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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Aug 21. 2020

클레어의 카메라

‘당신’이라는 필터로 세상을 볼 때

보는 법에 관하여

카메라의 렌즈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클레어. 클레어가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에 담겨 있다.

칸 영화제 출장 중에 대표인 남양혜(장미희)에게 해고를 당하는 만희(김민희).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양혜 : 내가 같이 일 하는 사람한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는 게 뭔지 아니?

만희 : 글쎄요.

양혜 : 정직이야. 그건 아주 귀한 건데 그 귀한 성품은 타고나는 거야.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너도 뽑은 거고. 알지?

만희 :


그런데 너의 어떤 순수한 부분은
아직도 인정하지만 그게 꼭 정직함을
담보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양혜)


만희 : 아...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셨어요? 제가 부정직하다고 생각하세요? 지금은?


응. 그런 생각이 들었어.
미안하다. 내 판단이야.
(양혜)


사실 대표가 만희를 해고하게 된 것은 자신과 연인 관계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영화감독 소완수(정진영)가 만희와 술에 취해 하룻밤을 같이 보냈기 때문이다.

소완수와 대표가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모르는 만희는 자신이 왜 해고 됐는지 영문도 모른채 일자리를 잃게 된다.

소완수는 만희가 자신 때문에 해고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떤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해고 후 비행기 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만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영화제 관련된 자리에 참석을 해야 해서 양복을 입은 그를 보고 만희가 멋있다고 얘기하자 완수는 만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옷이야 거죽인데 뭘 입으면 어떠니?

그러면서 그는 만희가 핫팬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치마 입을 때 넌 무슨 생각을 하니?
무슨 마음으로 이런 걸 입니?


옷이야 거죽이고 뭘 입어도 어떠냐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만희의 옷차림을 나무라는 것이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만희 : 어, 이거 치마 아니에요. 이거 핫팬츠예요.
완수 : 응. 알어! 하여간 굉장히  짧잖아.
만희 : 네. 그냥 예뻐서. 여기 오기 전에 서울에서 사서 입어 봤어요.

그냥 예뻐서 입었다는 만희의 얘기에도 완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응수한다.


넌 남자들의 눈요깃감이 되고 싶니?


완수는 어쩌면 만희가 자신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만희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만희는 클레어의 눈에는 인기 많은 좋은 여자이고 완수의 눈에는 성적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문란한 여자이며 대표의 눈에는 부정직한 여자이다.

클레어는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당신을 찍고 난 뒤에는
당신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닌 거예요.


양혜와 완수에게는 이런 대답을 했던 클레어는 만희가 사진을 왜 찍는 거냐고 질문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만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필터에 따라  부정직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클레어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사람을 바라보았던 것은 그 사람을 어떠한 선입견도 가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 클레어의 눈에는 사진을 찍기 전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 사람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그 사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클레어의 카메라 역시 어떤 사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클레어의 시선에 따라, 또 카메라의 프레임에 따라 잘려나가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완성된 사진은 나의 시선에 따라 편집된 사진이다. 그 잘려나간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잘라낸 것은 무엇일까?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있는 그대로 어떤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만희가 카페 근처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개를 보고 착하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다. 자신의 필터를 씌워서. (사실 그 개는 그냥 거기에 누워 있었을 뿐인데 만희의 시선에 의해 착한 개가 되었다. 그 개는 짖지 않고 조용히 드러누워 있으므로 인해 착한 개로 명명된다. 사실 그저 그냥 거기 존재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 필터는 어떤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자신만의 잣대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잣대에 따라 사람을 보고 세상의 일들을 판단하며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에게 그건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스스로도 타인에 인해 그런 필터가 씌워진 사실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어렵더라도 온전히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의 이유와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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