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단순한 대답
수련을 마치고, 차담 시간 선생님이 물으셨다.
"은경님은 왜 요가를 하세요?"
어떤 문장이 단박에 떠올랐다.
요가만이 나의 숨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강점이라 생각했던 다정이 약자의 언어처럼 느껴졌던 그 시절.
퇴근 시간이 되면 매트 위로 달려갔다.
수련이 끝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렇게라도 잠시 매트 위에 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요가는 침잠해있던 나를 물 밖으로 떠밀어주었다.
수련을 못 하는 날엔 다시 한없이 가라앉았다.
요가를 해야,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하루, 이틀, 그렇게 2년의 세월이 지나니
일상의 숨이 안정됐다.
그동안 나를 차분히 돌볼 힘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자리와 환경과 관계와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요가 덕분에.
숨이 쉬어지자,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화와 짜증은 덜 내고, 더 많이 웃었다.
요가가 날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줬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착해졌다'라는, 청소년기에나 들을 법한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 시절에 왜 요가를 하는지 물어왔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요"라고 답했을 거다.
요가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믿음은
물론 긍정적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두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여러 번 고꾸라졌다.
두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으니 너무나 당연한 인과였다.
그렇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알게 된 것은,
나는 매일 나아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아니 매일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가를 왜 하냐는 선생님의 질문을 듣고 곧장 떠오른 건,
"좋아서요"란 대답이었다.
어쩐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지만.
종교처럼 집착하며 매달리다,
연인처럼 사랑에 푹 빠졌다가
지금 나에게 요가는 그저 편안한 친구 같다.
가끔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아끼는 마음이 분명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