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자유인 4개월 차 회고록, 체화의 의미
"화를 내세요, 억누르지 말고 감정을 표현하세요"
재작년부터 약 1년 8개월간 심리상담을 받았다. 후반 4, 5개월가량 뜸해진 시기를 제외하고는 한 달에 4번 꼴, 짧지 않은 시간과 횟수와 기간이었다. 그간 여러 번 반복해서 요구당했고 기억나는 말이다. 화를 내세요, 표현하세요. 당시에는 '할 수 있는데 멍석을 깔아 두고 요구하는 상대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 기록했다.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생각한다.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발현은 상념과 구분되는 것, 실행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 몸으로 실현하고 원하는 순간에 꺼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상만으론, 한두 번의 시도로는 이룰 수 없다. 상념과 체화의 갭, 현생 3N년 차로써 모를 리 없다. 지금을 정비하기 위한 현재를 기록한다. 나는 19년 10월 31일 만 5년 근무한 회사를 퇴사했다. 무직, 무소속 상태로 4개월을 보내고 5개월 차에 돌입했다. 그간 무엇을 했나.
11월 : 미국여행, 요리, 스윙댄스, 보이스 트레이닝
7박8일 미국 LA 여행 / 한식조리, 양식조리 수업 수강 (각 월 3회) / 발레 (월 3회) / 발보아 (월 3회) / 린디합 동호회 (월 2회) / 재즈라인 동호회 수업 (월 2회) / 보이스트레이닝 (월 3회)
12월 : 대만여행, 요리, 춤, 스트레칭, 기타, 명리학, 베이킹, 퍼스널컬러 컨설팅.. 욕심 폭발
3박4일 대만 타이베이 여행 / 한식조리, 양식조리 수업 수강 (각 월 2회) / 발레 (월 5회) / 사이드스플릿 스트레칭 수업(스트레치 조이)(월 4회) / 발보아 (월 3회) / 린디합 동호회 (월 4회) / 린디합 베이직 외강 (월 4회) / 슬로우 린디 외강 (월 1회) / 어쿠스틱 기타 (월 2회) / 명리학 초급 (월 1회) /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기 (1회) / 퍼스널컬러 컨설팅 (1회)
1월 : 새 관심사 추가(베이킹, 경락, SNPE, 메이크업), 스윙댄스 외강 폭탄, 당근마켓 시작, 새노트북 구입, 점을 빼고 귀를 뚫었다.
천연발효종 유기농빵 수업 (월 3회) / 경락마사지 수업 (월 4회) / 발레수업 (월 1회) / SNPE운동 (월 3회) / 슬로우발보아 (월 2회) / 린디합 동호회 (월 3회) / 재즈라인 베이직 (MN쌤)(월 3회) / 솔로재즈 (MT쌤)(월 2회) / 솔로재즈 초급 (JJ쌤)(월 1회)
2월 : 지속(베이킹, 스윙댄스), 중단(발레, 헬스, SNPE), 병원 투어, 몇 가지 돈G랄
천연발효종 유기농빵 수업 (월 3회) / 경락마사지 수업 (월 1회) / 헬스 (월 2회) / SNPE운동 (월 1회) / 필라테스 체험수업 (1회) / 발보아 (월 1회) / 린디합 동호회 (월 3회) / 재즈라인 (월 3회) / 린디합 동호회 공연연습 (4회) / 병원투어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총 6회)
그간 뭘 했나 했더니 7할이 춤이었네. 두 번의 여행 후에 사람들을 많이 많나고 늦잠, 낮잠을 자고 한량마냥 느슨한 생활을 했다. 영화와 책, 드라마 첫 화부터 막 화까지 주파하기 같은 것도 해봤다. 배운 것을 여러 가지 나열했지만 수업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내외,(요리와 베이킹은 3~4시간) 회사를 다니면서도 퇴근 후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피로와 부담으로 횟수와 빈도는 지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배우고 알고 싶은 것이 많은데, 회사가 발목을 잡고 있다 느껴 퇴사 후 하고 싶던 것들을 성실하게 채워 넣었다. 사교육의 선택지는 다양해서 서울시 혹은 구에서 지원하는 교육기관을 이용하면 금액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평일 낮 시간이 자유로울수록 선택지는 늘어난다. 그 외에 프립 등 프리랜서 강사의 그룹수업, 동호회 수업도 이용했다. 수업 자체는 두어 시간이지만 수업 장소까지의 이동/여유시간을 포함하면 앞뒤로 두 시간가량이 추가되고, 다음 스케줄까지 뜨는 시간, 외출 후 돌아와 쉬는 시간 등을 합치면 하루는 금방 채워졌다. 풀타임 자유시간의 효율적인 운영이 큰 숙제다.
