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화해하는 여정 - 1
"요가선생님이 되신다구요? 그럼, 살을 빼셔야겠네요."
PT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뭐라고 답했냐고?
멋쩍게 웃으며 "하핫,,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동의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리고는, 집에 돌아오니 조금씩 부아가 치밀었다.
몸매를 지적한 것 때문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건넨 말이 대다수가 공유하는 사회의 시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몸'은 내 안에서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슈이기 때문에.
요가 선생님이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은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하고, 유연한 몸을 가진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체중 감량이라는 목적 하나로 운동을 했던 20대 초반에 찾아간 요가원에서 통통한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이 통통하시네?"라고 의아해했으니까.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하면서 요가 철학에서 말하는 만족, '산토사(Santosa)'를 키워드로 에세이 과제를 받았을 때도 내가 만족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나 숙고하다 몸 이야기를 써서 제출했다. 예쁜 몸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결국 질투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과, 내가 왜 보여지는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에세이였다. 맨 마지막에 "나는 내 몸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그 숙제를 제출하면서 내심, 선생님이 지혜로운 답을 주시길 기대했다. 늘 현명한 답으로 실마리를 풀어주신 분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선생님은 정답 대신 되려 질문을 하시며 내게 물음표를 더해주셨다. 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라는 뜻이었다.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모두가 결점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니까. 스마트폰을 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는 걸음마다 '완벽한 미'를 강조하는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일하고 있는 동네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이어트, 성형, 피부과가 보인다.
다시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온다. 난 "내 몸과 화해하고 싶다"고 적었다. 화해라는 단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화해는 필연적으로 다툼 이후에 자리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 몸과 한바탕 싸움 중인 걸까? 이 싸움은 누가, 언제 시작했을까? 이 싸움은 끝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 늘 어떤 몸을 꿈꿨고, 그 형상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결코 내가 가진 몸이었던 적은 없었다. 이건 해결하지 못한 나의 콤플렉스다. 이 사실을 고백하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다. "요가랑 명상하는 사람이 내 몸 하나 사랑하지 못한다고?" 그런 비난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런 고백 또한 요가와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이 가능하게 해줬다. 거짓 포장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일 수 있는 것 또한 수련으로 생긴 용기 덕분이다.
다이어트 성공담 보다 인기가 없을 이야기겠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내 몸과 화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공유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