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 자기 객관화의 종착지

나는 왜 비혼을 선언하는가?

by 마이즈

소개팅을 해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였던 시절이 있었다. (블라인드 버킷 러브) 주선을 50명에게 거절당했고, 그 과정에서 신기한 경험을 갖게 되었다. 소개팅 전문 업체(?)와 상담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회사가 있는 지도 몰랐기에 신기했는데,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자기 객관화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 같은 놈에게 소개팅을 해 줄 사람은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상담 이후부터 또 다른 업체로부터 정기적인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소개팅 업체가 아닌 결혼 정보 회사였다. 연애 중이라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몇 개월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때 그분을 아직도 만나고 계세요?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3년 뒤, 또 한 번의 연애가 끝났다. 이별 후 귀신같은 타이밍에 연락이 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왜 이렇게 나를 찾는 걸까? 잘난 것 하나 없는데. 그즈음 이웃 블로거 한 분이 결정사 상담을 받아보고 자기 객관화가 되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렸다. 그리고 보면 소개팅 업체에 상담을 받고 나서도 내 주제를 알게 되었었지. 한번 가볼까?

상담 실에 들어가니 젊은 매니저 님이 반겨 주셨다. 지난 몇 년간 왜 그렇게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셨냐고 물었지만, 본인이 한 것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거겠지? 매니저 님은 나의 상황을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다. 그러다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를 비웠다. 한참 기다리자 돌아와서 말씀하신다. 죄송하지만 마이즈 님의 상황은 제가 상담하기에 역부족인 것 같아요. 우리 회사에서 TOP이신 진짜 잘 아시는 분이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딱히 상관없다고 말했고 잠시 후 나이가 많아 보이는 매니저 분이 들어오셨다. 직급이 꽤 높은 듯했다. 경험이 정말 많으시겠구나. 내 상황이 역시 심상치 않은 걸까? 사실 그럴만했다. 사업에 실패하면서 집은 물론 모아둔 돈을 다 날렸고 심지어 개인 회생 중이라서 벌이도 최소 생계비 이상은 불가능했다. (스타트 다운) 게다가 형사 사건으로 판결받아 집행유예 기간인 범죄자였다. (바퀴벌레 재판) 여기에 더해 지난 연인들과의 동거 경험이 있었는데, 이를 숨길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누구를 만나든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당연히 이런 여러 부분 때문에 가입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니저님이 말씀하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 내용들이 아니었다.

매니저 님은 부모님에 대해 질문하셨다. 나는 문제가 많은 고객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산이 없거나 범죄 이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거 경험도 큰 문제는 아닌 듯했다. 하긴 돌싱과 연애를 한 경험도 있으니 나 역시 상대의 과거에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애초에 이혼이 하늘의 별처럼 많은 지금 시대에 동거 정도는 심각한 결격 사유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심각한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경제 능력이 없는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라는 업) 심지어 최저 생계비 이상은 벌 수 없는, 벌어서는 안 되는 회생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잘 들으세요. 본인 삶을 찾으셔야지요. 어머니를 모시겠다면 만날 수 있는 여성은 없을 거예요. 요즘 어느 여자가 시 어머니를 모시고 살려하겠어요? 어머님 노후 대책도 안 되어 있으시죠? 한 달에 어느 정도 금액을 주시나요? 남편이 번 돈을 본가 부모님에게만 쓴다면 환영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아내의 부모님에게도 똑같이 해주시려면 두 배로 벌어야 할 텐데 가능하시겠어요? 혹시 어머님이 만나는 분은 안 계신가요? 재혼 생각은 없으신가요? 안정적인 남자를 만나시면 아들을 위해서라도 좋을 텐데요.

