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꾸던 초보 댄서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힘이 들어간 동작이었음에도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물결 위에서 파도를 타는 것처럼. 음악이 끝나는 순간, 피로감이 몰려들어 바닥에 대자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옆을 바라보니 다른 팀원들도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잔디밭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로등을 지나 반짝이는 별들이 마치 관객 같았다. 차가운 새벽 공기는 온 몸에 흐르는 땀 방울을 달래 주었다.
“벌써 3시가 넘었네. 저는 먼저 가야겠어요.”
“저도 갈게요. 내일 봐요.”
언제나 그렇듯 하나 둘 자리를 떠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나와 도엽 뿐이다. 먼저 일어서 있던 도엽의 손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리의 야식은 항상 같았다. 도시락 사발면 하나에 삼각 김밥 두개. 편의점 앞 야외 탁자에 자리를 잡고 테이블을 닦고 있으면 도엽이는 항상 먹을 것을 사서 물을 받아온다. 오늘 따라 조금 늦는다 싶었는데, 녀석의 손에는 도시락 사발면이 아닌 왕뚜껑 사발면이 두개나 들려 있었다.
“뭐야? 오늘은 돈이 많은 가봐?”
“월급 받았거든요. 만두도 전자 레인지에 데우고 있어요.”
모처럼의 만찬이다. 뚜껑에 만두를 놓고 후후 불면서 라면을 먹었다.
“이번 무대 말인데… 우리가 연습한 곡 만으로 한 시간을 채우기는 힘들어.”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들도 묶어서 한두 곡 주는 건 어때?”
“엽기면 OK. 스킬이면 안될 것 같아요.”
“스킬도 걔들이 나보다는 잘해.”
“에이 형. 자꾸 그러지 마요.”
알고 있었다. 팀 내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나라는 것을. 그럼에도 부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는 유일한 성인이기 때문이었다. 맴버 전원이 중고등학교 중퇴자인 모임에 유일한 대학생. 그래서였을까? 내가 관리와 홍보를 하게 되면서부터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심지어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이 팀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춤 실력이 아닌 나이였다. 시간이 되면 누구나 동등하게 더해지는 것. 따라서 이 팀에서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차라리 형이 랩이나 노래 하나 하는 건 어때요?”
“야, 미쳤냐. 춤 보러 온 사람들이 노래를 왜 들어? 게다가 가수도 아니고.”
“그럼 대구 OPT팀 부를까요? 게스트로 서너 곡 해주면 될 것 같은데.”
대구 팀 이야기가 나오자 불편해졌다. 몇 달 전인가 원정 배틀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댄스 배틀은 양 팀에서 한 명씩, 혹은 한 유닛씩 번갈아가며 각자의 역량을 펼치게 된다. 흥미롭게 진행되던 중 상대 팀의 부팀장이 나섰다. 현란한 브레이킹을 선보인 그의 춤은 갤러리들에게 환호를 받을 뿐 아니라 댄서들마저도 감탄할 수준이었다. 사람들의 기대가 잔뜩 올라간 상황에서 부팀장인 내가 나서야 했다. 브레이킹은 기초 수준이었고, 어떤 안무로도 앞선 다른 팀원들만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춤을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환호하던 갤러리들은 웅성 거렸고 그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꽂혔다. '저 사람 왜 나온거야?'
“알았어. 대구라서 올지는 모르겠지만, 연락은 해보자.”
“너무 무리라면 이번 공연은 패스해도 되니 스트레스 받지는 마세요.”
“패스는 무슨. 곧 대학 축제 기간이야. 9월에는 거리 축제도 한다더라. 지금은 공연을 하나라도 더 잡아야 이어갈 수 있어.”
“그건 형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그보다 형 혹시, 다른 곡 더 해볼래요? 우리 둘이 한 곡 정도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제일 잘하는 너랑 제일 못하는 나랑 둘이서만 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연습량은 우리 둘이 제일 많으니 맞출 수 있지 않을까요?”
“좋게 봐주는 건 고마운데… 그리고보니 너는 왜 나를 스카우트 한거야?”
질문과 동시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쾌감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게임 덕분이었다. 한 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DDR과 펌프 잇 업. 음악에 맞춰 발을 움직이는 것에 푹 빠진 나는 퍼포먼스 팀에 들어가서 대회를 나가거나 공연에 초대 받기도 했다. 어느날인가 평소에 가지 않던 동네의 오락실에서 펌프 잇업을 하고 나왔는데, 그때 따라 나온 사람이 도엽이었다. 그의 권유로 발판에 얽매이지 않는 춤을 경험했고 그 때부터 푹 빠지게 되며 그의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멋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춤을 좀 추는 사람들을 보면, 갤러리들한테 멋져 보이고 자신을 뽐내고 싶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제 주변에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형은 즐기고 좋아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춤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발판 위에서 시작했고, 게임이기에 그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도엽과의 만남 이후 이를 깨고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춤에는 많은 제약이 붙는다. 공연 댄스에는 당연히 안무가 존재한다. 박자는 물론이고 선과 동선도 맞춰야 한다. 곡 분위기에 맞지 않는 장르의 춤을 추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관객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곡의 구성이나 공연의 구성, 무대 배치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는 순간에는 자유가 느껴진다. 어째서일까? 어린 시절부터 많은 압박을 받으며 살아온 내가 유일하게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순간. 그것이 나에게는 춤추는 시간이었다.
도엽의 말을 들으며 감사함과 더불어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중학교 시절부터 춤을 춰온 사람들 수준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현재는 팀내의 유일한 성인이지만, 내년에 도엽이가 성인이 되면 팀 내에서 내 가치도 사라질 것이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부터 춤을 췄더라면 계속 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나의 꿈은 댄서가 아니니까.
결국 춤은 잠시 동안 나를 머물게 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뿐. 내 삶에 더 이상 깊숙히 들어오지는 못할것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춤을 추면 출수록 한계와 함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20년쯤 지난 언젠가 나는 이 시간을 추억하겠지? 도서관 공원에서의 새벽 연습.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이야기하던 시간. 춤을 통해 느끼는 자유. 무대에서 받던 환호. 꿈 이외에 열정을 담을 수 있던 단 하나의 행위. 인생에서 유일하게 일탈할 수 있던 순간들.
편의점을 벗어나 다시 도서관 공원을 향해 걸었다. 하늘의 별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이 관객이라면, 여기가 무대라면,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관객은 무엇을 바랄까?
“그래. 둘이서 한 곡 더 하자. 기왕이면 창작 안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