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칭찬에서 시작된 요리 실험
가난한 10대 시절. 동생과 자주 먹던 음식이 있다. 밥에 날계란을 하나 풀고 간장을 한 스푼 넣어서 슥슥 비벼 먹는 것. 냉장고에 다른 반찬이 있다면 뭐든 넣었다. 멸치를 넣기도 했고 양파를 넣기도 했으며 버터나 치즈를 넣기도 했다. 요리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라면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였다. 그 안에서 나름 다양한 실험을 했던 것 같다. 전자 레인지에 돌려 보기도 하고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넣어보기도 했다. 물이나 우유를 섞어 보기도 하고 과자 부스러기를 같이 넣기도 했다. 한정된 재료로 다양하게 먹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실험 정신이 투철한 걸까?
20대가 되어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 담당 직원을 동경했다. (설거지 머신의 꿈) 업장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직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일터를 전전하다가 드디어 장우동에서 가벼운 레트로트라도 담당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만들어 나가는 음식을 먹는 손님들을 보며 제대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만 담아둔 그 욕망을 시도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뒤였다. 당시 요리 레시피는 책을 사거나 TV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었다. 고민만 하던 중 여사친 하나가 요리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전화 통화를 하며 실습을 진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 도전 요리는 오믈렛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친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고 그대로 수행했다. 프라이팬에 계란을 풀고 지글지글. 와 신기해! 계란이 검은색으로 변하네? 야! 그거 타는 거야! 얼른 불 꺼! 첫 번째 실패를 한 뒤 불을 사용하지 않는 요리들도 시도했다. 점점 난도가 낮아졌고 마지막은 ‘어묵 김치말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단순했는데, 그마저도 망쳤다. 친구가 진지하게 말했다. 넌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 요리는 하지 마. 그냥 여친한테 해달라고 해.
성격상 누군가에게 무얼 해달라고 하지 못한다. 따라서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고 새로운 연인의 생일을 맞이해서 인터넷의 파스타 레시피를 열심히 따라 했다. 과연 레시피의 힘인 걸까? 그녀가 맛있게 먹는 듯했다. 그날 하루만 그랬다. 며칠 뒤 진실을 듣게 되었다. 노력한 사람한테 매정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말해야겠어. 실은 너무 맛없었어. 생일에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는데... 반성했다. 요리가 안 되는 이유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심각한 맛치라는 점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연인이 생기고 나서 이번에도 요리를 못함을 숨기고 이벤트를 준비했다. 화이트 데이였다. 탕후루가 아직 한국에 많이 알려지기 이전, 영화에서 본 과일 사탕(?)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레시피를 찾아보고 설탕 시럽을 굳혀서 비슷하게 만들었다. 비주얼은 그럴듯했고 그녀는 선물을 받고 감동했다. 하지만 한 입 먹고 나서 진지하게 말했다. 오빠. 요리는 내가 할게. 다시는 하지 마. 그때부터 나는 재료 준비와 뒷정리 담당이 되었다. 이후 다른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한동안 요리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후 몇 번의 인연을 거치다가 만난 새로운 연인. 그녀가 출출하다는 날, 냉장고를 보니 가지가 하나 있었다. 그냥 먹기에는 딱딱하길래 별생각 없이 잘라서 불에 구웠다. 요리라고 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너무 맛있다며 요리왕이라는 칭호까지 내려주었다. 평생 못한다고 구박받던 요리를 처음으로 칭찬받은 것이다. 이렇게 쉬운 거였어?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것을 하려고 했던 걸까? 그날부터 요리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비건이었다. 한국에서는 채식 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요리가 거의 없다. 간단한 국물 요리에도 멸치 육수나 고기 육수가 들어가니까. 요리에 사용하고 남은 채소 조각으로 채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사용했다. 비건 레시피가 거의 없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실험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창작이 나에게는 잘 맞았다. 소고기가 빠진 미역국에는 어떤 것을 넣어야 할까? 파김치도 비건으로 담갔고 잡채도 비건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꿀이나 아보카도가 비건 식재료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식극의 소마 같은 요리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보며 남는 재료로 괴식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자신감이 붙으며 블로그에 비건 야매 요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검색량이 높았고 비밀 댓글이나 쪽지로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유명한 비건 사이트에 링크가 되기도 했다. 요리를 시작하면서 맛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 부대찌개의 맛을 구분하지 못하던 나였지만 집중해서 노력하니 조금씩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재료의 배합 비율과 불 조절, 재료를 넣는 순서에 따른 맛의 차이도 알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감사한 블로그 이웃 분이 생일 선물로 고급 칼을 주시기도 했다. 그동안 나의 삶에서 칼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무기였는데... 그 선물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괴식을 포함한 다양한 시도를 했었는데,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녀와 이별한 뒤에는 다시 요리와 멀어지게 되었다. 맛있다고 해줄 사람이 사라졌으니까. 이후 만난 다음 연인은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더욱 내가 나설 기회가 없었다.
20대 내내 요리만 하면 욕을 먹었고 다시는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덕분에 완전히 생각을 지운 지 오래였다. 그러던 것이 30대에 와서 푹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결국 단 한 번의 작은 칭찬. 그것뿐이었다. 가지 구이를 먹은 그날. 맛없다고 인상을 썼다면 요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 별 반응이 없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평생 들어온 이야기가 있으니까. 하지만 작은 시도에 비해 과한 칭찬을 받았고 그것이 좋은 동기 부여가 된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연인이 비건이었다는 점이다. 역시 나의 성향은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보다 창작이 좋으니까.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물론 요리를 잘하는 분들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하는 것들이 우습고 하찮게 보일 거라는 것을 안다. 실제로 비아냥 거리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누군가에게 평가받거나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니 내가 즐거우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우연한 조합들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항상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