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래나 저래나 '힘들다'
돈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적금을 깬지는 오래고, 예상 밖의 지출들에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취준생의 하루 또한 힘들다.
그러던 중 72초 TV에 나오는 뒤늦게 배우 생활을 시작한 사람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힘들다는 얘기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아지기 위해 힘을 내야죠. "
http://waycup.blog.me/220827196691 : 72초 TV '오구실'에서 열연 중인 배우 '장세원' 인터뷰 원문.
힘들지만 그냥 견뎌내고 살아가는 것일 뿐.
그러니 역설적 이어 보이지만 당신은 하루를 더 느껴야 할 때다.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피어나는 꽃, 그 시선 끝에 펼쳐진 파란 하늘.
이 너무나도 완벽한 그림이 매일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힘내는 수밖에. 힘낼 것을 찾는 수밖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봄인가
다시 나의 일상을 들려주자면, 요즘은 곳곳에 핀 목련과 벚꽃이 보인다. 작년에는 즐길 시간 따윈 없단 조급한 마음과 우울한 마음에 매년 보던 벚꽃을 처음으로 보지 않았었다.
아침의 일상은
오늘은 엄마의 기상시간과 함께 일어났다. 저녁에는 작년 가을에 말려 둔 국화를 우려 한 잔 마시고 깨끗이 씻은 토마토를 함께 먹으며 여유를 즐겼고 아침에는 엄마와 봄 향기 가득한 냉이 된장국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엄마는 웃었다.
"딸이랑 이렇게 얘기 나누면서 아침 먹으니까 행복해."
마지막으로 아침을 같이 차려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언제인가, 아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아침을 먹었구나. 대학생 때는 온갖 공모전과 수업에 바쁘단 핑계로, 취업을 준비할 때는 부모님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워서, 취직을 하고 나서는 주말 내내 자느라. 나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아침을 먹고 있단 걸 깨달았다.
“나도 엄마랑 오랜만에 아침 먹으니까 행복해”
늘 무뚝뚝하고 욱하는 딸내미라서, 어쩐지 미안해져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여유는 잠시
엄마는 출근을 서둘렀고 우리는 화장대 한 개를 번갈아 쓰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엄마를 배웅하고 나는 산책로로 나섰다. 글쓰기와 지원서와 영어시험 준비는 늘 카페에서 하는데, 아직 카페 오픈 시간도 안된 이른 8시 30분이었다. 시간이나 좀 때우자 하며 산책로에 들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화창한 날씨, 어느새 푸릇푸릇해진 잔디, 활짝 핀 목련까지. 이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라니. 벅차오르는 행복까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어느새 봄이 왔다.
보인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출근하는 몇몇 내 나이 또래, 등산복을 입은 부부들. 아침의 풍경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걸었다. 그림자 하나 없이 밝은 날씨 아래 나는 천천히 걸었다.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덕분에 물 위에서 꽥꽥거리는 오리 울음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와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것들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걸으면서 오늘의 계획 또한 머릿속에서 착착 정리되었다. 사실 주말 내내 다시 닥쳐오는 불안감이 있었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걷고 있으니 다시 자신감과 인내심이 마구 샘솟았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30분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봄비가 내리던 밤
아름답고 온전히 즐기는 퇴사 이후의 생활은 사실 3월 말까지가 끝이었다.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하지만 그건 불안감 속에 살고 있는 취준생에게 잘 들리는 말이 아니다.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내면서 현실적인 조건들을 충족하며 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여기서 현실적인 조건들이란 내 몸 온전히 뉘일 수 있는 공간과, 삼시 세 끼를 먹는 것, 누군가 아플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 등이다. 진정 원하는 삶에는 성장하는 것, 내가 힘듦에 도 불구하고 해낼 동기부여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삶을 사려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청춘을 팔아 내며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착한가? 나는 사실 아니다.
나는 착하지 않다. 가까운 지인들의 누구나 원하는 직종, 기업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때때로 배가 아프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모습에 '와 난 정말 못된 년인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은 자책과 열등감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내게 가끔은 '힘들었던 시기'를 들려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나보다 더 헤매고 있는 이들을 보며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가 그렇게 못나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나는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백수고 매일이 불안하고요 빽도 없고요 화려한 이력도 없어요
그저 매일이 쌓인다는 생각으로 늘 고민하고 방황하고 면접도 가끔 가 보고
그냥저냥 살아요 이런 당신보다 덜 한 사람도 행복을 찾으며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