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오타쿠 인증하게 된 어느 해의 컨퍼런스
현재 나의 정체성 중 하나는 오타쿠이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서브 컬처의 흐름을 잘 이해하는 게임 기획자, 혹은 디렉터로 통한다. 혹자는 전문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정도는 아니다. 20년간 운영 중인 블로그에 매년 수십 개의 애니메이션과 만화 리뷰를 업로드한다. 꾸준히 감상하는 이런 모습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중학교 시절부터 애니메이션 클럽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오타쿠는 불법입니까) 사람들에게 오타쿠 게임 기획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기업인 N사를 다니던 도중이다. 그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번 사내 컨퍼런스 말인데, 본부마다 최소 3명씩은 무조건 발표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누가 할래?”
이런 상황에서는 대기업도 마찬가지. 서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도는 중 가장 어린 프로그래머가 손을 들었다. 제가 스케일 폼 발표를 하겠습니다. 오 멋져. 그럼 우리 본부에는 개발팀이 두 개니까 각각 하나씩만 더 하자. 1팀에서는 누가 할래? 이럴 때는 평소에 튀는 행동을 하던 것이 독이 된다.
“마이즈 시켜보면 어때요?”
의외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저 까불이를 시켰다가 본부 이미지가 엉망이 되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빠져나갈 방법이 떠올랐다. 본부 이미지가 나빠질 황당한 이야기를 하자. 그럼 다른 사람을 시키겠지.
“아, 아쉽네요. 저 시키시면 할 게 있었는데.”
“그래? 뭐 하려고?”
“제가 오타쿠잖아요. 덕질 발표라도?”
사람들의 헉하는 반응에 안심했다. 좋아. 일단 나는 패스다. 설마 오타쿠 발표를 시키겠어? 하지만 본부장님의 반응은 예상과 너무 달랐다. 야, 그거 재미있겠는데? 쟤 시켜! 그렇게 사내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오타쿠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다.
며칠 뒤, 문제가 커졌다. 이번 개발자 컨퍼런스는 공개 세션으로 진행한다는 공지가 내려온 것이다. 루리웹, 인벤, 게임메카, 디스이즈게임 등. 주요 게임 웹진의 기자들도 부른다고 한다. 발표를 피하려고 오타쿠 이야기를 했는데, 전국에 덕후 인증을 하게 될 상황이었다. 난감했다. 지금까지 게임기획자 모임 등에서 소규모 세미나 발표는 해봤지만, 이런 큰 무대는 경험이 없었다. 2개월 남은 시점부터 발표 준비를 시작했다. 오타쿠스러우면서도 적당히 진지하게. 그리고 욕먹지 않게.
1차 PT를 완성한 뒤, 팀장님을 포함해서 10명 정도를 지하 회의실에 소집했다. 그리고 발표 리허설을 진행했다. 본부의 위상이 걸려있기도 해서인지 모두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온 피드백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발표를 빙자한 개인 덕질을 하는 느낌인데?] [마이너 한 작품이 너무 많아.] [전문 용어(?)가 많아서 못 알아듣겠어.] 등이었다. 그야 어쩔 수 없었다. 특정 작품만 언급하기에는 아쉬웠으니까. 애니메이션마다 배울 점이 있고 특징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나열만 하다가 끝나는 느낌도 있었다. 특히 에반게리온과 지옥소녀에 너무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 PT는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발표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2차 PT는 일본어 스터디 멤버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번에는 오타쿠로써의 시선을 최대한 뺐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과 사회학으로 도배했다. 작품이 가져온 사회적인 변화나 캐릭터 분석에서의 심리학 이론 적용 등.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발표를 다 끝내고 나니 4시간이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나온 피드백은... [오타쿠 강연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심리학 수업을 들은 것 같다.] [내용 중 나온 이론이나 실험을 차라리 나눠서 한 학기 수업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 [등장하는 작품들이 너무 누구나 알만한 것들이라서 오타쿠 강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등이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이 PT도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제 발표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발표자료를 또다시 새로 만들었다.
