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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r 17. 2024

나에게 스노보드란

쉰 살의 유학일기 - 겨울편 #9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나의 첫 스노보드는 시즌을 종료했다.


보드는 잘 되지 않았다

타본 적 있던 스키나 다시 배울걸 그랬나…

하지만 마음속의 목표는 스노보드였고 못하고 돌아가면 내내 후회할 것 같았다

태어나서 이 나이 먹도록 어떤 종류의 운동도 남보다 잘해본 적이 없었지만 포기 안 할 자신은 있어서 시작했다.

정말로 스노보드가 끌렸다기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가장 무모하고 위험한 운동인 것 같아서였다.

삿포로의 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다.

나카지마 공원에서 ワーキングスキー(워킹구스키, 노르딕스키)를 탈 수도 있고, 타키노스즈란 공원에서 스노우슈즈를 빌려서 눈 덮인 숲 속을 산책할 수도 있다. 다양한 일일버스투어를 신청해 눈 덮인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언제든 삿포로에 오기만 하면 즐길 수 있는 눈놀이였다.

나는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체험을 하고 싶었다.

즉, 스노보드는 내 인생 가장 젊은 나이인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젊은 운동이었다


겨우내 레슨을 받았지만 겨우 초급 수준 S자 턴을 할 수 있다. 그마저도 오전 수업엔 되다가 체력이 떨어지는 오후 수업엔 성공률이 반도 안 되었다.

오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난 후엔 너무 힘들어 밥도 잘 안 먹혔다. 그리고 오후 두 시간 수업은 엉망진창 구르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처박히고…

집에 돌아오면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온몸이 아팠다. 그래도 꾸역꾸역 일주일에 한 번은 스노보드를 타러 스키장으로 갔다.

겨울이 끝날 무렵 나는 슬로프에서 겁먹지 않고 스피드를 조절하고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수준은 갖추었다.

물론 예술은커녕 기술이나 재미는 전혀 첨가되지 않는 순수한 하강일뿐이지만.

수업 첫 날

막둥이는 삿포로에 있는 3주 동안 네 번의 수업만에 베이직 턴을 떼었다.

겁이 많은 아이인데, 일본인 강사의 말을 뭉턱뭉턱 떼어먹고 요점만 간단히 통역해 주는 엄마의 말과 (사실은 나도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걸…) 강사의 몸짓과 눈치만으로 해냈다.

아마 한국에서, 아니 한국어로 강습을 받았으면 한두 번 만에 초급을 떼고 중급까지 돌파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통하는데 몸의 감각만으로 저렇게 금세 자기 것으로 만들다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젊어서 그런지 회복도 빨라 한번 더, 한번 더를 요구하는 바람에 나는 정말 엄마 아니면 못하는 초인적인 힘을 끌어올려야 했다.

젊음이라는 것은 가진 자들은 알지 못하는 어마무시한 축복이더라.


스노보드를 배우면서 도전과 성공에 대한 성취감보다는 좌절과 한계를 느끼며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내 몸은 습득이라는 말을 쓸 수준도 못되고 제대로 따라 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 아쉽지만 이 감정이야 말로 이 나이의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솔직한 마음이다.

뛰어드는 것보다는 바라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바라만 보는 것보다는 뛰어들고 난 후 바라보면 느낌이 다르다.

미련이 없다. 아쉬움도 없다. 그래서 후회도 없다.

초급 슬로프 위에서 바라본 풍경


* 내가 수업받는 내내 강사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無理せずにゆっくり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느리고 나이많은 수강생 가르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치지 않고 잘 즐겼습니다. 감사합니다!

お疲れ様でした。ありがと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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