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죽음으로의 유혹을 외면하며
길 가다 보이는 1,000원짜리 핫도그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저걸 사 먹으면 며칠간 굶어야 할 텐데... 꾹 참고 공원 식수대에 가서 배를 채웠다.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은행에 갔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마실 수 있도록 놓인 믹스 커피. 괜히 번호표를 뽑고 쓸데없이 잔고 확인을 했다. 그냥 마시기에는 눈치가 보였으니까. 월세와 최소한의 교통비를 위해 주말에는 일용직을 전전했다. 40이 가까워오니 노가다 일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나 하나라면 굶는 것이 익숙하니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같이 지내고 있는 여자 친구와 고양이 네 마리였다. 어떻게든 돈을 벌긴 했지만 월세와 세금, 꼭 필요한 휴대폰 요금과 이자를 내기에도 부족했다. 빚은 점점 늘어갔다.
어머니에게도 생활비를 드리지 못했다. 몇 번이고 찾아오셨는데, 처음에는 화를 내셨고 울기도 하셨다. 아들이 변했다며 한 소리 했다. 니 엄마 놔두고 왜 회사를 먼저 챙기는데? 결국 사채업자가 집까지 찾아가는 일이 생겼다. 무슨 보호 법 때문에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머니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옷과 패물 등을 팔며 어떻게든 살아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원망하듯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보내지 못하게 되니 어머니 곁에 있던 외할아버지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결국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셔야만 했다. 나의 무능력 탓이었다. (어느 제주 소년의 일생)
주머니에 넣은 손엔 잡히는게 없는데,
어떻게 널 잡을 수가 있어.
내생활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데,
그래도 내 곁에 있어 주겠니.
예쁘고 좋은 것들, 재밌고 멋진 일들,
너도 분명히 하고 싶잖아.
내 곁에 있어주면 못하는 걸 알잖아.
그래도 내 곁에 있어 주겠니.
5년을 넘게 만난 여자 친구의 생일. 고작 만 원짜리 딸기 케이크 하나를 사줄 수 없는 스스로가 비참했다. 평소에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2AM의 ‘이 노래’를 들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져온 책임에 대한 강박은 나의 중심이었다. 이를 지킬 수 없게 된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악의의 찬 게시글 편집 사건과 이로 인한 마녀 사냥을 당한 시점에서 동료들이 나를 고소했다. (아홉 번의 실수) 이후 노무사를 대동하고 고용 노동부에서 만나게 되었다. 동료들은 돈을 요구했다. 밀린 급여 명목이었다. 다 같이 합의도 했고, 여러분이 직접 휴직 계도 내셨잖아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노무사 님이 나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건에서는 대표 직함을 달고 있으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제가 많이 경험해 봐서 압니다. 여기는 노동부잖아요. 조사관 입장에서 대표는 그냥 나쁜 놈이에요. 적당히 인정하는 것으로 하고 합의로 진행하시지요. 어쩔 수 없었다. 조사관도 나를 다그쳤고 그 안의 모든 사람에게 나는 악당이었다. 심지어 노무사와 조사관은 선후배 관계라고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진술서에 도장을 찍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했지만 이 부분 역시 큰 실수였다. 이 날의 진술서는 오래도록 나를 괴롭히게 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조사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 8시에 방문하라고 하셨다. 어라? 업무 끝난 시간 아닌가? 문은 닫혀 있었지만 내부에는 여전히 여러 조사관 님들이 업무를 진행하고 계셨다. 제가 오래 일을 해왔는데, 이 사건은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아무 방해가 없는 곳에서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상황을 다시 말해주세요. 오랜 시간 내 이야기를 들은 조사관님은 한 마디 했다. 힘드시겠어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말이 이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조사관들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많이 억울하실 것 같은데, 지금 말한 내용 자료 정리할 수 있지요? 메신저 대화라도 좋으니 정리해서 다시 가져오세요. 늦으시면 안 됩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꼼꼼하게 자료를 정리해서 고용 노동부를 찾아갔다. 