3차 PT는 2차 PT에서 시간을 대폭 줄였고 1차 PT에 다룬 작품 중 지표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내용만을 추렸다. 이번에는 게임 스쿨과 IT 전문학교 교수님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습할 수 있었다. 나름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질문이 뼈아팠다. ‘그런데, 이게 게임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애니메이션과 오타쿠 키워드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이 발표가 게임 회사의 세미나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급하게 상업적, 산업적인 부분을 더하고 게임과 연관된 내용을 추가했다. 그리고 ‘오타쿠에 대한 편견’이라는 키워드를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이었다. 살면서 세미나 발표에 이렇게 많은 연습을 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컨퍼런스 세션이 발표되자 SNS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오타쿠, 편견 속 감춰진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뿐 아니라 오타쿠 사이트에서도 언급되었다. 대기업에서 하는 개발자 세미나에서 오타쿠를 다룬다고? 심지어 발표자 직급이 책임 연구원? 반응을 보자 부담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같은 시간 대에 편성된 두 세션이 모두 유명한 분 들이라서 위안이 되었다. 저분들 강연을 안 듣고 이쪽으로 올리 없잖아? 다들 기사로 보겠지.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막상 당일이 되어 발표장이 있는 건물로 이동했는데, 복도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있었다. 강연장 안에는 자리가 부족해서 바닥에 앉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그 안에 우리 팀원들이 있었는데, 모두 놀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 났다!
발표하는 동안 앞자리에 앉은 기자 분들은 계속 사진을 찍으셨고 뒤에는 영상을 찍는 카메라도 서 있었다. 긴장한 탓에 자꾸 말이 빨라졌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수없이 연습을 했으니 그냥 튀어나오는 대로 뱉자. 그러던 중, PPT 화면에 나의 당시 연인의 모습이 떴다. 발표 중에 죄송합니다만, 제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그 한 마디에 강연장이 빵 터졌다. 사람들이 폭소하는 순간 나의 긴장도 같이 풀어졌다. 역시 사랑은 세상을 구한다. 덕분에 후반부는 여유를 찾고 잘 진행할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갑자기 몰려드는 사람들과 명함 교환을 했고, 이렇게 오타쿠 업계(?)에 나름 알려진 분들과의 인맥이 생기게 되었다. 전국에 인증한 나의 연인은 러브플러스의 코바야카와 린코였다.
다음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사들을 살펴봤다. 유명한 웹진 모두에서 기사가 떴는데, 약간씩 내용의 방향성이 달랐다. 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댓글을 살폈는데, 그중 나를 욕하는 내용은 없었다. 다만 서로 오타쿠가 좋다 나쁘다, 편견이 있네 없네 하며 싸우는 것 같았다. 강연의 의도는 편견을 없애자였는데, 오히려 싸움을 붙인 격이네. 다행인 것은 역시 사람들이 나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대중들에게는 그랬다.
이 날의 강연 이후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아닌 업계의 윗 분들 사이에서 오타쿠 전문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관련 감수 및 외주가 들어오기도 했고 그쪽에서 유명하신 분들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렇겠지. 대기업에서 ‘책임 연구원’이라는 직함으로 ‘오타쿠’ 발표를 했으니까. 이는 나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한동안 서브 컬처와 애니메이션, 만화 쪽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며 오타쿠 이미지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보고 있다. 그 덕분일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나를 오타쿠 전문가로 알고 있는 분들이 종종 있다.
단 한 번의 대형 컨퍼런스 발표의 영향력을 느낀 이후부터 다양한 컨퍼런스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NDC, IGC, KGC를 비롯해서 작은 클럽이나 회사, 혹은 학교나 센터 강연까지. 처음에는 나를 위해 하던 발표였지만, 반복하다 보니 점점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나는 대학에서도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때의 경험이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발표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될 줄이야. 뭐든 지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