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과 아버지는 둘 다 음치였다. 평생 단 한 곡만을 열심히 연습했고 어디를 가든 노래를 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 매번 같은 곡을 불렀다. 음악을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선대의 음치는 자식들에게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나 보다. 6살 때부터 노래 선생님이 집에 오셨다. 어디 대학 교수라고 했다. 이를 통해 어린이 동요 음반에 참여할 수준이 되었고 KBS 어린이 합창단에도 들어갔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 노래를 배우는 과정에서 피아노도 시작했다. 그다음은 플루트이었고, 마지막이 바이올린이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도 음악 소양을 키우려고 노력하셨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어머니가 꿈꾸던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니가 플루트를, 동생이 피아노를,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가족 합주를 했다. 아버지는 트라이앵글을 했다. 음치에 박치인 아버지로서는 최선이었으리라.
아들의 음치 유전자를 극복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부단히 노력하셨지만,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 음악에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기 교육이 겹쳐지며 이런 상황이 발현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만화 주제가를 들으면 그대로 피아노 악보를 그릴 수 있었고, 그 악보에 맞추어 바이올린으로 덧댄 화음을 만들 수 있었다. 제일 처음 그린 악보는 ‘천하무적 멍멍 기사’라는 만화 주제가였다. 당시 여러 만화 곡이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마무리되는 형태였는데,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지막 구간을 직접 지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클래식에 빠졌는데, 악기별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슈베르트의 무슨 교향곡을 악보로 옮겼는데, 마무리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 나이의 끈기가 그 정도지 뭐. 다른 것은 몰라도 청음 능력 하나만큼은 좋았던 것 같다. 선생님도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나는 음악의 재능을 버리기로 했다. 게임을 만들려면 음악보다 그림과 글이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게임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분야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무지여.) 의도적으로 음악에 관련된 일을 멀리 했다. 더 이상 악기 연주도, 악보를 쓰지도 않았다. 심지어 음악 감상도 피했다. 그 시간에 만화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예쁜 여자 선생님에게 바이올린 레슨은 계속 받고 있었는데, 연습도 안 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이 울음을 터뜨리며 더 이상 못 가르치겠다고 그만두셨던 기억이 난다. 대체 얼마나 심했던 걸까?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이 가끔 떠오르면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그렇게 음악을 멀리한 채 그림에 전념했다. (룩백 온 기브업) 하지만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문화에서 음악을 떼어낼 수는 없는 법이지 않나. 무엇보다 나는 오타쿠였다. *젠트라디 놈들이 데카르차!라고 외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에 나오는 외계인) 일하던 매장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 음반도 팔기 시작하면서 다시 음악 감상을 시작했다. (으뜸) 예전처럼 음악을 듣자마자 악보가 그려지지는 않았다. 안심했다. 대신 음악을 들으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장면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게 게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철없는 생각일 뿐이다. 실제 그렇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음악에 다시 불타오른 것은 Rock 때문이었다. 한국에 노래방 문화가 생기면서 종종 스트레스를 해소하러 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Rock이었다. 김종서와 김경호를 좋아했고, 해외 그룹은 스트라이퍼에 꽂혔다. 어린 시절 동요를 부르는 형태의 과외를 받고 어린이 합창단에서 활동해 온 탓에 내가 부르는 노래는 여전히 동요 같이 솔직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이었다. 좀 더 잘 부르고 싶다는 생각에 락 타운이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더 정확히는 좀 더 잘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무료 강좌에 등록하고 열심히 따라 부른 끝에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음역대가 높아 웬만한 여성 가수의 애니메이션 곡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며 언젠가부터 록 보다 애니메이션 노래를 부르러 다녔다. 역시 오타쿠다.
록이 시들해질 무렵, 춤을 만났다. 오락실 댄스 게임에서 시작한 춤으로의 전환은 음악을 다루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었다. (펌피: 망가질 용기) 음악의 흐름에 덧대는 연주와 노래, 그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감상과는 또 달랐다. 음악 위에서 날뛰는 느낌이었다. 춤에 푹 빠져들게 되었고 안무를 짜고 공연을 했다. (음악과 무대) 누군가에게 춤을 가르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자칫하면 게임을 버릴 수준까지 갔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신을 차렸다. 음악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멀어지던 게임을 붙잡고 춤은 그만두기로 했다.