해당 조사관님이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이동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제발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고 하루 종일 민원실에 앉아있기도 했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쓴 진술서는 법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휴직으로 묶여 있던 시기의 10여 명의 4대 보험료도 한 번에 청구되었고 동료들은 체당금을 신청했다. 그에 대한 구상권은 모두 나에게 청구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지원 사업도 문제가 된다. 사업 계획서에 있던 인력이 빠진 셈이니까. 급하게 사람을 구해 메꿔야 하는 상황이지만 돈이 없었다. 광주 원룸과 사무실 등을 다 빼고 받은 보증금으로 보험료부터 메꾸고 그래도 부족해서 아파트 담보로 받은 대출을 2 금융권 3 금융권으로 돌렸다. 이 와중에 신용 보증 기금에서 자금 회수 요청이 들어왔다. 급하게 돈을 구하다 보니 대출 사기까지 당했고 덕분에 부지점장님이 만들어주셨던 마이너스 통장도 갚아야 했다. 이미 5,000만 원 정도를 쓴 상태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억 원의 빚이 생겨버렸다. 어떻게든 압류당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 결국 사채까지 써야만 했다. 아무도 나를 돕지 않았고 그동안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조차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등을 돌렸다. 약해진 틈을 타서 다양한 사기꾼들에게서 손을 잡자는 유혹이 들어왔다. (내려가는 삶의 경사면) 조금만 양심을 버리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나 있었다. 그들에게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 중 누구의 손도 잡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게임을 더럽히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피해를 늘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지원 사업만큼이라도 잘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해 광주의 게임 개발자 양성 과정에 강사로 자원했다. 얼마 되지 않는 강의료가 목적이 아니었다. 직접 가르친 학생들을 직원으로 뽑아 남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기관에서 하는 교육의 졸업생을 채용하면 조금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 내 수업을 들은 학생 중 희망자 3명을 뽑아 프로그램, 그래픽을 담당하게 했다.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로 인해 살아날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은 잔혹하다. 우리를 지원해 주던 기관에 누군가가 투서를 넣었다. 저런 악당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기관은 투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을 해야 한다. 덕분에 진행 중인 사업 중 일부가 철회되거나 자금 회수 요청이 들어오게 되었고 빚이 점점 더 쌓여만 갔다. 투서를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돈을 벌지 못하게 막으면서 돈을 내놓으라는 것은 무슨 심보였을까? 이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았던 TS군마저 마음을 돌렸고 PD님도 점잖게 말하며 떠나셨다. 떠날 때에는 끝까지 힘내라고 응원하더니, 이 두 분도 옛 동료들에게 합류하면서 나를 고소하는데 동참했다. 마지막까지 믿은 두 사람마저. 결국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나를 믿어주는 것은 5년을 함께 한 연인과 오랫동안 나를 본 소수의 지인들, 그리고 10년 넘게 운영하던 블로그 이웃 분들이었다. 어머니조차 니가 못나서, 니가 일을 저질러서, 니가 엄마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해서, 이렇게 벌을 받는 거라며 나를 탓했다. 동생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마음 둘 곳이 없었기에 블로그에 서로 이웃 공개로 하소연을 자주 올렸다. 그때 동료들이 남긴 댓글은 심적으로도 힘이 되었으며, 추후 재판에서도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어느 시기에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증명이 되었으니까. 타인이 쓴 댓글을 내가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 블로그를 통해 얻은 인연들을 항상 감사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이다.
