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던 어느 늦은 밤. 가정부 누나의 방에서 영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날도 베개를 들고 조용히 방 문을 열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가끔 같이 영화를 보다 잠들기도 했는데, 누나 역시 그런 시간을 좋아하는 듯했다. 당시의 6살짜리 어린아이인 나를 많이 예뻐했으니까.
TV에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고 누나는 아무래도 잠든 것 같았다. 그냥 나올까 싶었지만, 지금까지 보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에 흥미가 생겼다. 한글을 익히던 중인 나는 자막을 열심히 읽어가며 영화를 봤다.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훗날 유명해지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초기 영화, The Hand였다. 18세 관람 등급이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봐도 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아무런 제지 없이 보게 된 것이었다. 가정부 누나도 내가 영화를 본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것은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왠지 말하면 혼날 것 같은 큰 비밀.
영화에는 ‘손’이 나온다. 원한을 가진 채 죽은 사람의 손이 절단되어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내명도 ‘악마의 손’이다. 영화 속에서 이 손은 동상에 붙어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나 시체의 손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붙어서 타깃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손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장난감을 갖고 놀 때에도 주먹을 쥐고 있지 않은 인형은 멀리하게 되었고 외출할 때면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그중 괴물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니까. 손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어디든 숨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어두운 구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공포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면 안 되는 영화를 몰래 보면서 생긴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거의 반년 가까이 ‘손’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타인의 ‘손’을 두려워하던 시기. 그때의 오싹함과 불안감, 긴장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부터 다양한 공포물을 찾기 시작했다. 나만의 공포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소설을 통해 스티븐 킹에게 푹 빠졌고 인생 영화 이블 데드도 만났다. 이토 준지를 통해 공포가 아닌 기괴함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기도 했다. 무섭다는 작품은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고어함에 대한 내성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악마의 손’ 만큼의 공포를 주지는 못했다.
호러 게임에는 특별한 기대를 가졌다.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하는 형태이니까. 하지만 게임마저도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공포 영화를 볼 때에는 혼자 DVD방의 좁은 공간에 갇혀서 보거나 처음 가보는 모텔 같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불을 꺼두고 감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공포를 느끼고 싶었다.
공포에 대한 갈증은 결국 나를 체험으로 이끌었다. 처음 가위에 눌리던 날, ‘이대로 죽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심한 공포를 느끼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내가 찾던 감각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중 가장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웠기 때문에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각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가위에 눌리는 방법을 찾아 연구했고, 매번 이 체험을 즐겼다. 무엇이든 반복하다 보면 시들해지듯이 결국에는 가위눌림의 공포도 점점 약해져만 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더 큰 자극을 위해 폐가나 폐교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죽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있는 장소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갔다.
어느 폐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학교에 들어섰다. 운동장에 얽힌 괴담들을 떠올리며 오싹한 분위기를 즐겼다. 학교 벽을 따라 정문으로 이동했다. 창문이 깨진 곳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정문으로 들어섰다. 나무 바닥을 기대했지만, 바닥은 돌이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중간중간 교실을 둘러보았다. 1층을 다 돌아본 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들렀다. 공포 체험의 묘미는 평범한 교실이나 복도보다는 화장실이 한 단계 높으니까. 하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깨끗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이상했다.
다음은 특수 교실들이다. 이를 테면 과학실이나 음악실, 미술실 같은 곳들. 이 교실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이 날은 왜인지 교무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 교실은 종종 잠겨있기도 한데, 창문이나 화장실 상황으로 볼 때 오랫동안 관리가 안된 곳은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2층에 있는 교무실을 찾아 문을 열었다. 뻑뻑하긴 했지만 잠겨있지는 않았다.
교무실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때렸다. 전화벨 소리였다. 조용한 상황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니 귀가 먹먹했다. 갑자기 왜 전화가 울리지? 전화 선이 살아있었나?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에 누가 전화를 거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면 진짜 심령 현상인 걸까? 전화를 받을지 말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 사이 전화는 끊겼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왔다. 잠시 후 다시 한번 전화가 울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학교를 빠져나가야겠다.
교무실에서 뛰어나와 1층 정문을 향해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교문 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은 손전등으로 2층 복도를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몸을 낮췄다. 왜지? 여기는 주인 없는 폐교라고 했는데? 교실에도 교무실에도 비품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2층 복도에 몸을 낮춘 채 굳어있던 중, 차 한 대가 학교로 더 들어왔다. 고개를 내밀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1층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과하고 용서를 빌까 생각도 했지만, 왠지 그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걸려온 전화도 그렇고 여러 명이 들어온 것도 이상했다.
복도를 낮은 자세로 달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고 밖을 둘러보았다. 2층 화장실 창문 옆으로는 배관이 있었는데, 이를 타고 내려가면 될 것 같았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나가서 배관에 매달렸고 조심스럽게 1층까지 내려왔다. 영화라면 이쯤에서 갑자기 들키거나 하는 위기 상황이 되겠지.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나는 학교 담을 넘었고 이곳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손’ 이후 가장 짜릿한 공포였고 이 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서 나를 괴롭혔다.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상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악마의 손’도 폐교에서 겪은 일도 우스울 정도로 더욱 두렵고 끔찍한 일을 많이 겪었다. 이는 어떤 콘텐츠나 체험이 아닌 현실에서 자연스레 다가왔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공포가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 더 이상 공포를 찾아 헤매지 않게 되었다. 만들어진 공포는 진정한 두려움을 주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든 소설이든 게임이든 공포물을 선호한다. 어쩌면 과거 애타게 찾아다니던 마음의 잔재가 아닐까? 공포물을 즐길 때면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영화든, 소설이든, 게임이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