게임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오타쿠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노래방에도 일본 곡들이 많이 업데이트되었는데, 덕분에 다시 음악을 듣게 되었다. 오타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항상 나에게 요구하는 곡들이 있었다. 음역대가 넓어 여성 가수의 곡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주로 아이돌 마스터나 러브 라이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놓고 다들 옆에서 춤을 췄다. 남자들이 우루루 노래방에 들어가서 미소녀 아이돌 안무를 하는 꼴이란. 심지어 귀여운 척까지 하다니, 역시 오타쿠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도 크게 할 말은 없다. 적어도 하루히 댄스는 같이 춰야만 했으니까. 어? 하루히 댄스를 모른다고? 그 시절 오타쿠가 아니시군요. (N사 판타지아) 혼자 노래방에 가서는 주로 방과 후 티타임이나 사운드 호라이즌을 불렀다. May’n의 곡이 내 음역대와 가장 잘 맞았기에 매번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쉐릴 메들리를 부르곤 했다. 아, 오타쿠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달라. 당연히 첫 곡은 언제나 ‘잔혹한 천사의 태제’ 였으니까. 사운드 호라이즌이나 May’n의 내한 콘서트는 여러 번 다녀왔다. 하츠네 미쿠 콘서트 뷰잉도 두 번 정도 다녀왔다. 이렇게 마음껏 음악을 즐겼지만, 이제 더 이상 재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마음 놓고 편히 즐길 수 있겠구나.
서울 재즈 페스티벌 2025.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악 축제였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돌아보았는데, 그중 두 개의 무대가 나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첫 번째는 B.E.A.T 트리오였는데, 세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딴 그룹이었다. 벤조 연주자인 Bela Fleck, 하프 연주자인 Edmar Castaneda, 드럼 연주자인 Antonio sanchez. 에드머는 나와 동갑이었고, 안토니오는 50대, 벨라플렉은 60대였다. 나이도 국적도 각각인 세 사람. 심지어 악기의 조합도 신선했는데, 이들의 연주는 영혼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이 음악에 심취해서 홀린 듯 연주하는 모습부터 압권이었다. 더위도 잊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타워 오브 파워. 무려 1968년에 결성된 57년 된 그룹이고 현재도 원년 멤버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노장의 숙련도와 서로에게 맞춘 합주가 감동적이었다. 나도 언젠가 이 업계에서 저런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저런 밴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연을 관람하며 든 생각은 발칙하게도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이올린 합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세 번 있다. 그중 한 번은 TV에 나왔고 두 번은 무대 공연이었다.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불편했던 기억이다. 음이 잘못 나가도 안 되고 활의 움직임도 일치해야 하므로 주변을 계속 신경 써야 했다. 반면 춤을 추며 선 무대는 수십 번쯤 되었는데, 압박감 보다 자유로움이 더 컸다. 동작이 조금 틀려도 다른 멤버들이 맞춰 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관객들도 얼마든지 허용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선을 맞추는 군무 구간만 제외하면 훨씬 자유로웠다. 재즈를 소재로 한 게임을 해보면 항상 자유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다른 장르가 아닌 재즈에서는 이런 자유로움이 허용되는 것일까? 그래서 이번 공연이 그렇게 더 좋았던 걸까?
나에게 음악은 없애야 할 재능이었다. 이제 와서 되살릴 필요는 없지만, 취미로 이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춤을 출 수 있는 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노래를 부르기도 힘들다. 코로나에 걸린 후유증 탓이다. 이제는 한 곡만 불러도 호흡과 목이 힘들어졌다. 무슨 인어 공주도 아니고 목소리를 빼앗기고 그러냐. 음악 감상도 온전히 하기 힘들다. 나도 모르게 감상이 아닌 분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에 멈춘 연주는, 적어도 바이올린만큼은 다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재능을 무기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위해 이처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재능이 없다며 좌절하는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재능을 핑계로 멈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