결국 버텨내지 못한 나는 결국 자살을 기도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의 한 마디로 인해 나는 다시 부활했다. (아버지 : 생명의 은인) 일단 병원부터 가라. 네 마음이 정상이 아닐 거다. 그리고 변호사 좀 알아봐. 정신과 병원비와 변호사 비용은 내가 줄게. 너를 낳은 책임은 져야지. 역시 아버지 다웠다. 빚을 갚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일어서는 것은 스스로 해야 했다. 하지만 병원비와 변호사 비용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여러 정신과를 전전했지만, 대부분 의미가 없었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 하나하나 얼마나 대단한 사연을 갖고 있겠는가.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적당히 약 처방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패치 아담스가 떠올랐다. 서 너 군데 병원을 전전하던 중 연희동에 있는 한 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이곳의 선생님은 달랐다.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셨고 다음 방문 시에도 내용의 진전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 주셨다.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병원을 다녔다. 서로 많이 익숙해졌을 때, 선생님이 입원을 권유하셨다. 그리고 부모님과 연인 등 가까운 사람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는지 물으셨다. 지금 마음 상황이 강제 입원을 시켜야 할 정도라고 했다. 지금 그럴 수 없는 것 잘 아시잖아요. 선생님은 나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공문 같은 게 있었는데, 꼭 품에 가지고 다니다가 상황이 오면 아무 병원이나 가서 이 서류를 주라고 하셨다. 경찰서도 괜찮다면서. 내용을 읽어보니 긴급하게 입원 보호 조치 해야 하는 환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니에요. 괜찮을 거예요. 선생님 덕분에. 더 이상 자살 생각은 하지 않거든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금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맞았다.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의 교대 역. 몇 군데 변호사 사무실에서 거절당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직원들이 대표를 고소한 건은 승소하기 힘들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곳은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 사건 안 받아!’ 라며 쫓아내기도 했다. 편견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구나. 전철을 타기 위해 교대 역으로 가다가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이 상태로 계단을 내려가면 위험할 것 같아 화단에 잠시 앉았다. 그때부터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몸이 추워져서 잔뜩 웅크렸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계속 맴돌았다. 죽어야 해. 죽어야만 해. 지금 당장 움직여. 귀에서도 계속 한 가지 소리가 맴돌았다. 죽어. 죽어. 죽어. 이전에 자살을 기도할 때는 제대로 머리로 생각하고 계획을 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아니었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 이외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몸을 웅크리고 힘을 주었다. 붙잡아야 했다. 힘이 빠지는 순간 내 몸이 스스로 죽음을 향해 움직일 것 같았다. 마치 죽으려는 나의 의지를 억지로 붙잡는 느낌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죽음의 소리가 줄어들기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교대 역 앞 화단에 앉은 시각은 낮 12시경이었는데, 어느새 오후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벌써 9시간이라니. 전철역 바로 앞이라서 수많은 사람이 나를 지나쳤을 텐데, 단 한 사람도 말을 걸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휴대폰에는 여전히 독촉 메시지만 와 있었다.
이후 자살에 대한 책을 많이 접했고 관련된 영화도 관람했다. 버티기 위해서였다. 주로 죽음 자체보다 그 이후의 남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은 책임감이니까. 남은 사람들에게 무책임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죽음의 충동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계획 자살이 아닌 충동 자살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블로그에도 종종 서로 이웃 공개로 자살에 대한 글을 올렸다. 보는 분들이 불편할 것 같다는 걱정은 했지만, 그래도 나를 믿고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희망찬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자기 계발 모임도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나가기 시작한 꿈이사는 벌써 10년째 인연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내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금전 적인 부분. 매달 수백만 원의 이자를 내야 했기에 밥 한 끼 커피 한잔도 아껴야 했다. 두 번째는 법률 적인 부분. 변호사를 구해야 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느껴졌다. 매번 자존감이 깎이는 경험이었다. 세 번째는 생명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머리로도 감정적인 충동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죽음을 원했다. 그동안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바둥거리는 동안 우연히 수상한 투자가를 한 명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기꾼들과 달리 그의 방식은 납득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능력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 내기만 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나의 자존감을 계속해서 높여주었다. 본인을 위한 일이기도 했으니 그랬겠지. 하지만 덕분에 조금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