준비한 두 번의 여행을 끝내고 자유인 생활 3개월 차가 되면서 무급 생활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비용이 아까워 주어진 시간을 비운다면 후회할 것 같아 1월에도 원하는 것들을 채워 넣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환기되고 즐겁다. 돈을 내고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부담이 없다. 몇 시간의 여가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선택, 종류가 바뀔 뿐 큰 범주 안에서는 동일하다. 동시에 낯선 환경,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난 돈을 지불하고 얻어낸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새로운 환경을 어떻게 적응하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피고 느꼈다. 조리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수업을 들은 건 요리를 전혀 못하는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새로운 친구들과 일주일간 여행하면서 주방에서 뭘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이 싫었다. 요리하고 숙소를 돌보는 것은 아주 중요했고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열등감, 욕망, 희망, 환상으로 점철된 3N살 자유인의 사교육 질주가 이어진다.
돈 쓴 곳을 꼽아보면 춤의 비중이 가장 크다. 재작년에 시작한 스윙댄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착실히 돈과 시간을 쓰고 있었는데 퇴사 후에 확실히 그 양이 늘었다. 발레는 수년 전부터 선망하던 예술, 사이드 스플릿(다리 가로 찢기)도 오랜 숙원, SNPE 바른자세 척추운동은 궁금하던 차에 저렴한 수업을 찾아내서 시작했고, 헬스는 헬스 관련 유튜브 채널을 탐독하다 감화돼서 등록했다(귀가 얇다).
스윙댄스(린디합, 솔로재즈, 발보아)는 현재 가장 크게 꽂혀있는 것, 거침없이 자원을 소비하는 곳, 열렬히 짝사랑 중이라 말려지지 않는다. 짝사랑은 지치기 마련이라 최근 약간 사그라들었으나 당분간 꺼지진 않을 것 같다. 발레는 몸을 스트레치 할 때 굉장히 개운하고, 동작에 집중하는 게 명상하듯 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라 뿌듯하다. 하지만 70분 수업을 위해 왕복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제자리인 유연성을 개선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중단했다.
일명 다리 찢기 학원으로 광고하는 스트레칭 조이는 예전부터 주시하고 있었고 이번이 기회다 싶어 등록했다. 발레를 하면서 유연성에 목말라 있었고 이곳의 원장과 수업이 궁금했다. 역시나 집과는 멀지만 주 1회 2시간 수업이라 갈만 했다. 수업은 만족, 납득되는 접근방법과 수업 내용, 친근하게 대해주고 긍정적으로 격려해주는 강사님들의 태도도 기분 좋았다. 4번의 수업만에 다리를 찢는 건은 불가능했어도(당연하다) 거주지/직장과 가깝다면 계속해서 다닐 의향이 있다. 센터에서 출간한 책과 유튜브를 활용하면 혼자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이유가 자료의 부재가 아니라는 것을, 운동복을 갈아입고 준비자세로 앉게 하는 전면 거울 앞 매트와 나를 주시하고 불러주고 잡아주는 선생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그리고 거기에 지불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도.
SNPE 바른자세 척추운동은 애초에 확정한 베이킹 수업과 같은 센터에서 같은 날 부담 없는 수업료로 수강한다.(오전 SNPE 수업 / 오후 베이킹 수업) 어머니가 집에서 하시는 것을 보고 알게 됐고 치료 목적으로 노약자에게도 권장되는 운동이라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몸 곳곳이 자극/마사지/되는 것이 좋고 강사님도 회원을 살뜰히 챙겨줘서 즐겁게 다녔지만 스윙댄스 동호회 수업이 시작되고 토요일에 춤추고 뒤풀이하다 일요일 오전 수업을 몇 차례 결석했다. 피로와 숙취로 기절.. 무리했다가 오후에 하는 베이킹 수업도 망할 것 같다는 핑계로 1월 말부터 3번 정도 결석했는데 현재 코로나19로 센터 휴관하고 이대로 안녕할 듯한 예감이 든다. 주요 도구를 구입한 터라 집에서도 가능하지만 스트레칭 샵과 같은 이유로 되도록 수업을 나가고 싶다.
그리고 쓰기도 민망한 헬스. 헬스 유튜브 채널 하나에 꽂혀서 보다가 "그래! 몸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웨이트 트레이닝이지" 감화되어 홀린 듯 등록, 한 달간 센터 두 번 나가고 의지박약과 돈지랄로 죄책감만 가중시키고 3일 전 사물함 짐을 빼왔다. 센터 이용 가능 일자로 따진다면 회당 2,500원짜리 운동이지만 실제 출석일을 따진다면 회당 3만 원짜리 운동이 됐다. 입헬스, 눈헬스로 20대부터 관심과 환상이 있고 3, 4년 전쯤 PT도 받아보았으나 노력이 부족하여 성과는 적었다. 스스로 의지를 북돋아 운동을 나가는 것, 혹은 비용을 감수하고 트레이닝을 받는 것 모두 내게는 진입장벽이 높다.
