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언니

엄마보다 가까웠던 가정부 누나의 이야기

by 마이즈

“한번 불러볼까요?”

“언니! 언니이~!”

“한 번만 더!”

“언니이이이!”


특유의 BGM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이가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항상 세 번을 부르면 나오는 장면이다. 이후 눈물의 재회를 하게 된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된 장수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의 이야기이다. 중고교 시절을 지나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 이 방송을 볼 때면 찾고 싶은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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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다. 그런데 왜 언니라고 부르는 걸까? 주변 사람들의 말은 알아듣지만 아직 입이 트이지 않았을 때의 기억이다. 누나보다는 언니가 발음이 쉬워. 엄마랑 비슷하거든. 그러니까 나를 언니라고 불러봐. 언.니.언.니.언.니. 옳지 옳지 잘한다. 입이 트이는 순간부터 함께했기 때문일까? 나와 동생은 처음부터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가정부 누나였다.


처음으로 언니라는 말이 입에 담긴 순간을 기억한다. 어린 나는 온몸을 비틀며 문을 두드렸다. 쉬가 나올 것 같아 참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간단한 발음은 했던 것 같다. 당장 쌀 것 같은데 아무도 오지 않는 그 당황스러운 순간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생생하다. 누군가를 부르고 싶은데 의미 없는 소리만 나고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끝까지 참지 못했고 아래가 축축하며 따뜻해졌다. 그 순간 말 문이 트였다. 엉엉 울면서 언니~ 언니~를 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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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면 엄마 아빠보다 언니 방을 먼저 찾았다. 같이 만화를 보기도 했다. 특히 요술공주 밍키가 기억에 남는다. 만화를 시작하기 전에 같이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요술공주 밍키~ 밍키 밍키~ 평일 저녁 시간에 천사소녀 새롬이(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를 볼 때는 왠지 부끄러워져서 언니 등 뒤로 숨어서 안보는 척 힐끔거리며 TV를 보기도 했다. 뭐가 부끄러웠냐고? 이게 다 새롬이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자 언니가 말했다. 우리 마이즈 다 컸네. 부끄럽다면 내 뒤에 숨어서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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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영화를 좋아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종종 빌려 보곤 했다. 처음에는 같이 보기도 했는데, 어린 내가 물음표 살인마라서 그랬는지 언젠가부터 혼자 몰래 보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이가 보면 안 되는 작품들을 봐서였던 것 같다. 덕분에 처음으로 야한 영화를 보게 되기도 했다. 뭐 미취학 어린이가 그걸 본다고 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언니가 잠든 사이에 나의 인생 첫 공포영화 ‘악마의 손’을 만나게 되기도 했다. (나의 호러 연대기)


언니는 가족이 없는 고아였다. 우리가 유일한 가족이라고 했다. 10대 시절부터 쭉 우리 집에서 입주 가정부로 함께 지냈다. 결국 떠나게 된 이유는 결혼이었다. 우리 집 기사 아저씨와 연애를 하는 것 같았는데, 결혼도 그 분과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결혼식에 데리고 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언니가 원했던 걸까? 엄마와 아빠가 한 밤중에 거실에서 대화를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래도 오래 같이 살았는데, 작은 집이라도 하나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부모님은 언니에게 집을 해주셨을까? 혼수는 확실히 해주신 것 같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너무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언니가 떠나는 마지막 날도 눈물의 작별 같은 것은 없었다. 마치 시장을 다녀올 때처럼 평소처럼 그럼 나 갈게. 하고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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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매번 우리 대신 혼났다. 동생이 다리를 다쳤을 때에도. 내가 미용실 놀이를 한답시고 동생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에도. 내가 야한 영화를 보고 나서 ‘어른 남자랑 여자가 옷 벗고 뒹구는 건 왜 그런 거예요?’ 하는 질문을 했을 때에도. 엄마는 우리 대신 언니를 혼내셨다. 그 탓에 나는 항상 부채감을 갖게 되었다. 나 때문에 혼난 게 미안해서 더 말을 잘 들으려고 했고 하나라도 더 나누려고 했다. 기억 속의 언니는 밝게 웃고 있다. 화난 모습이나 우는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혼나서 주눅 든 모습은 떠오르지만.


“언니는 어떻게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거예요?”


막 걸음마를 뗐을 무렵. 엄마가 나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사건이다. 울며 불며 소리치고 찾아다니던 중에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은 10대 소녀를 발견하셨단다. 그 소녀가 나를 품에 안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며 사연을 물어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언니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엄마가 부러웠다. 나도 언니와의 첫 만남의 순간이 떠오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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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특별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내가 게임이라는 꿈을 갖게 된 순간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한 밤중의 놀이터에 나를 몰래 데리고 가주었고, 처음으로 오락실이라는 곳에 데려가 주었다. (창문, 놀이터 그리고 손가락들) 나에게 언니가 없었어도 게임을 접할 수 있었을까? 만약 운명적으로 게임을 향해 가더라도 훨씬 늦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게임의 신이 나에게 사명을 내려주기 위해 보낸 천사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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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언니가 한 번쯤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특별한 추억이었던 것과 달리 언니에게 우리 가족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던 것일까? 어른이 된 지금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 누나라고 호칭한다. 따라서 내 인생의 언니는 단 한 사람일 것이다. 벌써 노인이 되었을 테니 다시 볼 기회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언니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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