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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즈 Oct 29. 2024

책임감, 강박에서 욕망으로

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

중학교 2학년.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빚을 남긴 채 사라지셨고 어머니는 병을 얻었다. 유일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내가 빚을 갚으면서 동생과 어머니를 돌봐야만 했다. 학교의 출석 일수는 부족해져갔고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십 수년이 지나 성인이 되어 과거 이야기를 하면 다들 하나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도망치지 않았어?’


그럴 때면 중2병이나 게임 덕분이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책임에 대한 강박이다. 조금 더 과거로 가서 아버지의 사업이 잘 나가던 시절. 해외 출장을 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러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잘 지키고 있으라며, 아버지가 집을 비우면 네가 가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작 대여섯 살 밖에 안된 아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기뻤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마치 자랑하듯 글짓기 시간에 적어 냈고 어린이 수필집에 들어가 책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때부터 책임이라는 단어는 나의 주박이 된 것 같다.

이 책에서도 했던 이야기.

대학에서는 게임 동아리를 만들었고, 사업도 했다. 무엇을 하든 끈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것도 모두 책임에 대한 강박의 결과였다. 한번 입 밖에 꺼낸 말은 지켜야만 했고 그것은 될 때까지 반복하는 근성의 형태로 남들에게 보여 졌다. 내가 한 말은 책임져야 했으니까. 학업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자격증이나 대외 활동에 있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보였다. 심지어 연애에 있어서도 그랬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 강박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책임에 대한 강박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책임에 대한 강박은 종종 나를 힘든 상황으로 몰아 넣었다. 사업을 할 때도 그랬고 프로젝트를 리드할 때도 그랬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모두가 함께 나누었지만,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책임지는 것은 대부분 나 혼자였다.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큰 빚이 생기기도 하고 마녀 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의 고통이 수없이 나를 할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책임감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이후 계속해서 나를 움직이게 해준 마음이었으니까,

상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한 모든 행동이 개개인의 주체성을 막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말과 약속에 책임지려고 했고 상대를 지켜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주변에는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으로 비춰졌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연애를 한 뒤에 깨달았다. 내가 그녀들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가로 막고 있었음을. 나의 강박이 자신 뿐만이 아닌 상대방에게까지 안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녀들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책임감을 발현하기 위한 대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연인들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자기 혐오까지 느꼈다. 그 이후부터는 연인이 의지하는 존재보다는 연인을 응원하는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좋은 사랑의 모습일 것 같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심지어 챗GPT에게 인간이 느끼는 욕망에 대해 물어보고 하나하나 비교해보기까지 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와 명예, 쾌락, 안정, 지식 등 그 어느 것에도 해당 되지 않았다. 오랜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명확한 욕망은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이 아닐까? 평생 동안 강박으로 작동해왔고 이를 통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를 욕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강박을 인정하고 욕망으로 전환한다면 조금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지우고 싶어만 했던 책임감이라는 녀석을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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