매니저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씀하셨다. 방법이 있어요. 어머니를 집에서 내보내세요. 세대 분리를 하는 거예요. 시골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서 보내 드리고 최소한의 생활비만 드리세요. 아니면 요즘 실버타운도 잘 되어 있는데, 너무 비싸지 않은 곳으로 한번 추천해 드릴까요? 결혼하려면 가족에게서 독립하셔야죠. 자기 삶을 찾아야지. 부모님 챙기느라 본인이 불행해지면 안 되잖아요.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 독립이지 어머니를 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 없었다. 부모를 버리라고? 고작 결혼을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내가 불행해지는 것인가? 이 분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인가? 아니면 이런 밑바닥 인생도 구제했다는 이력이 필요하신 것일까? 매니저님은 베테랑 다웠다.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온갖 언어 스킬을 구사하셨으니까. 하지만 이미 마음은 뜬 상태였다. 매니저 님도 서서히 포기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였다. 잘 들으세요. 마이즈 님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버님에게 재산을 상속받으시는 거예요. 회사를 물려받아도 좋고요. 장남이라면서요? 본인 능력이 부족해서 결혼도 못하는 상황인데, 그나마 훌륭한 아버지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문득,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며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으라고 말하는 어머니와 겹쳐 보였다.) 요즘은 남편의 능력보다 시부모 능력을 보는 여성 분들이 더 많아요. 아버님에게 연락하셔서 결혼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하세요. 어머니는 빨리 시골로 보내시고요. 아 정말 이 분을 어떻게 해드려야 정상적인 삶을 드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훌륭한 아버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아직 포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결혼은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분들은 대체 왜 결혼하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시는 것일까? 아니면 가스라이팅인가?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내려진 최종 결론은 예상대로였다. 가입 불가. 일단 개인 회생을 마무리하고 집행 유예 기간도 끝나고, 어머니를 내보내서 세대 분리를 하고, 아버지에게 상속 확인을 받고 나서 연락해 달라고 하셨다. 그 미션을 모두 수행하고 나면 본인이 책임지고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내 기준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상대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이 대사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최고의 상대’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준’이라는 표현이었다. 나를 평가하고 소개할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일상인 분들이니 당연하겠지. 최고의 상대란 어떤 사람일까? 나와 결이 맞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으며,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닌가? 어떻게 그런 사람인지 만나보지 않고 판단할 수가 있지?

나에게는 강박적인 책임감이 있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어머니를 버릴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인데? 그리고 세상 모두에게 고개를 숙이더라도 마지막까지 숙이지 말아야 할 단 한 사람이 아버지이다. 상속 이야기도 이미 끝난 상태다. 아무것도 받지 않을 테니 내 몫으로 배분된 것이 있다면 전부 동생에게 주기로 했다. 내가 동생에게 갈 것을 빼앗을 리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아버지에게서 무언가를 받을 리가 있겠는가?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앞으로 다시는 이곳에 연락할 일이 없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간. 나는 이 결혼 정보 업체와 연락을 지속했다. 매니저 님이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다. 회생은 얼마나 남았죠? 어머니는 내보내셨나요? 아버님과 이야기해보셨어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건이 좋고 돈이 많은 회원을 유치하면 훨씬 쉽게 벌 수 있을 텐데,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혹시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인가? 나를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건가? 내가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렇게 두 어 달마다 귀찮은 전화를 받으면서도 끊어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걱정의 표현이 진심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개인 회생과 집행 유예 기간이 마무리되자 그 이후에는 재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빨리 어머니와 세대 분리 하셔야죠. 아버님과는 언제 이야기하실 거예요? 자꾸 나이만 먹잖아요. 빨리 안 하시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어요. 슬슬 짜증이 났기에 결국 화를 내고 연락을 끊었다. 어쩌면 그분들은 진심으로 나를 돕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기준에 따라서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준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 또한 무례한 것이 아닐까?

돌이켜 보면 그쪽에서 하는 이야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었다. 당연하다. 결혼을 하는 것만 해도 큰 비용이 필요한 세상이다. 예식과 신혼여행 비용만 해도 수천만 원이다. 프러포즈도 수백만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집도 구해야겠지? 사는 것이 무리라면 전세나 보증금이라도 있어야 할 게다. 따라서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은 나에게 결혼은 불가능한 것이다. 부부가 같이 힘을 합쳐 0부터 쌓아간다는 환상은 구시대의 것이다. 게다가 내가 버는 돈의 많은 부분이 어머니 부양에 쓰인다. 상대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찾는 편이 좋겠지. 그것이 당연하다. 고생을 사서 하고 싶은 사람은 나 같은 별종 외에는 없을 테니까.

나는 키가 작고 못 생겼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형사 전과를 가지고 있다. 연애 상대와 여러 번에 걸친 동거 경험이 있다. 재산도 모두 날렸다. 게다가 어머니를 평생 부양해야 한다. 부모님의 재산을 상속받을 일도 없다. 내가 힘들 때 도와줄 능력 있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챙겨야 한다. 결정사의 말에 의하면 나 같은 조건을 선택할 여성은 없을 거라고 한다. 완전히 자기 객관화가 되었다. 만약 이런 내가 결혼을 한다면 상대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을 보면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 보다 이혼한 사람들도 많다. 가족들 중에서도 그렇고 친구들 중에서도 그렇다. 온갖 드라마와 예능에서도 이혼이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표현된다. 이혼은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까지 큰 상처를 남긴다. 그동안 십 수번의 연애 경험이 결국은 이별로 끝난 것을 보면, 결혼을 해도 언젠가 이혼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언젠가 깨질 가능성이 있는 짧은 행복을 위해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연애 중의 이별은 마음이 아파도 현실적인 상처나 꼬리표가 붙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혼은 영원히 나의 일부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별을 대비해 연애만 하는 선택지도 괜찮지 않을까? 둘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따라서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비혼임을 확실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비혼을 선언했다.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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