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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Mar 30. 2017

#07. 여름 나라 공기와 몸의 감각

“이것은 오키나와 다이빙 가이드가 아니다”

여행을 할 때면 따뜻한 곳을 찾는다. 겨울 여행은 목과 어깨가 움츠러들어 근육이 뭉치고 살에 스미는 한기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다이빙을 시작한 뒤로는 늘 따뜻한 곳으로 떠났다. 온기는 공기로 전해진다. 들이마시는 숨에 피부에 닿는 공기에 온기가 배어 있다. 짧은 소매 옷을 입고 거리를 걸으면 온도, 습도, 인파와 거리의 분위기가 맨살에 닿는다. 


제주도에 갔을 때 파도에 휩쓸려 현무암에 피부가 찢긴 적이 있다. 사람의 맨살은 무척이나 연약하다. 맨살을 드러내고 접촉하는 것은 무장을 해제하고 외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에서만큼은 그러고 싶다. 무장하기보다는 제한된 시간 동안 필터 없이 온전히 드러내고 또 받아들이고 싶다. 


몇 년 전 앓고 병들만큼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애써 억누르고 숨겼는데 탈이 나서 심한 우울감이 왔다. 끝내 병원이나 상담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병증으로 명명할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닥으로 추락하는 감정을 붙들지 못해 종종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불면증, 식욕부진으로 체중은 바닥을 쳤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누군가를 좋아했고 그 시기가 많이 늦었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라는 인간과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눌러서 사그라들 감정이 아니었는데 무리해서 숨기고 누르다 염증이 나고 고름이 차서 열이 끓고 몇 날을 앓았다. 기억은 멋대로 편집되어 파편만 남아있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에 서툴렀지만 다정하고 배려 있었다. 힘들었던 나를 살피고 몇 번인가 구해줬다. 몇 번의 마주침, 목소리, 표정들은 지금도 기억난다. 무력해지는 상황,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당시에는 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지난 뒤 몇 가지 조각이 생생히 떠오른다. 미화와 편집의 결과일 수도 있다.


억울함과 자괴감으로 점철된 어둡고 까만 기억은 겨울이었다. 위축되고 경계하며 몸과 얼굴을 꽁꽁 가리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말랑하고 부드러웠다면 그렇게 다쳐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부딪치고 망가졌던 기억. 조금 더 무던하게 흘려보내고 유연하게 대처했다면 어땠을지. 상대에게 원하는 대답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흘러 불안하지 않은 무언가, 다른 형태의 편안한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숨을 마시고 몸을 데워 온기를 유지하면 몸과 마음도 그에 맞춰 세팅된다. 심장에 온기가 생기고 따스한 피가 돌아 피부와 근육이 부드러워진다. 경험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몸에 기록된다. 장소, 시간, 온도, 감정과 몸, 표정, 접촉과 자극이 몸 곳곳에 기록되어 이따금 상기시킨다. 의식적으로 좋은 경험을 기록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다루고 벗어나는 사례를 몸에 기억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간 오랫동안 차갑게 고여있는 물이었으니까, 물은 금방 데워지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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