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탈출

미쳐야 산다

by 마이즈

쉬는 시간 운동장 구석의 등나무 아래. 진흙 바닥에 엎드린 나를 둘러싼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내 머리를 밟고 바닥에 비비며 낄낄거렸다. 녀석들은 항상 돈을 요구했지만 가난한 나는 줄 수 없었고 결국 돌아오는 것은 폭력이었다. 교실에도 내 편은 없었다. 일진들이 나를 괴롭히면 다들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한 번은 폭발해서 주먹을 휘둘렀지만 쉽게 제압당했고 오히려 양팔을 잡힌 채 펀치 연습 도구가 돼야 했다. 화장실 칸에 갇힌 채 위로 날아오는 양동이 물과 쓰레기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끔찍한 나날이었다.

madmaiz_a_black_and_white_pencil_sketch_of_a_middle_school_boy__378988e4-2b4.png?type=w580

중학교 2학년 때, 안양으로 이사를 왔다. 그전까지는 좋은 집에서 곱게 자랐던 터라 타깃이 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학 첫날, 옥상으로 끌려갔다. 기다리고 있던 무리들 가운데 던져졌고 그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야, 싸워봐. 얼마나 하는지 좀 보자. 하지만 나는 거부했다. 그날 맞붙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끝까지 싸우지 않겠다고 하자 옥상에 있던 무리들이 나를 둘러싼 채 밟아 댔고 그 순간부터 나의 계급이 정해진 것이다. 가장 밑바닥으로.

madmaiz_a_monochrome_pencil_drawing_of_a_tall_middle_school_roo_c081666e-dfd.png?type=w580

학폭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설픈 계획으로 전교 1등 하는 친구와 가까워졌다. 선생님들에게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녀석인만큼 붙어있으면 안전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등하교할 때에도 마치 껌딱지처럼 녀석을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얻어맞는 모습을 본 1등 녀석이 침묵하는 순간부터 이 보호막은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심지어 폭행이 끝난 뒤에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그래? 너도 그저 귀찮게 생각했구나. 나 역시 이용 가치가 있어서 친해진 것이니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전혀 의지가 되지 못했다. 보호를 요청한다고 해도 잠시 뿐이니까. 학교 밖에서도 폭력은 얼마든지 행사될 수 있었고 휴대폰도 없는 시대였다. 녀석들은 나의 교과서와 체육복을 내 눈앞에서 찢어버렸다. 그때부터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교과서가 없냐고 왜 체육복을 입지 않냐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누가 괴롭힌다고 말할까? 책임질 수 있나?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나?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믿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폭력에 노출되었고 정도가 점점 심해지기까지 했다.

madmaiz_a_dark_monochrome_sketch_of_a_locker_room_a_student_tak_c203e769-58b.png?type=w580

이 폭력의 연쇄에서 벗어날 방법을 혼자 궁리했다. 그리고 새로운 작전을 계획했다. 전교 규모의 소지품 검사를 시행하게 해서 한 번에 일망타진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해결책이냐 싶지만 중학생이 할 수 있는 그나마 거대한 복수였다고 해두자. 녀석들은 항상 가방에 담배나 본드를 가지고 다녔다. 소지품 검사를 할 때면 옆 반에 물건들을 맡겨두기 때문에 한다면 전체를 동시에 해야만 했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궁리하다가 나름의 작전을 짰다. 우선 의심을 피하려면 나도 피해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불법 애니메이션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에 복사 비디오 하나 정도면 적당할 것 같았다. (오타쿠는 불법입니까?) 너무 순수한 것보다 살짝 야한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정했다. 걸려도 문제없는 순수한 애니메이션이라면 의심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야한 건 곤란하고... 공작왕 정도면 나쁘지 않겠지?


