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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y 09. 2022

두 발로 바르게 서기

쉽지만 절대 쉽지 않은 것

요가의 기본 자세는 타다 아사나(tadasana), 바르게 선 자세이다. 영어로는 산 자세(mountain pose)라고 한다.


빈야사 요가에서는 간단한 웜업 동작으로 몸을 풀고 본격적인 플로우로 들어가기 전 9개의 자세로 구성된 수리야 나마스카라, 태양경배라고 불리는 동작을 한다.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몸을 깨우고, 열기를 불어넣어 수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수리야 나마스카라의 첫 동작이 바로 타다 아사나다. 보통 "매트 앞에 바르게 섭니다."라는 선생님의 말로 시작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발로 걷기에, 서 있는 자세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바르게 선 자세'는 보기보다 쉽지 않다. 두 발을 안쪽 골반 너비로 벌리고, 무릎과 두 번째 발가락이 중앙에 올 수 있게 위치하고, 발바닥 네 코너에 고른 힘을 준다. 허벅지 힘으로는 무릎을 단단하게 뻗어 낸다. 이때, 키가 커지는 느낌으로 척추를 세우는 동시에 꼬리뼈는 살짝 끌어내린다. 턱은 자연스럽게 살짝 몸 쪽으로 당겨주고, 어깨는 긴장되어 으쓱하지 않도록 힘을 풀어내고 양쪽 어깨가 수평이 될 수 있도록 두 손은 자연스럽게 골반 옆에 둔다. 올바른 타다 아사나의 정렬로 서면 고작 서 있는 것뿐인데도 힘들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발바닥이다. 산스크릿트어로 이 힘을 파다반다(Pada Bandha)라고 한다. 파다는 발, 반다는 묶다, 잠그다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발로 쓰는 힘이다.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의 뿌리, 발 뒤꿈치의 두 지점 모두에 고른 무게를 실어 발로 바닥을 꾸욱 밀어내면 허벅지, 엉덩이까지 단단한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타다 아사나에서의 파다반다는 전사 2, 전사 3, 아르다 찬드라아사나,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까지 지면에 발이 닿아 있는 모든 스탠딩 자세에서의 기본이 된다. 파다반다를 사용하는 건 그저 바닥을 밀어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중력의 힘을 고르게 받아 사용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두 발로 잘 서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자주 신는 신발의 밑창을 한번 확인해보길 바란다. 오래 신은 신발은 고스란히 내 습관을 담고 있어 어느 쪽이든 더 많이 닳은 쪽이 확연히 눈에 띌 것이다. 나의 경우는 새끼발가락, 발의 바깥쪽으로 힘을 더 주면서 걷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신발의 밑창도 바깥 부분이 더 닳아 있었다. 전사 2번이나 1번 같은 스탠딩 자세를 할 때도 선생님이 오셔서 자꾸 뜨는 내 엄지발가락 쪽 발바닥을 꾹 눌러주시곤 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늘 제대로 서 있기도 전에 걷고 싶었고, 걷기도 전에 뛰고 싶었다. 무언가 정석으로 배우는 것을 힘들어했다. 단적인 예로, 젓가락질도 키보드 타이핑도 정석으로 못한다. 젓가락질은 X자로, 키보드는 8개의 손가락만 사용하면서 친다. 뭐든 빠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인지를 하게 된 것은 요가 TTC 과정 중 파다반다를 배우면서부터다.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성정을 토로하는 내게 선생님은 그라운딩(Grounding)의 힘을 강조하셨다. 뿌리가 잘 내려진 사람은 두려움을 잘 마주하고, 삶에 감사하면서 산다고 하셨다.


"선생님, 한 가지 팁을 드릴게요. 두려움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그라운딩이 잘 되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보세요. 그리고, 요가원에서만 볼 수밖에 없지만, 선생님의 걷는 속도와 걸음을 알아차리세요. 조금만 천천히 걷고, 걷는 느낌을 살피세요"


선생님은 머리 뒤에도 눈이 달리신 건 아닐까? 혹은 손바닥이나..? 성격 급한 나는 걸음도 뛰듯이 걷는데, 선생님은 그걸 다 보고 계셨다. 그제야 급한 성정이 만든 기본기 없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후론 의식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려 노력하고 있다. 매트 위에선 견고함을 추구한다. 타다 아사나에서 매번 옴짝달싹하던 발바닥을 알아차리고, 파다반다의 힘을 사용하려고 의식한다.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을 때도 파다반다의 힘은 사용된다. 두 다리를 쭉 뻗어 앞으로 상체를 숙이는 자세인 파스치모타나, 한쪽 다리는 뒤로 들려 있는 전사 3번 자세에서도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발바닥 힘을 사용한다.


선생님은 파다반다를 '뿌리내리는 행위'라고 표현하셨다. 두 발로 매트 위에 뿌리를 내려, 그 단단한 힘을 기반으로 '아사나'라는 꽃을 피워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모두 꽃이 된다고.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두 발로 단단하고, 바르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새싹이라도 움트고 싶다면. 그래서 언젠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희망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우선 바르게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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