을 감고 입술을 내미는 장면을 보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다른 인기 있는 여성 캐릭터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다테바야시 미하루.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상대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앞에서 말한 외모나 조건이 평범한 남성에 비해 많이 부족하니까, 기본적으로 이성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는 인기 없는 남성이기 때문에 미하루처럼 세상에서 유일하게, 드물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특별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도키메키 메모리얼을 접한 이후부터 나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쯤이면 이 게임을 연애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제인 -첫 키스는 브라운관 맛-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하겠다. 당시에 도키메키 메모리얼을 플레이한 오타쿠라면 말 안 해도 알 테니까.

스키토카 키라이토카 사이쇼니 이이다시타노와 다레나노카시라?카케누케테유쿠~ 와타시노 메모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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