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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Sep 27. 2024

복수

아침에 남편과 싸웠다.

아니, 싸웠다가 보다는 남편의 말실수로 마음이 크게 상했다.

평소 감정적인 동요가 별로 없는 남편이 내가 미쳤었나 보다며 안절부절못할 정도의 실수였다.

남편은 눈빛으로, 표정으로, 온몸으로 미안함을 뿜어냈지만 - 이 남자는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상한 버릇이다 - 눈물이 쏟아지고 헝클어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서러웠다가 화가 났다가 이해도 갔다가 미웠다가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일이 손에 안 잡혔지만 어쩔 수 없이 볼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데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이 빠듯했다.

밥 하기 싫었지만 남편과의 감정소모도 길게 하고 싶지 않아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도 채 못 갈아입고 부지런히 저녁준비를 했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난 뒤통수 가득 불만을 담은 채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를 했다.


으악!!!! 야, 개띵구!!! 이게 머야??!!


남편이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난리가 났다.

오메~ 요 이쁜 넘이 안방 한복판에 푸지게 응가와 쉬를 해놨네!!!

엄마 대신 아빠한테 복수해준겨? 기특해라~

차마 아침의 일 때문에 나한테 치워달라는 말도 못 하고 남편은 씩씩대며 뒤처리를 했다.


일부러 냅뒀냐?


아니, 외출하고 오자마자 저녁준비하느라 몰랐네. 냄새나는 줄도 몰랐어. (엄훠~ 꼬셔라, 쌤통이다!)


시추가 똥 먹는 건 사람이 담배 피우는 것과 같은 거라 하지 않았나.

물론 우리 집 시추 띵구도 건강할 때 가끔 응가를 먹었었다. 그리고 아픈 지금은 볼 일을 본 후 필사적으로(?)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한껏 취약해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흔적을 지우려는 듯이.

그래서 얼른 치워주지 않으면 뒤처리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외출할 때는 꼭 응가바지를 입혀주고 나가는데 오늘은 마음이 심란하여 깜빡 잊었었나 보다.

안방 문도 못 들어가게 꼭꼭 닫는데 오늘은 그것마저 잊었었나 보다.

기특한 개아들이 엄마 맘을 어찌 알고 안방까지 들어가서 아빠에게 한방을 먹였을까! 심지어 먹지도 않고, 밟지도 않고!

저 녀석, 안 아픈 거 아닐까?

아, 몰랑~~~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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