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
중학교 2학년.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빚을 남긴 채 사라지셨고 어머니는 병을 얻었다. 유일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내가 빚을 갚으면서 동생과 어머니를 돌봐야만 했다. 학교의 출석 일수는 부족해져갔고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십 수년이 지나 성인이 되어 과거 이야기를 하면 다들 하나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도망치지 않았어?’
그럴 때면 중2병이나 게임 덕분이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책임에 대한 강박이다. 조금 더 과거로 가서 아버지의 사업이 잘 나가던 시절. 해외 출장을 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러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잘 지키고 있으라며, 아버지가 집을 비우면 네가 가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작 대여섯 살 밖에 안된 아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기뻤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마치 자랑하듯 글짓기 시간에 적어 냈고 어린이 수필집에 들어가 책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때부터 책임이라는 단어는 나의 주박이 된 것 같다.
대학에서는 게임 동아리를 만들었고, 사업도 했다. 무엇을 하든 끈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것도 모두 책임에 대한 강박의 결과였다. 한번 입 밖에 꺼낸 말은 지켜야만 했고 그것은 될 때까지 반복하는 근성의 형태로 남들에게 보여 졌다. 내가 한 말은 책임져야 했으니까. 학업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자격증이나 대외 활동에 있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보였다. 심지어 연애에 있어서도 그랬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 강박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책임에 대한 강박은 종종 나를 힘든 상황으로 몰아 넣었다. 사업을 할 때도 그랬고 프로젝트를 리드할 때도 그랬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모두가 함께 나누었지만,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책임지는 것은 대부분 나 혼자였다.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큰 빚이 생기기도 하고 마녀 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의 고통이 수없이 나를 할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책임감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이후 계속해서 나를 움직이게 해준 마음이었으니까,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말과 약속에 책임지려고 했고 상대를 지켜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주변에는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으로 비춰졌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연애를 한 뒤에 깨달았다. 내가 그녀들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가로 막고 있었음을. 나의 강박이 자신 뿐만이 아닌 상대방에게까지 안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녀들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책임감을 발현하기 위한 대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연인들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자기 혐오까지 느꼈다. 그 이후부터는 연인이 의지하는 존재보다는 연인을 응원하는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심지어 챗GPT에게 인간이 느끼는 욕망에 대해 물어보고 하나하나 비교해보기까지 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와 명예, 쾌락, 안정, 지식 등 그 어느 것에도 해당 되지 않았다. 오랜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명확한 욕망은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이 아닐까? 평생 동안 강박으로 작동해왔고 이를 통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를 욕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강박을 인정하고 욕망으로 전환한다면 조금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지우고 싶어만 했던 책임감이라는 녀석을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