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배우

뽀빠이

by 마이즈

한때 시금치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맛이 좋아서는 아니었고 만화 캐릭터의 영향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시금치를 먹었는데, 우리를 바꾼 캐릭터는 그 이름도 유명한 뽀빠이였다. 뚱뚱하고 거친 악당 블루토는 매번 아름다운 올리브를 괴롭힌다. 멋진 선원이지만 블루토보다는 약한 뽀빠이는 매번 당하기만 하는데, 시금치를 먹는 순간 엄청난 힘이 솟아나면서 뻥~! 하고 블루토를 날려버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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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는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세진다고 착각한 아이들이 많았다. 아무리 먹어도 힘이 세지지 않자, 미국산 통조림 시금치를 먹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어린 나는 뽀빠이가 사기꾼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국제 시금치 조합(?)에게 마케팅을 위해 고용된 배우라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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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뽀빠이가 게임으로 나왔다. 호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화면을 보니 손이 근질근질거렸다. 게임을 켜자 올리브가 하트를 뿌린다. 블루토는 나를 쫓아오며 맥주병을 집어던지거나 주먹 질을 한다. 나는 뽀빠이가 블루토를 피하며 하트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 스테이지는 아파트였고, 세 번째는 해적선이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릴 때 보던 만화의 에피소드가 하나 둘 떠올랐다. 그리고 뽀빠이의 핵심인 시금치! 이 게임에도 시금치가 등장하는데, 이걸 먹고 블루토를 뻥 때리면 화면 여기저기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거야! 게임의 쾌감을 통해 나를 배신했던 뽀빠이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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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동네에 새로 생긴 치킨 집의 모델이 뽀빠이라는 말에 사촌 형들과 함께 방문했다. 가게 이름은 파파이스였다. 이게 무슨 뽀빠이냐고 따지자 영어로 뽀빠이를 쓰면 POPEYE라면서 치킨을 먹으면 힘이 세지기 때문에 POPEYES라고 복수형 S를 붙인 거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모두 치킨을 먹고 뽀빠이처럼 힘이 세지자!라는 말이었다. 뭐야? 시금치 모델 다음은 치킨인가? 너도 참 바쁘게 사는구나. 하지만 자꾸 이러면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질 텐데 괜찮겠어? 하다못해 시금치 치킨이라도 만들던가. 나는 다시 한번 뽀빠이에게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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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5까지

뽀빠이. 1983.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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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IP로 82년에 닌텐도에서 제작한 아케이드 게임입니다만, 제가 주로 했던 것은 1983년 패미콤 이식판입니다. 아마 대부분 이 버전으로 플레이하셨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뽀빠이 만화를 본 추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푹 빠지셨을 게임이지요. 당시에는 이만큼 IP를 잘 살린 게임이 드물었으니까요. 여러모로 잘 만든 게임이지만, IP 때문인지 이후 리메이크나 후속작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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