점심시간. 나는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일진들의 시야에서 한동안 벗어나게 된다. (좋아하는 음식은) 매점 아주머니에게 화장실을 조금 길게 다녀오겠다고 하고 교장실로 숨어들었다. 내가 들어가자 교장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너 누구냐? 몇 반이냐? 그리고 보니 명찰 때문에 학년을 숨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기에서 신분이 노출되면 곤란한데... 교장 선생님은 몇 반이냐?를 반복해서 외쳤고 얼떨결에 내가 소속된 반을 말해버렸다. 아아. 이 어설픈 중2 마이즈여!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준비된 대사를 읊었다. 학교에 나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본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순진한 학생들도 피해를 받게 되고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성실하고 밝은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종종 소지품 검사를 하지만 그럴 때면 옆 반에 맡기거나 약한 아이들에게 담배를 숨기게 해서 뒤집어 씌우기도 합니다. 하려면 한날한시에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한 학년이 아닌 전교생을요.

madmaiz_a_realistic_pencil_sketch_of_a_nervous_middle_school_bo_ff9ff6c1-c2c.png?type=w580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바로 당일 5교시에 전교 소지품 검사가 시행된 것이다. 예정대로 나는 공작왕 비디오를 선생님에게 빼앗겨서 주의를 들었고 담배와 본드를 소지하고 있던 녀석들은 대부분 검거되었다. 다음 주 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은 한 학생의 용감한 제보 덕분에 비뚤어진 학생들을 바로 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이 근신과 정학으로 줄어든 덕분이었을까? 당분간 나에 대한 폭력의 회수와 수위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만족했다. 잠시 동안은.

madmaiz_a_monochrome_drawing_of_a_school_assembly_principal_sta_a1499a21-da7.png?type=w580

언젠가부터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나를 찾았다. 마이즈가 누구냐? 너야?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너야? 그렇게 확인한 뒤에는 몽둥이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렸다. 왜 나를? 어쩌면 나의 제보 탓에 선생님들도 혼난 걸까? 폭력적인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나를 때렸고, 얌전한 선생님들 중에는 나를 무시하는 경우도 생겼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었다. 모두 그 제보자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를 향한 폭력의 수위는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럭비부 실에 끌려가서 얻어맞기도 했다. 교복에 자국이 묻으면 안 된다는 명목으로 때릴 때면 겉옷부터 벗으라고 했다. 갈수록 고통스럽고 끔찍한 날이 늘어갔다. 나의 소심한 복수는 역효과였던 것이다.

madmaiz_a_black_and_white_pencil_drawing_of_a_middle_school_boy_92b9b0fd-3b4.png?type=w580

필사적으로 찾아낸 생존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과 동료가 되는 것이다. 매번 놈들이 담배 피울 때 망을 봤는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함께 피운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했다. 내가 담배를 배우자 망을 보는 일은 다른 약한 아이의 역할이 되었다. 그가 빨간 콩이었다. (중딩 느와르) 그 이후로 놈들과 어울려 다니며 담배와 본드를 했다.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적어도 학폭은 피했다. 이미 내가 당해본 입장이기에 가해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몰래 타깃들인 빨간 콩이나 군이 와 친하게 지냈다. 가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으니까.

madmaiz_a_black_and_white_drawing_of_teenage_boys_smoking_behin_60fc5869-0a1.png?type=w580

그때쯤 만화 ‘카멜레온’을 접했다. 학교 폭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싸움을 잘하고 힘이 센 녀석이 아니다. 미친놈이다. 이 만화에 감동을 받은 나는 칼을 가지고 다니며 휘두르기 시작했다. (요구르트와 콩자반) 칼이 없으면 손에 집히는 돌이든 의자든 책상이든 미친 듯이 휘둘러 댔다. 유리창을 깨뜨려서 유리 조각으로 상대를 위협하기도 했다. 실제로 몇 명을 크게 다치게 한 뒤부터 일진들은 나를 괴롭히기보다 곁에 두려고 했다. 교장 선생님에게 전교 소지품 검사를 요청한 것도 미친놈이라는 일화로 알려졌다. 다시는 학폭의 타깃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madmaiz_a_dramatic_pencil_sketch_of_a_student_with_wild_eyes_sw_1d3d1924-54a.png?type=w580

고등학교에 간 뒤에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따돌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그룹을 찾아 친구부터 만들어야 했다.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룩백 온 기브업) 이는 이후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 들어가더라도 동일했다. 항상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기 위한 그룹을 찾는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변하지 못했을 게다. 나는 타고난 아웃사이더이고 내향인이니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항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어쩌면 이 시기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생존을 위한 나름의 전략으로 말이다.

keyword
이전 18화빈 둥지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