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크라이시스2
나의 별명은 똥차 수집가. 자동차 컬렉터냐고? 아니, 연애 이야기다. 만나는 상대마다 매번 문제가 있었다. 세상에 나쁜 남자들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바람둥이이거나 돈 문제가 얽혀 있거나 폭력적이거나 이상한 취향인 걸까?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이전과 같은 타입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은 패턴이었다. 친구들 말로는 내가 매번 비슷한 남자를 만난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반복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내가 문제인 걸까? 아니면 나쁜 남자들이 나에게 끌리는 것일까?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
또 한 번의 아픈 이별을 겪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러 본가에 돌아왔다. 엄마는 말 안 해도 아는 눈치다. 하긴. 헤어질 때마다 집에 와서 우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이것 조차 같은 패턴의 반복이구나. 엄마와 함께 집에 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져서 간단히 챙겨 입고 나왔다. 논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상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락실이었다. 도시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곳인데, 이런 시골에 있다니. 장사는 되는 건가? 기분 전환 삼아 오락실에 들어섰다.
게임기 위에 총이 놓인 기계가 눈에 띄었다. 어딘가 총을 마구 쏴 대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려나? 하지만 화면 안에서는 징그러운 좀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이건 총을 쏴도 기분만 나빠질 것 같아. 그 옆에 총과 페달이 있는 게임이 눈에 띄었다. 이건 뭐지? 타임 크라이시스? 그래.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거야. 그놈과 연애했던 시간을 박살내고 말겠어! 동전을 넣고 기운 좋게 게임을 시작했다.
화면에 나타난 적을 마구 쏘다 보니 총알이 떨어졌다. 어쩌지? 고민하다가 페달을 밟았다. 갑자기 화면이 아래로 내려갔다. 벽 뒤에 숨은 것이다. 나의 총은 장전되었지만, 머리 위로 적의 총탄이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함부로 고개를 들 수 없겠는 걸? 하지만 이대로 숨어있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과감히 페달에서 발을 뗐다. 다시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을 노려 적들을 쐈다. 탕! 탕! 나 조금 폼나는 걸? 게임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숨고 쏘는 것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니 페달에서 발을 떼기가 두려워졌다. 머리 위로 적들의 공격이 너무 거세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총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다고 숨어만 있지 말자! 마음이 썩는다고! 문득, 연애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쏘아붙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자! 페달에서 발을 뗐다. 고개를 드는 순간 적들을 쏠 거야! 하지만 하필이면 적의 탄환이 지나가기 직전에 몸을 일으켰다. 게임 오버. 아 짜증 나. 역시 참았어야 하는 걸까?
땡그랑
뒤에서 구경하던 어린 소녀가 동전을 넣었다. 이 게임을 하고 싶어서 기다린 걸까? 하지만 소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더니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뭐지? 나 하라는 건가? 소녀가 동전을 넣어준 덕에 한판 더 하게 되었다. 아니었다면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가급적 숨지 말기로 했다. 총알이 떨어질 때만 빠르게 페달을 밟았다 뗐다. 화면에 보이는 적들을 마구 쏴댔다.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가급적 숨지 않고 진행하려고 하니 한계가 있었다. 첫 판보다도 못 간 곳에서 게임이 끝나 버렸다.
이대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억울했다. 첫 판보다 두 번째 더 못하다니. 동전을 다시 넣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작정 숨는 것도, 무작정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다. 언제 숨고 언제 나설지. 언제 쏘고 언제 장전할지. 그게 중요한 거였다. 무작정 공격만 해서도 안 되고, 계속 숨어만 있어서도 안 되는 것. 게임을 하면 할수록 묘하게 불편해졌다. 화면 속 적들을 쏘면서 나는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 게임 오버를 당하는 순간, 그 이유를 찾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나는 연애할 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상처받을까 봐 마음을 닫고 숨어 있거나, 아니면 먼저 공격하듯 따지고 의심했거나. 친구들이 말했던 게 이거였구나. 비슷한 남자를 만났던 것이 아니라, 누구를 만나든 같은 방식으로 대했던 거다. 연애를 전투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내 방식 때문에 관계가 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모두가 나쁜 남자는 아니었겠지. 총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게임은 둘이 함께 하는 게임이거든요."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말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기계 두 대가 붙어 있던 거였어. 적이 아닌 같은 편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 다음 연애는 다를 거라는 다짐을 한다. 미래의 그와 함께 다시 한번 이곳에 와야지. 둘이 함께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