몸을 만드는 것과 몸 쓰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기술을 (머리로) 학습 - 몸으로 반복 - 1차적으로 수행을 가능케 하고 - 계속해서 연습과 점검을 반복 - 원하는 때에 기술을 꺼내 쓸 수 있게 체화함(혹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몸을 갖게 됨)
몸이라 함은 운동, 체형, 사고, 언어, 습관 등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길게 반복해서 쓰지 않겠다.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적합한 방법을 찾고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반복할 것. 의심이나 초조함 없이 그저 실행해야 한다. 꾸준해야만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림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와 주변이 느낄 정도의 변화를 만들려면 그냥 XXX 버티며 연습해야 한다. 4개월 간 새로운 것을 집어넣고 절감한 교훈이다.
가장 의외인 것은 경락 마사지다. 이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수업 중반부에 수업을 취소/환불한 뒤 주변에 이야기했다. 단순히 내가 마시지 받는 것을 좋아했고 뼈, 근육 등의 해부학, 명리학(음양오행)에 관심이 있는데 경락 마사지는 이것들의 집결지였달까. 그리고 직업교육이기 때문에 직접 사람 몸을 만지면서 실습할 수 있다. 내가 실습 대상이 되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다들 배우는 입장이라 처음 마사지받을 때는 어색하지만 수업 횟수가 거듭될수록 편안하게 받을 수 있다. 여러 번 반복 수강하는 분과 짝꿍 할 때는 돈 내고 받아도 될 정도. 페이스 모델링팩이나 석고 팩(발바닥, 무릎, 배를 찜질하는 온열팩)도 받으며 에스테틱과 멀고 먼 나 같은 사람도 호강한다. 수업은 40% 정도 듣다 취소하였는데 취업/창업을 준비하는 분들 사이에서 수강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같은 목적이 없다면 수업이 크게 효용성 없이 느껴졌다. 내가 배워도 내 몸에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 창업/취업할 것은 아니지만 애인에게 해 줄 의향은 있다. 따듯하고 힐링된다.
명리학, 어쿠스틱 기타. 예전부터 관심이 있어 책을 보고 수업도 두어 달 들었다. 시간과 정력을 쏟는 취미를 꾸준히 가져왔기에 손대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도했다. 집 근처 구단위 문화재단 프로그램이었는데, 온화하지만 낡고 루즈한 분위기, 불편한 교통편, 그에 비해 낮은 열의로 두 번 출석, 두 번 결석 후 환불받았다. 나는 여러 개의 감을 찔러보는 중이다. 수업에 나가는 시간과 열정이 떨어진다면 적게라도 꾸준히 접할 것, 말했 듯 자료는 넘쳐난다. 천리길의 한걸음 떼듯 긴 여정을 조금씩 쌓아야 하는데(명리학은 정말 그렇다) 난 조급함과 초조함으로 포기해 버린다. 취미니까 상관없어- 라기엔 취미가 아닌 곳까지 같은 태도와 심경이 적용되는 것 같아 두렵다. 지금까지 그랬다.
무얼 할 것인지는 적지 않으련다. 앞으로의 다짐이 아니라 실행/구현/산출한 것을 기록하려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해도 구상/상념 단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실재가 필요하다.
아래는 계획 중의 하나인 독서록 작성을 위한 목록이다. 적어두지 않아 누락된 것들이 있지만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본다. 여행 가이드는 참고서 개념이지만 당시 관심사를 반영하므로 포함시켰다.
11월 : 여행 준비하기
인조이 미국 서부(2018) -오다나
무작정 따라하기 타이베이 타이완 북부 -이진경, 김경헌
Just go 시애틀, 포틀랜드 -김주영
내 손으로, 발리 Book -이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 -로버트 마우어, 장원철
심리학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류쉬안, 원녕경
12월 : 자기계발서를 판다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김지영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이한이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이아림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채사장
1월 : 먹는 것과 사고하는 것
독소를 비우는 몸 -제이슨 펑
맛의 배신 -유진규
치유본능 -김은숙, 장진기
뇌를 읽다 -프레데리케 파브리티우스
2월 - 여전한 자기계발 주입 중
마인드 스트레칭 -이지수, 임혜인
그 서류 어디있지? -미쓰하시 시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